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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연락

간만의 연락이라는 주제의 일기장 훔쳐보기

by 라파

간만의 연락 5년 전에 일기장에 적은 글

가장 친한 사람이었던 동생의 생일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일은 이런저런 일이 있을 것이고 어려움이 있지만 나름 방법 찾아서 해결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무얼 좋아하는 지도 대략 알고 있다.

그래서 카카오톡으로 선물하기를 한다.


문득 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 위로 스크롤 해보았다.

동생이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카카오톡으로 보낸 선물이 있다.

나는 짧게 "고마워 ㅋㅋ"라고 보냈다.


더 위로 가보았다.

동생의 작년 생일에 축하한다고 카카오톡으로 보낸 선물이 있다.

동생도 "고마워~"라는 짧은 말풍선을 남겨두었다.

같이 자라면서 별일이 다 있었고 가끔은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마음이 쓰일 때가 있다.

이제 와서 잘해주고 싶어 손을 내밀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보다 더 똑똑하고 젊은 동생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장단을 맞춰주진 않는다.


명절 때 부모님 집에 모일 때면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추가로 이벤트를 만들어 만나거나 밥을 먹는 일은 없다.

일 년에 두 번 카카오톡을 주고받고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부모님 댁에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동생의 안부를 묻는다.

그제야 당연히 잘 지낼 동생이 떠오른다.

그리고 동생 자랑을 짧게 늘어놓는다.

그럼 친구들은 훌륭한 동생을 둔 나를 부러워한다.


간만의 연락 3년 전에 일기장에 적은 글

미술학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내가 결혼하고 집들이하고 나서 못 보았으니 벌써 10년 정도 되었다.

그 사이에는 전화통화도 한번 없었다. 그러나 친구는 전화를 나에게 했다.

반갑게 안부를 확인했다. 디자인일은 그만두고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내 머릿속에는 경찰 유니폼을 입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디자인도 제법 잘했었는데 직업을 바꾸었다니 신기하기도 했고 어떤 과정이었는지 궁금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최종 근황인 결혼소식을 전달받았다.

그 순간 결혼앨범 단체사진 촬영 때 옆을 쳐다보고 있는 채로 찍힌 친구의 얼굴이 한번 더 떠올랐다.

아. 결혼하는구나. 우리 아들이 10살이니 그 사이에 이 친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고 결혼까지 가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청첩장은 카톡링크로 보내라고 했다.



간만의 연락 3개월 전에 일기장에 적은 글

"예전에는 오래간만에 연락이 오면 결혼식이 많았는데 요즘은 장례식이 많아요."


아버지와 이야기하다 나도 이제 나이 좀 먹은 걸 느낀다는 걸 어필했다.


"그래, 주로 선배들이 가?"


아버지 입장에서는 내 차례가 오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주는 질문이었다.

내 의도와 다르게 흘러간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네, 주로 선배들이고 가끔 후배도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래, 그러다 또 나중에 잠잠해진다. 그리고 다시 내 나이가 되면 전화가 온다."


나는 손자가 태어났다거나 손자가 돌잔치한다거나 하는 내용일 꺼라 확신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서 미소는 곧 꺼졌다.


"친구가 전화 오면 마음에 준비를 한다. 이 친구는 얼마나 남았다고 나한테 이야기하려나... 무슨 암이라 1년 남았다. 무슨 질환이라 6개월 남았다는 내용이야."


주로 나쁘지 않네라고 애써 위로하고 응원해 주고 길게 통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식탁 옆에 꽂아둔 야생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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