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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Jan 19. 2019

애매하지 않기란 어렵다

이도저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번듯한 삶과 나의 거리

다들 자기 자리를 너무나 잘 찾는 것 같아

(feat. 나빼고)

딱 맞는 자기 자리에 촵.


이른 나이에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고, 멋지고, 뚜렷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세대에서 그 극한은 김연아와 박태환, 손흥민일 것이요, 비교적 주변으로 보면 '번듯함'을 획득한 청년들일 것이다.


나는 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다들 참 대단하다.

내가 밍기적대며 20대를 보내고 있을 동안 누구는 5대 대기업에 갔다 누구는 전문직이 되었다 누구는 유망한 무언가('성공한' 웹툰 작가, 가수, 스타트업 CEO 등)가 되었다! 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 밖에도 누군가가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감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번듯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제법 많이 들려온다.


다들 참 멋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는 일만 번듯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인생도 즐겁게 사는 것 같다. (적어도 SNS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일관되며 세련된 사진과 글귀로 잘 정돈되어 있다. 이들은 예술을 향유하며 확고하게 취향있는 라이프 스타일대로 살아간다.

멋지고, 즐겁게!


다들 참 뚜렷하다.

누구는 직업도 뚜렷하고 취향도, 타는 차도, 사는 집도 '선망하는 쪽'으로 뚜렷하다. 그뿐이랴. 생각마저 뚜렷하다. 언론에 나오는 성공한 이들은 자기 확신이 돋보인다. 자신감있는 눈빛! 자신감있는 말투! 어떤 문제에 대한 확고한 주관! 이 분들의 뚜렷하다 못해 선명하고 강렬한 메시지는 이도저도 아닌 이들에게는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아내게한다. 음..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참 다들

대단하고 멋있고, 뚜렷하다.

아닌 사람이 훨씬 많겠지만 우린 대단하고 멋있고 뚜렷한 '다들'이 되고 싶어한다. 다만 되기가 좀 많이 어려울 뿐이다.


아.

나는 참 애매하다.


며칠전 끝이 나버린 나의 지난 20대를 회고해보면

세 글자로 내 20대는 '애매함'이었다.

좀 길게 풀어쓰면 나는 '이도저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앉서있는 개. 이 개는 앉아있는 것인지 서있는 것인지 애매하다.

일단은 이 <애매하다>는 말의 의미를 찾아보자. 네이버 국어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1. 희미하여 분명하지 아니하다.
2. 희미하여 확실하지 못하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명확하지 못하여 한 개념이 다른 개념과 충분히 구별되지 못하는 일을이른다.


즉 <애매하다>는 말은 어디에 속하는지 구분이 안되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나는 나의 무엇이 애매한지 또 그것이 정말 애매하기는 한 것인지 자가진단을 좀 해보려 한다. 다음 물음에 답해보겠다. 한국 사회에서 '번듯함 판독기'로 사용하는 일반적 물음부터 시작해보자.




대학은 어디 나왔어?

나 고졸이야. 근데 고졸인 것도 아니야. 왜냐하면 대학을 입학했는데 미등록 제적됐다가 재입학을 했거든. 그래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나올 예정이야. 그러니까 난 대학생이야!(?)


그래서 대학이 어딘데?

음..홍익대학교 경영학과를 입학했는데 아직 졸업을 못했어 그러니까 '나온 적'이 없지. 게다가 내가 다니는 학교는 뭐 아주 명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대학도 아니지. 성골 진골 따지던 신라 시대에 6두품(?)같은 학교라 할 수 있지. 나는 미대생이 아니니까.


대학생이면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

놀랍게도 있어. 게다가 알바도 아니야. 기획자로서 직업이 있는데, 이 기획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에서 너무 '애매해'. 단어가 '있어보이기는' 하는데 기획이라는 말만 듣고서 무슨 의미인지 알기가 어려워.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획자는 미국의 프로덕트 매니저랑 그나마 비슷하다고 하는데, 회고해보면 20대 내가 기획을 했던 영역은 주로 글을 쓰고 보고서를 만드는 영역이었어. 이전엔 프로덕트 매니저도 아니었던 거지.


정기적 수입이 있으면 직장이 있는 거 아니야?

아직 '정식 소속'은 없어서 프리랜서에 가깝다고 생각해. 프리랜서라는 말을 만든 사람 진짜 대단해. 뚜렷한 직업은 아닌데 알바는 아니고 그보다 돈을 좀 많이 번다는 의미와 그 느낌적인 느낌을 잘 표현했어. 지금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척척박사님, 척척석사님이 '만들려는' 스타트업 팀에서 '고졸이지만 고졸이 아닌' 기획자로 살고 있지.


여기까지만 봐도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아주 탁월하게 잘한 것도 아니며 일정 이상의 지적 수준은 가지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직업적인 커리어를 이룬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람 참.

애매하다.


어디 사람이야?

이 나라는 학연! 지연! 혈연! 의 나라니까 어디 지역 사람이냐고 물어본 거겠지? 내가 한국 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남성이라는 것은 명백하지. 서울에서 출생했고 유치원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고, 초중고를 인천에서 나왔는데 대학은 서울에서 다니고 생활권도 주로 서울이야. 그냥 잠만 인천 계양에서 자는 것 같아. 서울러라기에도 인천러라기에도 애매해.


