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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Oct 03. 2020

김얀 작가의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을 읽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아로새긴 바다와 사랑의 기억

http://www.yes24.com/Product/Goods/30659100


한줄평 - 

유년 시절과 가족과 사랑의 지나간 풍경이 있는 자전적 이야기. 
이 책을 쓰고 작가는 행복해졌을 것이다. 한 번은 꼭 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남겼기에.


이 책을 낸 [달 출판사]는 걸출한 산문가이자 시인 이병률 작가가 대표로 있는 곳이다.

특유의 섬세한 문장이 가득한, 가슴이 따뜻해지는(혹은 저릿해지는) 책들을 많이 펴낸다.

그래서인지 표지가 인상적이다. 다른 두 색의 물감이 서로를 만나 그라데이션처럼 번지는듯하다.

푸른 쪽은 바다고 연분홍은 사랑일까?

아무튼 두 색은 경계를 이루면서도 서로에게 퍼지며 섞인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서가에서 만난 독자로만 읽기 어렵다.

저자 김얀 작가 님과 이런 저런 일로 최근 교류가 잦아 자연인 김얀이 문장에서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또 나 역시 얼마전 책을 써낸 입장에서, 작가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창작자로서 많이 공감하며 읽은 탓도 있다. 내가 느끼기에 김얀 작가는 책을 쓴 동기가 나와 아주 비슷했다. 너무 늦기 전에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꼭 세상에 남겨야만 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작가가 한 번 밖에 쓸 수 없을, 그러나 한 번은 꼭 써야했던 이야기다.


책은 바다의 여러 풍경이 있던 미조리를 중심으로 ,

아름답지만 혼란했던 유년과 방황하던 나날에 만난 ㄷ과 그 후 J와의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짧은 단편 글들을 묶은 책이 아니다.

요즘 많은 에세이는 짧은 토막 글들을 묶어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하면 일반적 구성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자면 작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가 지킨 소신은 더 있다. 어쩌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시각적 디테일과 묘사가 있는데, 나는 작가가 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그것은 작가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된 장면들이다.

(디테일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필요하다기보다는 작가가 느낀 그때를 재현하기 위해 필요했다.)


작가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때를 그렸고 과연 이야기는 장면처럼 그려진다.

마치 드라마 속 카메라처럼 우리는 김얀과 그 이야기 속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그때 장면들을, 그때 느낀 바를 꼭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책 속 사진들도 제 역할을 다한다.)

그만큼 작가가 남기려 했던 기억의 잔향은 깊고 진하다.

그러나 자세히 찾아야, 느끼려 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김얀 작가는 참 솔직하다.

글을 쓰는 다른 내 친구는 김얀 작가의 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책에서 마음이 통으로 읽히더라” “솔직해서 슬프고, 그래서 울었어”

그 친구도 김얀이 새긴 그 향을 느낀 것이다.

언젠가 음악하던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기억이 가사가 되면, 그땐 비로소 그 기억에서 졸업할 수 있게 된 거야”

때때로 창작은 기억의 졸업장이 된다.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ㄷ과의 기억.

이제는 지나버린 아름답지만 조금은 혼란했던 유년.

지나온 가족들과의 시간과 변화들.

이 모두는 책이 되었다.

이 책은 작가의 졸업장이다.




ㄷ 과의 시간이 지나, 책의 거의 마지막에서 작가가 타국에서 만난 J는 말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꼭 필요할까요? 사랑은 슬픔이고, 사랑은 실수죠. 사랑은 돈이고, 사랑은 고통이죠. 사랑은 결국 변하는 것이고, 사랑을 해치는 건 결국 사랑이에요. 나는 예전부터 사랑이라는 단어가 싫었어요. 이렇게 여러 얼굴을 가진 복잡한 감정을 한 단어 안에 모두 넣을 수 있을까요? 아이 러브 유. 어떤 작가는 ‘러브’라는 자리에 마시멜로나 오렌지 같은 걸 넣기도 하던데. 사실 저 자리는 그냥 비워놓아도 충분할 것 같지 않나요?
I ___ you, 나와 당신, 당신과 나. 사랑이라는 말이 없이도 나와 당신만으로 충분한 사이. 나는 우리가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 193쪽


책의 정말 마지막, 작가는 어머니와 미조리를 방문한다.

그것은 졸업식이었던 것 같다.

오래전 ‘힘들었고’ ‘어려웠던’ 기억으로부터의 졸업.


하나의 풍경이 아닌 것.

명료한 경계보다는 그라데이션인 것.

붙잡아두기보다는 지나는 시간동안 느껴야하는 것.

그것은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이었다.


+ 사족


사실 상업적 목적이 있는 출판을 할 때, 출판사와 편집자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상업적으로는 보다 적합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창작을 할 때 창작자는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생긴다. 작가는 그것을 지킨 것 같다.

어쩌면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 은 그 시점 작가가 쓸 수 있는, 자신을 가장 많이 투영한 책이다.

이병률 작가가 제안한 제목 ‘내가 사랑한 얼굴’을 쓰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반면 전작 ‘낯선 침대에서 부는 바람’은 이병률 작가의 조언을 따른 것이라 한다.)


작가는 제목에서 바다’를 지키고 싶었다.

아마도 어떤 부분에서는 편집자의 상당한 ‘편집’ 시도가 있었을 것 같다.

그것을 지키려는 작가의 노력도 있었을테고.

심지어는 그것이 상업적인 판단과는 조금 배치될 지어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지킨 것으로 추정되는, 짙은 문장들이 좋다.


이번 달(2020.10)에 김얀 작가의 새 책이 나온다. 이번에는 돈 이야기다.

마음으로 예술하는 작가 김얀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


https://brunch.co.kr/@babamba2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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