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나위 없었던 올해. 제대로 사는 것에 가까워진지도 모르겠다.
매년 12월 31일 그해를 회고하는 긴 글을 쓰고 있다. 어느덧 하지 않으면 가려움이 생길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 제례는 그 순간이 지나면 잊기 쉬운 기억들, 사건들, 사람들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다시 한해를 곱씹어보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늘 갈망했던 바대로 제대로 사는 것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한다. (주 - 제대로 살기를 갈망하는 마음은 5년전 내가 그 주제로 책을 쓰게 만들었다.)
매년 이어오던 매해 마지막 날 기록들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서른 다섯 회고 : 끔찍이도 짧은 청춘과 인생의 우선순위
결심을 굳히는, 서른 넷 회고 : 방황의 끝. 10년을 걸어 갈 나의 길 위에 서다.
결정, 그 이후 서른 셋 회고 : 정말 중요한 것은 인연과 꿈이다.
결정의 시기, 서른두 살 회고 : 변화도 견뎌야 할 것도 많았던, 2021년 회고
올해를 회고하자면 한 마디로 "더할 나위 없었다." 어쩌면 '삶의 크고 작은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며 제대로 살고자 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이만하면 꽤 잘한 거 같다. 이보다 더 잘하기 어려웠겠다. 싶었던 첫 해인 것 같다.
유시민 선생님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인용한 어떤 학자가 말했던가. '일, 놀이, 사랑'의 균형이 행복에 참 중요하다고 한다. 의미있는 행복이란 어느 한 쪽에 치우쳐짐도 한쪽이 모자람도 없는 상태를 만들고 지켜가는 과정이 아닐까.
올해 치열하고 행복했다. 회고 시작!
2025년은 지금까지 커리어 중 가장 큰 임팩트를 만든 해였다. 새로운 시장(미국, 엔터프라이즈), 새로운 사업(카카오 북미 광고 사업권 등)을 개척에 공헌했고, 조직장 역할을 더 많이 맡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크게 다음 사고 흐름으로 커리어를 재점검했다.
- 1. 연초부터 레드(채널톡 최시원 대표님)는 종종 나의 IC 역량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음. 그보다는 조직장으로서의 역량으로 더 큰 임팩트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음.
- 2. 더 행복한 성장을 위해 조직장으로서, 리더로서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탁월함을 추구’하기 위해 ‘강점집중과 강화’에 부단히 노력했음.
- 3. 개별 실무자(IC)를 넘어, 회사 차원을 넘어 리더로서, 시장 내 사고리더십을 더 공고히 만들고 싶었음.
성과를 내야하는 모든 일은 강점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나는 내 강점에 대한 이해도를 3가지 정도 포인트로 보았고, 올해는 그 역할에 기반해서 성과 창출에 집중했다.
- A. 비싸고 중요한 것을 잘파는 것 → 풀 타임 세일즈가 아니지만 24, 25 모두 기여한 Deal의 ARPU는 채널톡 최고 수준임.
- B. 고객과 파트너, 우리 팀의 어려움을 듣고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제안을 찾아냄 → 카카오와의 미국 광고 신사업 개발, 한국 초대기업(NDA)들과의 교섭 과정과 성과가 기억에 남음.
- C. 책임지는 것, 견디는 것. 빈번한 평가에 연연하지 않음. → ‘믿음’으로 버팀. 생각보다 신념에 기반한 일관성은 많은 성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믿음. 생각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 정말 없었음.
똘똘한 IC는 A(잘 팔기), B(제안 및 교섭)는 꽤 잘할 수 있다. 개인의 역량과 탁월함 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 가까운 창업과 채널에서의 지난 4년의 여정동안 느낀 바지만, 가장 희소한 역량은 ‘책임감’이다. 위기의 순간 사람들은 쉬운 선택들을 한다. 고통을 회피하고, 단기적인 보상에 이끌린다.
