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문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May 23. 2023

긍정의 힘은 '발산'하고 부정의 힘은 '수렴'한다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7

01.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왜 우리는 빡치면(?) 글을 쓸까요?" (참고로 이 모임은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하는 모임이자, 최근 들어 저에게 가장 좋은 자극을 주는 모임 중 하나입니다. �) 


02. 

물론 글 쓰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기가 어렵겠지만, 글쓰기가 취미인 분들은 또 어느 정도 수긍이 되실 겁니다. 소위 '빡치면' 펜부터 들거나 키보드 앞에 앉아서 열심히 타이핑해대는 우리의 모습이 벌써 떠오르실 수도 있을 테니 말이죠.  

그 질문에 대해 저는 이런 대답을 한 번 해봤습니다.  "화가 날 때는 화살표가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어디로 내 분노가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뭘 써야지?'라고 생각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내가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발동해서 펜을 드는 것 아닐까요?" 


03. 

뭐 그냥 제 생각을 펼쳐놓은 대답이었지만 저는 그날 하루 이 질문이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더군요. 그래서 모임이 끝나고도 혼자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가봤습니다.  '그럼 글 쓰거나 말하는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은 화를 어떻게 풀지?'부터 시작해 '빡칠 때마다 글을 쓰면 글쓰기가 더 좋아질까 아니면 어느 순간 정이 뚝 떨어지고 말까?' 같은 생각이 계속 반복되더라고요. 그러다 예전에 잠깐 떠올렸던 생각이 다시금 슬금슬금 제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04. 

혹시 여러분은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여러분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아니면 그때그때 드는 느낌이나 상대방의 말투로 판단하시나요? 저에겐 작은 기준이 하나 있긴 합니다. 바로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주제가 이리저리 마구 널뛰기를 하는데, 부정적인 사람과 있으면 오직 한 가지 주제만 파고들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사람을 만나고 나면 '오늘 어떤 어떤 주제들을 이야기했더라?'를 한 번씩 되짚어 보곤 합니다.  


05. 

최근의 경험만 해도 그렇더라고요.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무실에 놓인 꽃 한 송이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또 가족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좋아하는 음악, 맘에 드는 여행지, 관심 있게 보는 책을 거쳐 담에 모일 때 대화할 주제를 미리 정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더군요.  

반면에 다소 부정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만나면 헤어질 때까지 그가 싫어하는 사람 혹은 대상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합니다. 주제를 환기하려 해도 귀신같이 다시 그 주제로 돌아오게 되고요. 그래서 집에 갈 때쯤엔 그 사람이 규정한 괴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착각마저 들죠. '머리엔 뿔이 몇 개고, 발톱은 얼마나 길고, 불은 어떻게 내뿜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괴물로 느껴지기까지 하니까요.  


06. 

그래서 저는 긍정의 힘은 발산하고 부정의 힘은 수렴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름의 근거를 생각해 본다면, 결국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땐 그 대상과 페어링 될 수 있는 것을 계속 찾게 되기 때문인 듯합니다. 아마도 서로 이어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찾거나 과거의 기억 중 좋았던 것들을 끄집어 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치고 싶은 거겠죠. 반면 싫은 것을 이야기할 땐 어떤 옵션을 들이밀어도 그 대상이나 요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에 머무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긍정의 에너지를 표현할 땐 '뿜뿜'을, 부정의 에너지를 표현할 땐 '늪'이나 '덫'처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메타포를 쓰는 것도 같습니다. 


07. 

아, 당연히 긍정적인 상태로만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으니 부정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부정적인 요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문제 하나에 신중하게 집중하는 태도가 더 요구될 수도 있죠.  다만 적어도 우리가 '아 내가 지금 이런 상태에 있구나' 혹은 '아 저 사람이 최근 저런 상황에 놓여있구나' 정도는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나를 지배하는 게 긍정의 에너지인지 부정의 에너지인지 정도는 체크하며 사는 게 좋으니까요.  


08. 

한 가지 팁을 제안 드린다면 저는 이 상황들을 역으로 이용하는 게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딘가에 매몰되었다고 생각하면, 긍정의 힘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의 대화 속에 함께 빠져들어보는 거죠. 그렇게 그 사람이 태워준 배를 타고 이 주제, 저 주제를 거닐다 보면 내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안이 정말 그렇게까지 에너지 소모가 필요한 일인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09. 

반면, 뭐하나 뾰족히 이뤄가는 것 없이 맨날 허황된 이야기만 하면서 정리를 못하고 있다 싶을 때는 의도적인 충격 요법도 필요한 법입니다. '이 상태가 유지되는 한 내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 '나의 태도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섭섭해하는 사람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지혜도 요구될 테니 말이죠.  


10. 

살다 보니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도, 영원히 부정적인 사람도 흔치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다만 우리의 애티튜드를 가르는 요소는 그 밸런스를 어느 정도 적절히 유지하며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가느냐의 차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시며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구만...' 이라고 생각이 드셨다면 낙담부터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해야 지금 이 상태를 긍정의 에너지로 조금씩 전환해 갈 수 있는지 현실적인 방법들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마음에도 환기가, 삶 속에도 방향 전환이 가끔은 필요한 법이니까요, 우리 창문부터 열고 이부자리 정리 먼저 하며 우리를 다독여 보면 어떨까 싶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