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충호랑이 Feb 22. 2024

나는 콜 포비아다

내 안의 불안 들여다보기 2

나는 항상 전화벨을 무음으로 해두고 지낸다. 물론 손에서 휴대폰을 떼지 않기 때문에 전화가 오면 언제든 받을 수 있지만, 벨소리를 듣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특히 예고 없는 전화는 언제나 불안을 동반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게 가족이라 해도 전화를 받는 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내가 예상치도 못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될까 가슴을 졸이며 전화를 받게 된다.


문제는 내가 하는 일은 예고치 못한 전화가 수없이 몰려와야 하는 일이고, 그게 내 밥줄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 누구보다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곤 한다. 전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까지 불안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불안을 갖고 산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그깟 전화가 뭐라고 포비아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싫어하게 된 것인지 그 시작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2018년 5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엄마와는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해왔기에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밤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 엄마는 아빠와 다투고 밖에 나와 있다고 이야기했다. 늘 그렇듯 술에 취한 아빠는 감당하지도 못할 이야기를 내뱉어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술기운에 잠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행복하게 잘 지내란 말을 남겼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엄마에게 우리집으로 오란 얘기를 했지만 엄마는 걱정 말라고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믿기 힘들었지만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그동안 내내 불안했어도 내가 걱정한 일은 안 일어났으니 괜찮겠지 싶은 마음에 엄마를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새벽 즈음, 엄마가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다음날 아침 엄마를 찾았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내 불안한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뒤늦게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라는 말만 입 속에맴돌았다. 엄마는 아주 오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내가 사춘기를 지날 무렵 엄마의 우울증을 알게 되었고, 엄마가 내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내내 나를 무겁게 했다. 여행을 가면 하루에도 수차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고, 엄마와 통화를 마칠 때면 습관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혹여나 이게 엄마와의마지막 통화가 되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고 싶다는 얄팍한 속셈이었다.


그날 밤, 나는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거란 걸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애써 모른척 잠을 청했던 것은, 어쩌면 이제 불안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오랜 불안이 너무 지겹도록 무거웠다. 그래서 엄마를 찾아나서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불안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번이라도 가벼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세상에서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그럼, 그 후에 나의 불안은 사라졌을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삶에는 불안도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불안은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나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저 불안의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도 끝내 비극적인 현실이 일어나고 마는구나 하는 두려움만 더 강해졌을 뿐이다.


이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전화가 겉잡을 수 없는 불안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안심하기까지의 과정은 매번 나를 지치게한다. 그래서 나는 정말 전화가 싫다. 용건조차 밝히지 않은 채 무턱대고 전화를 거는 그 무례함이 싫고, 나의 상황과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배려없음에도 화가 난다.내가 이런 분노를 사람들 앞에서 표출한다면, 저 사회성 없는 인간”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눈초리를 보내겠지만, 이게 나의 본심이다. 부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전화를 할 일 없이 무탈한 삶을 살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전화 대신 카톡과 문자로 그들의 무탈함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그리고 딱 한 번, 한 번만이라도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면 이번엔 꼭 엄마를 찾아가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아주오래 나누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할까봐 불안한 삶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