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감사하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영화나 게임에만 엔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도 엔딩이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고 과정이 흥미진진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는 자연스럽게 다음 장을 펼쳐본다. 그러나 그 끝이 뻔하다는 생각. 과정이 예상되며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다음 장을 스스로 펼쳐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일이 많아 정신없이 하루가 가버리면 스스로 펼치고 싶지 않아도 자동으로 다음날이 펼쳐진다. 그러나 일이 많지 않아 하루가 천천히 가면 "펼치기 싫다"는 생각이 커지기도 한다. 일상이 뻔하다는 생각은 우리를 미디어의 다른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 다른 사람이 연기한 이야기, 다른 사람이 노래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쉽다. 그 이야기가 계속 나에게 흥미를 주면 다행이지만 그 이야기도 끝이 난다. 경험이 쌓일수록 만사 과정이 뻔하고 엔딩이 보인다.
익숙함을 권태롭다고 생각하면 이는 고통이 된다. 익숙함은 앎에서 나온다. 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알면 알 수록 고통스럽다니. 고통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좋은 것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일까?
하지만 익숙함이 반드시 권태로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익숙함은 한때 낯설었던 것을 내 안에 들여온 증거고, 그만큼 내가 세상과 관계 맺으며 살아왔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아침에 눈을 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얼굴을 마주하고, 같은 창밖을 보는 일상이 오늘 하루의 작은 평화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화.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 가끔은 익숙한 것에 살짝 감사를 얹어보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나를 지켜준 하루였다고.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것도 내 마음의 리듬을 다시 찾기 위함이었다고.
그리고 아주 작게, 새로움을 곁들여 보자.
늘 가던 카페에서 다른 자리에 앉아본다든가,
일기 끝에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 하나를 적어본다든가.
혹은 퇴근길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는다든가.
나의 인생 이야기의 절반은 세상이라는 큰 흐름으로 인해 자동으로 써진다.
나머지 절반은 내가 쓰는 것이다.
‘지금 이 장면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순간을 더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스스로 물어보자.
권태롭다고 느끼는 것은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음 행동은 정해져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새로움을 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