가장 강력한 어쩌면 유일한 나의 장점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앉아서 걍 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면 잘 팔아야했고, 잘 들어야했고, 잘 제안해야했고, 잘 견뎌야했다. 조직 내 리더십도 선언하고, 주장하는 것보다 역할을 맡고, 견디는 것, 보다 본질적으로는 ‘책임지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다. 불확실하고 어려운 일을 맡게 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숫자와 사업의 디테일을 보는 눈은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에 대한 약속(레드 표현으로는 “Commitment”)도 중요하지만 예측가능한 과정도 중요하다.
21년까지 채널톡에 사업개발 팀은 없었다. 나의 합류로 최초 1명 티오가 생겼고, 이후에는 여러 변동이 있었지만 총원이 3명을 넘었던 적은 없었다. 24년 6월부터 지금까지 1명 조직은 현원 6명으로, 최대 8명 T/O 조직까지로 성장했다. 당연하게도 쓸모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라고 물어보신다면, “중요한데 아직 절차화 되어있지 않은 일은 그냥 우리 팀으로 오고, 우리 팀은 그것을 어떻게든 성과로 만들어낸다”는 인식이 생긴 덕분이다.
생각보다 초기의 사업은 고객도 불확실하고, 그 니즈도 형해화 되어 있고 구체적인게 하나도 없다. 이때 최적해를 찾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가설에 기반해서 시행착오를 빠르게 많이 겪는 것이다. 미국 내 한국 엔터프라이즈(NDA)와의 교섭도, 카카오와의 북미 신사업도 우리 조직의 어느 누구도 해본 적이 없던 일이다. 올해는 어느정도 플레이북까지는 아니어도 검증된 일하는 방식인 ‘절차화’의 초입까지는 온 것 같다.
언젠가 우리 FDE팀 리더 최한길 님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팀원을 늘렸나요?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회사의 미션과 창업자들의 사유를 기반해서 잘 기록 / 정제된 문서로 늘 써왔고, 매주 2회 이상 주요 인재 영입을 위한 커피챗을 해왔다.(아무리 생각해도 지식노동자에게는 하드스킬로는 '글쓰기'가 제일 중요하다.)
인재를 만날 때나 온보딩 때 항상 이 문서들을 기반해서 합류 시 업무 예측가능성을 높였고, 업무 불확실성(조직개편, 신사업 시작 등)이 더 커질 것 같으면 리더십께 임시 리소스 충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그리고 합류한 인재들은 늘 크게 기여해줬음. 합류한 인재들에 정말로 감사드릴 따름이다.
올초부터 회사의 사정으로 한국 HQ 사업개발 팀이 미국 팀 주재원을 도와 미국 시장 개척을 원격으로 도와야만 했다. 이를 위해 정말 신박한 아이디어와 신사업들이 필요했는데, 채널톡 독자적으로 미국 공략이 어렵다면, 우리보다 훨씬 큰 거인의 어깨 위에서 같이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24년 3Q부터 카카오와 준비했던 신사업이 잘 론칭됐고, 회사에서는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미국 광고 사업까지 이어졌다. 낭낭하게 8개월간 30만 달러 정도의 취급고를 가져왔다.
아직 사업이나 제품이 준비되지 않아도, POC도 제안 해보고 먼저 돈을 받아보는 봉이 김선달(?) 플레이도 해봤다. 그럼 고객을 속인 건가? 그랬다면 제안도 안했다. 회사-개인의 인사이트와 역량으로 ‘아직 덜 준비된’ 조직과 제품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았을 때, 우리의 접근이 고객에게 널리 유익할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약속한 성과를 초과 달성했던 것 같다. 글로벌 광고든, AX든 그러했던 것 같고 딜이 되지 않은 경우에도 편안하게 서로 비즈니스 토크가 가능한 파트너처럼 지내고 있다. (카카오의 카운터 파트였던 Jaesung Kim 님과 큰 회사와의 사업개발을 정말 찐하게함. 정말 많이 배웠음. 언제나 깊이 감사하는 마음.)
시장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사고 리더십Thought Leadership’ 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시장 일반에 정말로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야한다. 올해는 기업 강연, B2B 컨퍼런스, 대중을 대상으로한 미디어에도 많이 나갔는데 소진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내용을 전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배우고 열려있어야겠다.