근데 또 생각해보니 고등학교를 부평에서 나왔는데 또 인천 끝자락인 부평이었어. 부천시 바로 옆에 있는 학교. 게다가 그 학교는 졸업하고 과학고로 전환돼서 없어졌네. (진산고등학교 -> 진산과학고로. 내가 첫 회 졸업생이고 재학중일때 학생회장이었어서 진산고 동문회장을 겸하는데 지금 진산고등학교가 없다. 진산과학고는 교복도 교표도 진산고랑 99% 같은데 진산고가 아니다. 몇 년째 진산고와 진산과학고는 아와 비아의 투쟁중이다.)


그럼 부모님은 고향이 어디셔?

출신을 찾기 어려울 때 나오는 한국형 십자가 밟기 질문이군.(일본 개항전, 에도 막부는 기독교 신자를 구분하기 위해 십자가 밟기를 시킴.) 어머니는 강원도, 아버지는 충청도에서 출생하셨는데 10살쯤 나이때 서울에 상경하셨다고 해. 그러니 내 부모님은 영남/호남 사람도 아니고 충청도 강원도 사람도 아니지.


와 너 진짜 근본이 없구나. 음악은 뭐 좋아해? 취미는 뭐야? (몰아 질문하기)


그러게 이렇게 근본없고 볼 일인가...;;

음악으로는 나는 김현식의 몇몇 곡이 좋고, 유재하가 좋고, 김광석이 좋은데, 임재범도 좋고, 이승철도 좋고, 박효신도 좋고, 뮤지컬 배우 박은태나 마이클 리도 좋아. 주로 보컬리스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 물론 요즘 나오는 노래들도 좋아하고, 디스클로져나 혼네나 콜드 플레이같은 외국 아티스트의 들으면 있어보이는 몇몇 곡을 좋아하기도 하지. 취미는 기타치면서 노래하기 정도가 되겠다. 간헐적으로 버스킹을 하기도 하고 학교 가요제에 나가서 상을 받은 적도 있어. 어쩌면 쓰기도 취미일 수 있어. 그 명목으로 원고료를 받지도 않는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이런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지.


이정도면 꽤 좋아하는건데 싶으면서도 아티스트나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어. 이거 아니면 나 죽.음.하는 열정적으로 좋아죽겠는 그런 것이 없다는 말이지. 내 삶에서 운명같은 숙명! 직업적 소명! 그런 꽂힘은 없었다는 말이지.




위 질문과 대답을 통해 내가 졸라게 애매하다는 사실만큼은 애매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키우는 반려동물조차도 애매해서 한 때 남자여서 문'돌이'라 이름을 지은 강아지는 이제 남자가 아니게 되었다..(심영 선생님) 나는 왜 이렇게 애매하게 되었을까. 난 것이 애매한 것도 이유일 것이요, 20대 들어서 선택한 것들이 '번듯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일 것이다.


애매한 나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애매하다는 것은 '쓸모'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창업했던 회사의 첫 번째 사무실 - 이 사무실의 전경은 학원이라기보다는 돈없는 구글에 가깝다

20대 초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창업을 했었고, 스물 일곱 입대전까지 그 업은 대입 자소서 강의를 하고 더 잘쓰도록 돕는 일이었으나 일반적인 학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액 컨설팅 업체도 아니었다. 왕십리에 위치한 동네 자소서 교습소라고 할까.(신기하게도 부산에서도 왔다.) 아 애매하다 애매해. 첫 입주한 건물의 여든이 넘은 건물주 할아버지는 가끔 와서는 이렇게 묻고는 했다.


거 여기 뭐하는 뎁니까?

내가 모르는 일제 시대-한국 전쟁-이승만-윤보선-박정희-전두환낙지 대통령 시절을 경험한 할아버지에게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란 참 어려웠다. 그때 마다 나는 "애들 글 가르치는 일해요^^"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 says "아~ 좋은 일허네~" 건물주 할아버지는 당시 완전히 또렷한 정신을 가진 분은 아니었으나 그 분은 젊어서 의사였고, 분명 나름대로 통찰력이 있는 아저씨이었을 것이다. 그 아저씨가 보기에 '애매했다'면 정말 애매한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임대료를 내고 어떻게 운영을 했고 나중엔 웹 서비스도 냈다. (어떻게 했지?)


대단하고 멋있고 또렷한

'번듯한' 사람들과 '애매한' 나.

그래도 나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애매하다'는 말은 좋게 보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지금 '애매한 상태'인 나를 보면 내가 보기에 물론이거니와 누가 보았을 때도 아주 망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뭔가 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볼 수(는/도/가) 있다.


