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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가수: 노래 불러드릴게요.

by 달빛기차

시골에 살 때,

집 앞 건널목에는 역무원 아저씨들이 계셨다. 푸른색 정복을 입은 아저씨들은 기차가 들어올 때면 깃발을 흔들며 맞이해 주셨고, 나도 그 옆에서 아저씨를 따라 기차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간혹 기차 안 손님들도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기차가 지나가면 아저씨들은 나를 데리고 역무원 실로 들어갔고, 나에게 노래를 시켰다.

선곡은 언제나 주현미 선생님의 ‘신사동 그 사람’.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눈길을 노래하고

몰래 사랑을 느끼는 설렘과

오지 않는 님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그렇게 한 곡이 끝나면, 내 손에는 작은 동전 하나가 놓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순신 장군님이 손 안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고, 나도 따라 웃었다.

핫도그가 50원 하던 시절에, 내 한 곡은 근사한 용돈이 되었다.


주현미 선생님의 노래는, 트로트의 정석처럼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

어린 나는 동요가 어울릴 목소리로 어른들의 기교를 따라 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그런 아이의 노력이 기특했는지, 역무원실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 돌아왔다.

달콤한 환호와 100원에 중독된 나는 ‘나 잘해!’라며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서 노래했다.

@CapCut&ChatGPT


어른이 된 지금, 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지 않는다. 내 안의 나는 지금도 목이 쉴 정도로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 부르지만, 사회적 나는 타인 앞에서는 절대 안 부른다.

남들보다 못하는 건 보여주고 싶지 않아 졌다.


왜 주변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만 있는지,

모두 다 박정현이고 성시경이다.

나만 가수가 아닌 것 같아서 마이크 잡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아니야, 난 노래 못해. 그냥 듣는 것이 좋아.”

듣는 것보다 부르는 걸 더 좋아하면서,

근질거리는 목을 쓰디쓴 맥주 한 모금으로 달래며, 아닌 척 완곡하게 마이크를 외면했다.

내 노래 실력은 부끄러우니까.


왜 내 노래 실력이 부끄러운 일이 되었을까?

건널목 가수는 언제부터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을까?

내 노래를 듣고 아이들이 웃었을 때?

아무도 내 노래에 반응하지 않았을 때?

잘한다고 생각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을 때,

“나 잘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교가 시작되었다.


난 가수가 아니고, 그들 중 누구도 내가 가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수처럼 ‘잘’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즐겁게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지금은 부를 곳이 없다.


세상에 100가지 재능이 있으면, 그중 하나만 잘하면 된다.

모두 잘할 수 있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왜 하나 ‘잘’하지 못한다고 기죽어서 즐기지도 못한단 말인가.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뭐든 내가 즐거우면 된 거 아닐까?


타인과 나의 재능을 비교하지는 말자.

타인이 나보다 못한다고 비웃지 않듯이

나도 타인보다 못한다고 낮추지 말자.

나는 언제나 나로 충분하다.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말자.

‘좋다’ 그거면 됐다.


지금 즐거운 일이 있으신가요?

그럼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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