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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20. 2023

나르 남편인지 몰랐습니다만 #02

"나 원래, 엘리트였더마!"

심성이 착한 것으로는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없을까요?

삶은 연극이라는데,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역할을 찾지 못해

정체성에 위기를 느끼는 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시작합니다.


32세에 파혼의 위기를 겪고 미련으로 다시 만나, 결혼 생활 16년째, 남편이 나르인지 몰랐습니다만. 왠지 힘들고 피곤하더라구요. 대학은 1등으로 졸업하고 회사는 특채로 선발되어 우등생으로 살면서 행복도 그냥 오는 건지 알았어요. 그런데 남편은 자본주의 시대가 낳은 괴물 상사와 같았습니다. 남편이 아니라 꼰대 상사랑 한 방에 살아야 하는, 48년 된 '사람'얘기 들어보실래요?



"나 원래, 엘리트였더마!"


우린 5월 가정의 달에 만났어요. 그 후 매일 10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지금의 남편 '나르'덕에 그 순간은 난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죠. 내겐 꿈이 있었습니다. 커리어 우먼!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엔 커리어우먼이란 말이 한참 멋지게 들려왔죠. 그땐 대학만 가면 누구든 취업하고 잘 살 수 있다고 떡 같이 믿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98년경 IMF를 겪게 됐고 저희 부모님에겐 큰 타격이 없어 다행히 사회의 위기는 잘 지나갔습니다. 졸업 후 1년간의 진로 방황을 하고서 우여곡절 끝에 중견건설사에 취업을 하게 됐죠. 전 너무도 꿈같고 하늘의 모든 기운이 날 위해 계획된 것처럼 타다닥 순식간에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죠. 하지만 자격지심이 심한 아빠의 욕구엔 못 미쳤죠. 그땐 아빠가 자격지심이 극도로 심한지를 몰랐어요. 어려서 아빠에게 많이 맞아서 그런지 그의 욕구에 더 다가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터라, 나의 부족함 만이 한없이 크게 느껴졌으니까요.


그렇게 살아온 인생인지 전 약간 조용하고 겉보기엔 소심해 보였죠. 그리고 몇 년 못 가서 전 신분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었어요. 사실은 처음부터 그럴 마음으로 입사를 했죠. 그리고 회사가 본고지를 지방에서 서울로 옮긴다는 시점에서 전 부푼 희망을 안고 퇴사했습니다. 꿈처럼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어요. 다른 작은 결실은 얻었지만 제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기에 다시 수험생활을 3년을 더 시작하게 되었어요. 깊은 몰입은 못했는지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해서 가족들의 몰매를 맞았죠. 그때 저희 아빠의 퇴직과 겹치게 되어 아빠의 힘없는 어깨에 노려보는 눈초리는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더 능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살아있는 시체가 된 듯해서 심신이 많이 주눅이 들어있었어요. 빨리 돌파구를 찾고 싶은 생각에 형제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업체에 합류하게 됩니다. 다시 첫 회사에 들어갔던 것처럼 너무 행복하고 매일이 천국이었어요. 어느새 나이가 32살이 되니 친언니는 적당히 빨리 결혼해야 한다며 저를 재촉였어요. 전 성격상 맞는 말이다 싶으면 수용을 잘하는 사람이라서 들어보니 이성적으로 맞았기 때문에 이제 결혼하기로 결심했답니다. 전 비혼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현 남편을 급하게 만났어요. 어떻게 결심하자마자 만났을까요?

맞선 업체를 이용하였답니다. ㅎㅎ

당장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라고 친언니가 자꾸 저를 설득했거든요. 저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우린 만났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요. 'VIPS' 당시 빕스는 맞선 보는 1번지였어요. 그가 보자고 한 곳이 빕스였기에 더 기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장소에 벌써 기다리고 있었구요. 더욱 맘에 들었죠.


"안녕하세요? 오늘 맞으시죠?"

"네. 안녕하세요!"


"아 그런데 제가 위에 다녀왔는데 줄이 많이 서 있어서요, 장소를 옮겨야 될 거 같아요. 어떠세요?"

"네 그래요, 괜찮아요 좋아요."



그리고 옮겨간 곳 패밀리 레스토랑이었어요. 스테이크 써는 곳이요. 지금은 대단한 음식이 아니지만 90년대 대학을 다닐 당시 '경양식'이란 이름으로 돈가스시대를 거쳐 스테이크시대로 들어설 즈음이었거든요. 넘 옛날 얘기 같나요? 거긴 아웃백이었습니다. 보통은 커피숍에서 잠깐 보고 에프터를 신청받는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처음으로 레스토랑에서 절 만나기로 한 거였어요. 그래서 첨부터 에티켓이 있는 사람처럼 생각돼서 전 이미 50%는 맘에 들어버렸죠. 하지만 지나와 생각해 보니 그이는 저에게 한 번도 스테이크를 사 준 적이 없었더라고요. 커피와 포테이토감자칩을 먹었죠.


"여기 앉을까요?"

"!!"


그는 앉자마자 메뉴판을 교과서처럼 골똘히 보더라구요. 참 오래도 보고 있었어요.

'왜? 혼자 보지?'의문이 계속 들었죠. 너무 오랫동안 보고 있었거든요. 급기야 다시 앞으로 몇 장씩 넘기고 다시 뒤로 몇 장씩 넘기고. 보고 있는 제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먼저 말을 걸었어요.


"아무거나 먹어요 우리. "

"그럼 이거 드실까요? 밥은 좀 그렇죠? 이른 거 같구요. 안 당기네요.하하."


"네, 그래요 저도 그거 좋겠네요. 괜찮아요."


그는 제가 말하기까지 10분이 넘게 보고 있었어요. 평소 같으면, 매우 이상했죠. 그런 이상한 것도 모두 그럴 수 있지 뭐, 맞선을 많이도 본 것 같네 하며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고심해서 고른 포토이토는 사실 전 먹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 마음이 먼지 몰랐죠.


그가 10분이상 고심해서 고른 아웃백 메뉴.메뉴판을 못봐서 이름도 모른다.



이런 판단이 잘 안 되는 오묘한 느낌들은 그가 그 후로 매일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자마자 저희 집까지 데이트를 하러 왔기 때문에 정말 정말 저를 사랑한 건가? 너무 좋아서 매일 보고 싶은가보다 하고 기분이 뿌듯? 해질 정도로 자존감이 많이 올라가 있었어요. 그렇게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급하게 진행하다가 중간에 파혼까지 해대면서 깨졌던 우리는 또다시 만나 다음 해 33살이 되어 그 해 초 1월에 급하게 결혼을 했답니다. 그러고 나서


"나 원래 엘리트였더마."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을 자주 듣게 되었죠. 결혼 전에 혼수 때문에 의견이 잘 맞지 않아 많이 싸웠지만 저런 말은 도대체 왜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니, 너같은 얘가 어디 있냐? 너같이 능력 없는 얘는 내 평생 첨 봤다. 아니 내 주변에는 너같은 얘가 없다니까?

 어떻게 그 나이에 돈 천이 없지? 내가 엘리트였다니까! 나도 몰랐네. 너는 베트남 여자보다 못해! 베트남 여자랑 결혼할 걸 잘못했다니까."


"참나. 미쳤는가? 그게 말이 돼?"


이 대화는 매일같이 같은 집에서 3년이 계속되었죠. 도대체 뭐가 어떻게 펼쳐지는 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결혼하자마자 허니문 베이비를 갖게 됐기에 임신확인 후, 4개월째부터는 일상이 되어버린 대화. 정말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음... 지금 적다 보니, 그가 100일을 계획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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