사실 20대 나는 크게 성공한 적은 없었으나 비참하거나 비명횡사할 정도로 망한 적도 없었다. 금수저도 아니고 심지어 20대 초반에 집이 파산을 했었는데도 20대 내내 알바를 안하고도 그럭저럭 먹고는 살았다. 스무살 때 고등학교 친구들과 송도 공사판에 막노동을 가기로 했던 날,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일을 못나갔고, 생동성 알바를 하기로 했더니 술도 안마시고 흡연도 안하는 내가 간수치 이상이 나왔었다. 스물 아홉 여름 전역하고는 알바몬을 깔아서 백화점 주차장 알바를 하려했더니 지금 일하고 있는 팀에서 급하게 일을 맡겼다. 항상 돈이 떨어질 것 같으면 내 앞에는 어떻게든 잡기를 이용해 돈 벌 일이 생겼다. (복권에 늘 당첨되는 럭키가이에 가까운데..당첨 로또가 언제나 3등이다.)


이러한 시계열적 사실 관계(..)를 토대로.

내 인생은 비명횡사하거나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어떤 기대감이 있다.

부족하고 모자라면 나는 또 새로 배우거나 신기한 기회나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운좋은 나는 별 걱정없이 잘 먹고 잘 잔다.


어쩌면 나는 잘될 지도 모른다

이도저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게 될지 몰라도 나는 나일 수 밖에 없네



포켓몬스터의 토게피. 이슬이가 안고 다닌다.

토게피라는 포켓몬이 있다. 토게피는 귀엽고 깜찍하다. (어떤 사진은 흉악하다..)귀엽기만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이 녀석은 신기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손가락 흔들기>다. 토게피가 손가락을 흔들면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랜덤으로 다른 포켓몬들의 기술이 나오는데. 그 기술이 물일수도 불일수도 풀일수도 있고 드문 확률로 초대박 강한 기술이 나올 수도 있다. 심지어는 아무 효과가 없는 그냥 잠들기일수도 있다(..)


문득 나의 짧고 지난한 인생은 잠들기 전문 토게피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손가락을 흔들어서 잠만 자기가 나와도 망하지는 않았다. 잠들기에 당해도 남은 체력만 좋으면 죽지는 않는다. 나의 이도저도 아닌 <손가락 흔들기>때마다 나는 여러 속성(물, 불, 풀 등 온갖)을 시험했다. 그때마다 나는 죽지않을 만큼 운이 좋았고 그때 남은 체력 게이지가 있어 망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물쭈물하다가 며칠전 나는 서른당해버렸고 이제는 나의 길이 단지 애매한 것이 아니라고 정말 증명해내야 하는 날이 오고있다. 중년의 토게피라면 귀엽지도 않을 것 아닌가..


이제는 증명해야한다

나의 애매함이 사실은 새로운 길이었다고

전설의 포켓몬 크라잉넛처럼!


유시민 아저씨의 마르지 않는 항산의 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면 크라잉넛이 짱이야! 인생은 크라잉넛처럼! 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책이 나오자마자 나는 사서 보았는데, 유시민 아저씨가 말하는 크라잉넛이 사실 전설 속 포켓몬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전설의 포켓몬 크라잉넛

홍대 앞에 아는 작가님과 인디 뮤지션(스트릿건즈!)인 그 분의 부마께서 운영하는 락샵이라는 굿즈가게가 있다. 이제는 꽤나 오랜 어떤 날 나는 학교 앞을 전전하다 캔맥주를 사들고 작가님을 뵈러 그 곳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락샵에는 홍대 인디 뮤지션들을 어쩌다 조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급전개로 작가님과 그 부마님과 크라잉넛 아저씨(아마도 드럼치는 분)과 마당에서 맥주를 마시게 됐다.


나는 정말 궁금해서 음악을 어떻게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약간고민하다 크라잉넛 아저씨 says


그냥... 계속 했는데?

크라잉넛 아저씨도 스트릿건즈 아저씨도 말했다. 그냥. 했다고..

그렇다. 그들은 그냥 그들의 길을 간 것이다. 대단한 이유라기보다는 그냥 한 것이다.

다만 그들의 "그냥"은 일관성있는 최선의 그냥이었다. 전문성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음악이라는 길에서 열심히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그들은 방망이를 깎았다.



나도 할래

최선의 그냥


회고해보면 나의 <손가락 흔들기™>도 그냥이었다.

다만 이제는 진득하게 최선의 방망이를 깎아야겠지 한다.

나는 말하고 쓰는 일에서 길 위에 서고 싶다. 기왕 쓰기 시작한 거 더 잘 쓰고 싶고, 더 잘 말하고 싶다.


나의 말하고 쓰는 길은 번듯하고 멋진 선망하는 직업은 아닐 것 같다.

의경 시절 입은 제복 속 나는 '반듯함'을 코스프레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내가 될 수 없음을 진심으로 알았다. 나는 나를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내면의 거울 속 나는 없던 길을 내라고 말했다.

말하고 쓰는 일에서 없던 길을 내라고.


번듯하지 못한 나도 '반듯함'은 연기할 수 있었다.


아마도 미래의 나도 매우 높은 확률로 애매할 것이다.

애매한 나의 <손가락 흔들기™>는 또 다시 '잠들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끝내 시시한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도저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게 될지 몰라도.

나는 내 길을 가야한다.



그냥.







애매하지 않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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