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새로 입사했어요.
난 퇴사자다.
하-아, 이 말이 아직도 좋은 것을 보면 아직은 덜 쉰 것 같다.
기억해 보면, 아파서 휴가를 낸 시간들 제외하고 햇수로 15년.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쉽지 않을 만큼 바쁘게 살아온 시간이었다. 몇십 년을 한 회사에서 일하신 분들과 비교하면, 이력서 들고 치타보다 빠르게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것 같지만. 인생은 내 기준이니까!
분골쇄신이라고 뼈가 삭아 가루가 되어 휘날릴 정도로,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럼 ‘퇴사자’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오래 일하지 않았어도, 퇴사자가 되기 전까지 나의 ‘일’ 경력은 다양했다.
경기가 끝난 크리켓 운동장을 청소하고, 경마장에서 와인 잔을 수거하거나 인형 뽑기 집에서 ‘잘’ 뽑히지 않도록 인형을 채우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 외 뜨개질, 빵집, 편의점, PC방, 주유소, 김밥 집, 샤브샤브 집 등 다양한 일을 했는데, 그중 나의 처음은 ‘주유소’였다.
16살 때 스스로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으나, 녹록지 않았다.
맡은 일은 근무 시간 내내 뙤약볕 아래 서서, 줄지어 들어오는 차들에 주유하는 것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의 체력으로 버티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더욱이 아직 일머리가 자라지 않은 아이는 손님을 화나게 하기 일쑤였다.
차에 관심이 없던 아이라, 차량마다 다른 주유구 위치를 찾지 못해 헤매서 손님을 기다리게 했고.
5만 원만 주유해야 하는데, 금액 설정 안 해서 손님이 돈을 더 내게 만들었다. 주유소는 사장님은 좋아했을 런지?
“야!!! 휘발유잖아!! 이거 사고 낼 얘네.”
경유차에 휘발유를 주유할 뻔한 일도 있다. 얼마나 놀랐던지.
원래는 경유차와 휘발유차를 정확히 구별하지 못해서 항상 질문했는데. 무슨 자신감인지 ‘아! 휘발유 차!’라는 생각 했다가 화를 부를 뻔하기도 했다. 이런 실수들이 발생할 때마다 아직 자라지 못한 자존감이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 못하겠다… 사고 치면 어떻게.’
그러다 결국 크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주유를 하고 뚜껑을 닫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뚜껑을 안 닫은 것도 몰랐다. 어느 날 씩씩대며 들어오던 파란 용달 트럭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마디 했다.
“기름 다 휘발됐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물어줘야지. 있는 손 없는 손 찾아서 빌 준비를 했다. 아르바이트 비를 받기 전에 돈부터 나갈 일이 생기다니, 어린 가슴에 ‘우르르-쾅쾅’ 심장 뛰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처음이다 보니 안 닫은 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변명이다.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 주유는 3단계라고
[뚜껑 연다, 주유 총 쏜다, 뚜껑 닫는다]
처음부터 배웠다. 기본을 안 지킨 문제고, 결국 초보가 업무에 자만하여 발생한 일이었다.
“하하하, 처음이면 실수할 수 있지. 그래도 큰 사고 없어서 넘어가는 거야! 다음에는 조심해.”
차에서 날렵한 맹수처럼 내리셔서 겁을 먹은 것과 달리, 너무 호방하게 용서해 주셨다.
그 뒤 며칠을 더 근무하다가 그만 둘 결심을 했다.
처음은 언제나 힘들지만, 그만두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몇 곱절 더 힘들었다.
그때 나는 ‘일’을 약속이라 생각했고, 그만두는 것은 약속을 어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힘들어서’라고 말하기도 너무 부끄러웠다.
“힘들면, 그만둬. 아직은 배우는 나이고 그 일이 전부는 아니니까 괜찮아.”
어머니 말씀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렸다. 차마 얼굴 뵙고 말씀드릴 용기가 나지 않아서. 지금 생각하면 그럼에도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리는 것이 맞았다. 참 뭘 많이 모르던 시절이다.
그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뭐든 열심히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을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요리 저리 뛰며 비버처럼 고생한 시절이다. 다만 문제는, 그 시절 나는 처음 아르바이트를 할 때 비해 요령이 많이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잘’은 못하고 ‘열’ 심히만 했다.
요리 저리 뛰어다니던 비버처럼, 강사 일을 처음 시작 할 때 일이다.
모르는 일이 있어서 하얀 장화 신은 검은 고양이 닮은 사수에게 질문했다가, 평생 가슴에 새긴 말을 들었다.
“메일 안 봤어요?”