A. 매년 이어왔던 사업개발 모임 BizdevKR을 리부트했다. SW를 만드는 IT 사업에만 갇혀있고 싶지 않았다. 보다 강력한 사고리더십을 형성하고 씬에 공헌하기 위해 기존 호스트에 더해 실물 비즈니스와 글로벌을 해본 사람들을 새로운 호스트로 모셨다. 글로벌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Ian Park 파트너님을 어드바이저로 모셨다. 종종 이 분들을 만나면서 다른 국가, 다른 산업, 다른 규모 기업의 생생하게 만져지는 케이스를 듣고 배우는 바가 정말 많다.
B. 감사하게도 티오더의 후원으로 80명의 한국 사업개발 씬의 리더들이 모이는 행사 <Bizdev assemble>
을 만들었다. 연례행사인 <Bizdev assemble>에서는 22년 하반기 최초로 한국의 사업개발들이 모인 이래 연 1~2회 정도씩은 매번 다른 주제로 모이고 있다. 더 자주 모일 수 있는 건강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 씬에 공헌해야한다.
3. 사업개발 개론서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척박한 한국 사업 개발 씬에 꼭 필요한 책이다. 책 제목은 <지금 이기는 IT 사업개발>로 정했다. 빠르게 초고를 쓰고 26년말, 27년 1Q에는 꼭 출간해보고 싶다.
여기까지 회고만 보면 일만한 해인 것 같다. 맞는 것도 같은데.. 나는 그저 나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고 크고 작은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버텼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올해 다양한 범주의 일을 정말 많이 했지만, 그래도 자부심(?)을 느끼는 바가 있다면 연차를 모두 소진했다는 것. 한 번에 아주 길게는 떠나지 못했지만 틈틈이 금-월에 붙여서 연차들을 낭낭하게 잘 썼다. 일과 일상에서 지치는 때마다 올해로 넘어가는 겨울, 캐나다 벤쿠버에서 캘거리로 넘어갈 때 비행기에서 보았던 아득히도 크고 높은 록키 산맥을 떠올렸다. 눈덮인 봉우리 사이에 빙하가 녹은 호수들이 있었다. 저 호수에서 바라보는 반대편 한국 작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얼마나 사소하겠는가.
끝이 보이지 않는 땅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보다 넓은 세상을, 그리고 지극히 작은 나와 회사가, 일이 '그저 있음'을 느꼈다. 세상은 넓다. 나는 작다. 나를 둘러싼 과제와 문제도 크지 않다. 사소하다. 비록 작은 나이지만 작은 문제들에 침잠하여 단 한 번 뿐인 삶과 청춘을 낭비할 수는 없다. 더 많이 경험하고 느끼고 싶었다. 허무주의에 잠식될 시간은 없다.
'여행을 많이 떠났다'
단순히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일과는 상관성이 높지 않은 일상 속 사소한 순간과 느끼는 바에 대해 글쓰고, 말했다. 경험하고 느낀 바를 잡문으로 적는 것이, 사소한 대화로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이를테면 <가장 중국다운 도시 충칭에 다녀와서 느낀 소회들>)
역시나 사소한데 올해의 소비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4년동안 고민하다가 이제야 산 에어팟 프로 맥스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각기 다른 시기 처음으로 묵은 5성급 호텔 연박(파르나스 제주, 신라 제주)이다. 좀처럼 스스로에게 돈쓰는 걸 잘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올해는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따금씩 몸과 마음을 쉬게하는데 더 소비해도 좋겠다. 그래야 일에서 일상에서 잘 뛸 수 있다.
'올해는 제법 자주 뛰었다.'
더 자주 오래 뛰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최대로 많이 뛰어본 것은 10km 정도이다. 아직은 혼자 오래 뛰는 것이 지루하다. 뜻이 맞는 이들과 같이 뛰기가 훨씬 좋았다. 한강변을 뛰는 건 정말 좋다. 제일 재미진 건 걷다가 뛰면서 사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
뛰기는 그냥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데, 일을 위해서도 좋았다. 나는 골프도 전혀 안치고, 테니스는 4개월 간 해보았으나 막 즐겁지는 않았다. 대신 배울 점이 많은 멋진 분들과 꽤 자주 뛰었다. 그 경험이 종종 떠오를 정도로 좋았다. 내년엔 더 자주 오래 뛰어야지.
"(특히 일에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아?"
정말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되물었을 때, 그 대답은 YES였다. 그런데 차마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달까. 지나온 5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지금껏 나는 일을 꽤 좋아하고, 또 열심히도 해왔다. 맡은 바이든, 하고 싶은 것이든 강하게 몰입하고, '사람들에게 유익한' 글도 링크드인과 블로그에 나름대로 꾸준히 쓰고, 사업개발과 스타트업 씬에 가능한 선에서 공헌도 해왔다. 그덕에 감사하게도 빠르게 승진했고, 고객과 파트너 분들도 신뢰해주셨던 것 같다. 모두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일을) 더 열심히'는 정말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위한 필요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22년 소중한 나의 친구 문돌이가 떠나고, 24년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떠났다. 그 순간에도 치열하게 일했던 나는 그 헌신의 의미를 되묻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꿈’과 ‘인연’을 소중히
생은 소중하고, 청춘은 단 한 번 뿐이기에.
올 2월 평생 부모님과만 지냈던 11살 어린 여동생 희지가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 전날 가족들이 모두 모여 이 여정을 응원하고, 부재 동안 더 짙게 느낄 우리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25년 우리는 잘해낼 것이라 다짐했다. (다행히 희지는 잘 적응했고, 벌써 1천만원도 넘게 모았다고 한다. 희지에게 전하고 몇 가지 내용을 편지로 적었다. - 그 내용 중 일부 - )
무언가에 대한 미친 헌신과 공헌에는 그 의미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어쩌면 이루고 싶은 꿈보다도, 소중한 인연들이 더 소중한 것 같기도 하다. 앞서 말한 행복을 위한 '일 - 놀이 - 사랑의 균형'에서, 지난 5년간(어쩌면 10년간) 나는 일에 치우쳐진 삶을 꽤나 살았던 것 같고, 가족 외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헌신하기를 갈망했던 것 같다. (같이 재밌게 놀아준 unifit, 창업 동지들에게 깊이 감사하다.)
나는 B2B, IT, SaaS, AI 산업의 사업개발하는 직업인 이전에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보다 '우리'에 공헌하길 희망했다. 그런 사람을 만나길 바랐다. (사업개발 실용서 원고가 좀처럼 잘 쓰여지지 않았던 이유였던 것 같기도..)
그리고 그저 하루 하루 일만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던 내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설익었던 것은 아닌가. 섣부른 것은 아닌가. 음. 아닌 것 같다. 그러기엔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알만큼 알만한 나이는 되었다.
허니문이 끝날 때 찾아올 위기도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있다. 주저함도 두려움도 없이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최선을 다할 용기를 내려한다.
올 하반기 즈음, 우리 회사의 두 파운더 분들이 어느날 내게 물었다.
"헨리는 채널에 몇 년을 커밋(약속)할 수 있어요?"
"음.. 저는 고객을 만나는 것이 좋고, 팀이 이기는 것이 좋고 매일 매일 하루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는 미래를 특정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요. 미래 그 친구(나)에게 어떤 꿈이 있지 않을까요?"
대충 이런 말들이었던 것 같다.
"헨리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요?"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는거요! 저는 회사에 소속되는 것도, 회사를 만드는 것도 그 어떤 것도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파운더 형님들은 좀 뻥진 표정이었다. '원대하게 높은 목표'를 말하지도 않았고,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에게는 꿈이 있다. 내가 정의하는 '꿈'은 직업이 아닌, 단순히 계량화 수치화되는 목표가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인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상과 경제와 관계에서 스스로 결정한 책임을 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러자면 보다 강건한 몸과 마음이, 역량이, 책임지고 싶은 스스로와 관계가 무엇인지 그 믜미는 무엇인지 중요하겠다.
아무튼 N년은 더 채널에 남아있기로 하였다. 그 시간동안 나는 미칠듯이 더 몰입하려 한다. 일-놀이-사랑을 모두 잡은 나는 행복하다. '제대로 살기 어려웠던' 나는 제대로 사는 것에 조금은 더 가까워졌다.(고 믿음.)
나아가자.
인연과 꿈을 소중히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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