당시의 비버는 메일 보는 법을 몰랐다. 일할 때 메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강사 일도 그렇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 한 신입이었다. 얼마나 후회되는 ‘아차!’였는지, 그래도 신입 강사인데 부드럽게 말해주지.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속 좁게도 그날의 상처를 꽁꽁 싸매고 있다가, 끝내 몇 년 뒤 풀었다.
“강사님! 그때 제가 얼마나 섭섭했다고요.”
“어? 내가 그랬어요? 속상했겠다, 미안해요.”
“네, 그러셨어요, 하하하. 그런데 덕분에 습관 됐어요. 오히려 감사해요.”
정말 그 말을 할 때는 서운한 마음도 잊었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만 남았다. 그즈음 검은 고양이 강사님의 성격도 잘 알게 되고, 서로 친해졌기 때문에 오해가 풀렸던 것 같다.
그리고 메일을 확인하는 것도 덕분에 습관이 되어 업무에 많이 도움을 받았다. 물론, 하나에 집중하면 메일을 놓치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 후로 일을 할 때 똑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비버답게 손발에 땀나게 노력했다.
일이 생기면,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매뉴얼, 메일, 데이터 등 모든 것을 찾아보고 없으면 그제야 사람들에게 확인했다. 물론 긴급도에 따라 순서를 바꾸긴 했지만. 덕분에 해결해 보는 습관이 생겨서 독학의 귀재가 됐다.
엑셀마저 독학으로 ‘엑셀의 신’으로 불렸으니, 나의 노력이 알만하지 않은가.
덕분에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든지 두려움 없이, 아니 비버 팔뚝만큼의 두려움만 가지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상처인 줄 알았던 말이, 비버의 생존력을 키운 셈이다.
그리고 그 원동력에는 ‘강사’라는 직업이 있다.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었다.
더 강사답고 싶어서, 비버가 강단 위의 아름다운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가 되고 싶어서 나를 갈아 넣었다. 그래도 행복했고, 덕분에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5년은 결코 짧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었기에 사자가 되기 전에 탈진해 버렸다.
그리고 번아웃에 시달리는 나무늘보가 되었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번아웃은 질병이 아니라고 했지만, 내게는 중병이었다. 무력하게 나무 위에서 잠만 자는 나무늘보의 이미지처럼, 딱 그랬다. 그래서 그만 쉬고 싶다고 생각하기를 6년. 실행했다. 퇴사한다고 선언했다.
나의 상사는 면담이었겠지만, 나는 내 인생의 작은 선언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경력단절과 취업난을 각오하고 나무늘보를 벗어나기로 한 것이다. ‘열심히’가 가능하던 비버로 돌아가지는 못해도 최소한 거북이나 수달이라도 되어보겠다고.
내가 살아야, 내 인생도 살지 않겠는가.
그날의 면담은 내 인생의 독립선언문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아닌 ‘사회인’이 되었다.
더 이상 내 이성이 수용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명령을 따를 필요도 없고, 회사를 위해 타인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내 꿈을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한여름 찾아간 숲 속 산책길처럼.
그러니 내 퇴사가 어찌 아니 기쁘겠는가.
불안은 남았지만, 그보다 더 큰 설렘이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땅만 파는 두더지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기에 지금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언제까지 일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 ‘나’라는 1인 기업에 취직할 것이다.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내 본분은 ‘나를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회장, 사장, 이사, 사원] 내가 다 해 먹을 거다.
사훈은 ‘이 시간을 충실하게’
기업의 목표는 ‘이 시간을 행복하게’
기업의 가치는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 볼 것이다.
사원이 스스로 고민하고, 임원이 사원의 결정을 지지하며 성장하는 회사.
대박 나겠지?
그럴 리가. 난 불로소득 운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무늘보가 ‘푸바오’의 친구라도 되길 바라본다. 대박보다 귀한 쪽박 속 행복을 찾아.
다시 말하지만 퇴사자이다.
그리고 그 말이 주는 불안 속 행복을 걷는 사람이, 나다.
[퇴사 선언문]
나 이제 회사를 떠나 사회에 나감에 있어,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내 하루를 위해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 안에 나의 생각과 의지를 자유롭게 유지할 것이며,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즐겁지 않은 일은 최대한 배제하고, 즐거운 일로 이 시간을 채울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음을 잊지 않으며, 내 마지막 꿈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엉덩이에 땀띠 나도록 글을 써볼 것이며, 다시는 글쓰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집 강아지가 변비와 방광염에 시달리지 않도록, 산책을 존중할 것이다.
이 모든 의지는, 내가 사회를 떠나는 그날까지 유효함을 서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