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행복한 사람

오늘 나의 작은 기쁨과 즐거움은 수선화 너였다는 걸.

by 김민율

부지런히 행복한 사람




어떤 행복은 육체와 정신이 부지런히 일하고 움직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게으른 사람은 얻을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쉼 없이 자기 존재의 소리를 들으며 세계를 경작해 왔다. 아기 적 육체는 누워서 손발만 버둥거릴 뿐이지만 차츰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기어 다니고, 첫걸음을 떼고 정신세계를 넓혀간다.

오직 사람은 육체와 정신이 일을 하고 움직임으로써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임무다. 걷는 일에, 쓰는 일에 몰두하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세계를 창조하기도 하고,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어떤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게도 된다. 그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삶에서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하고, 어떤 만족스러운 열매도 얻지 못한다.


나의 아버지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꽃나무를 좋아하셔서 꽃나무를 마을 사람에게서 얻어 오거나, 시장에서 사 온 나무를 마당가에 옮겨 심곤 했다. 그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풍요로운 집이 되었다. 여름에는 오디를 따먹고 손바닥과 입가가 검붉게 물든 아이가 되어 뽕나무에서 고치를 지은 누에를 구경하다가, 사라져 가는 오디 꽃 그림자와 함께 저물기도 했다. 아버지가 심은 무궁화 꽃잎을 따서 콧등에 붙이며 놀기도 하고, 거대하게 자라나 내 키를 훌쩍 넘겨버린 해바라기의 키에 어린 키를 대보기도 했는데. 봉숭아 꽃잎을 따서 백반을 넣고 돌멩이로 찧어 손톱에 물들이던 봉숭아물 무늬는 어른이 된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어른거린다.


흰머리가 평수를 넓혀 가는데 아버지의 꽃나무에 대한 사랑은 일편단심이었다. 새로 지은 붉은 벽돌집 마당가에도 꽃나무를 하나 둘 옮겨 심으시더니, 몇 년 사이에 풍성한 꽃의 일가를 이룬 걸 가만히 바라보며 흐뭇해하시곤 했는데, 어느 날 못 보던 꽃나무 그늘 아래서 아버지가 꽃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백일홍이었다. 아버지의 눈빛에는 그리움이라든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사람의 따뜻함과 평온함이라든가 그런 맑은 것들이 서려 있었다.

백일홍 나무가 우리 집 마당가 입구에 버젓이 자리 잡고 살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백일홍 나무가 예쁘다고 엄마한테 말하던 날 저녁에 엄마와 나는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엄마가 말했다.

“저 백일홍을 사다 심은 게 아니야. 글쎄 니들 아빠가 잼말에 경운기를 끌고 갔다 오더니 경운기에 저걸 싣고 왔더라니. 내가 놀래서 아니 누가 안 봤냐고 하니 선미 집 아줌마가 봤다지 뭐야. 아이고, 어떡할라고 남의 나무를 뽑아와. 선미 집 아줌마가 봤으니 동네에 말 나면 어떡할라고.”

아버지가 꽃나무를 훔쳐 오시다니. 백일홍 나무는 강릉 시내 어느 사람이 우리 마을에 땅을 사놓고 놀리기도 뭐해서 다른 나무 몇 그루와 같이 심어 놓았는데 그중에 딱 한 그루 심어놓은 꽃나무였다. 엄마가 이야기를 계속 꺼냈다.

“백일홍 그거 딱 한 그루 심어 놓은 걸 뽑아 왔으니. 내가 말 나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말나면 나는 거지 뭐 하잖아. 내가 참, 경운기에 백일홍 나무를 싣고 온 걸 보고 혼자 배꼽 잡았잖아. 얼마나 웃기는지. 저렇게 착한 사람이 남의 백일홍을 뽑아 오다니 내 속으로 생각했다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백일홍이 예뻤으면 딱 한 그루 심어놓은 걸 뽑아왔을까. 아버지는 늙어갈수록, 죽음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갈수록, 생명 있는 것을 돌보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아마도 남의 땅에 심어놓은 백일홍 나무를 뽑아와 우리 집으로 들인 것은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는 백일홍을 매일 같이 돌보며 그 꽃빛과 생명 빛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백일홍이 남은 생애의 마지막 즐거움과 기쁨이었으리라.

그저 새벽 일찍 일어나 꽃나무들을 돌보며 가지치기를 해주고 물을 주는 일, 풀을 뽑아주는 일, 그러한 작고 아름다운 일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 마당가에서 꽃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라나며 허공으로 제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아버지는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 꽃나무와 꽃나무 사이의 간격을 다듬어 주고, 시야가 트이게 웃자란 가지들을 쳐내 주었다.

아버지가 정성 들여 꽃나무를 섬기는 데에는 사랑과 믿음이 큰 몫을 했을 것이었다. 인간에게 사랑과 믿음이 없다면 어떤 생명도 섬길 마음이 솟아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꽃나무에 대한 사랑은 종교에 가까워 보였다.


꽃나무의 아름다움과 생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잘 돌봐주는 사람은 꽃나무 한 그루의 우주를 이미 다 소유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평생의 연인처럼 꽃나무의 우주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아름다움과 생명을 섬기는 천진난만한 사람! 아름다운 도둑이자 꽃나무의 우주를 소유한 부자였다. 나는 그런 도둑의 딸이 되고 말았지만.

어떤 부자는 끝없는 욕심으로 세상의 보물을 다 끌어 모으다가 죽은 후 해골이 되어 거지의 동냥그릇이 되었는데, 그 동냥그릇은 금은보화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릇이었다. 금은보화를 끌어안고 죽은 부자처럼 헛되게 인생을 낭비하며 살 것인지. 생명과 아름다움을 돌보며 의미 있게 살 것인지. 행복을 찾아가는 선택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꽃나무 가꾸는 일에 몰입하며 행복을 찾는 삶을 살았다면 나는 쓰는 일에 몰입하는 삶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았다. 이곳 너머 다른 창조된 세계에 집중하고 어떤 시적 대상에 스며들 때, 그리하여 마침내 시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딸 때, 나는 그 어떤 세속적인 것들 보다 가치 있는 것을 가진 부자처럼 더 잘 살고 싶은 생에 대한 욕구를 느낀다.


이른 봄날. 해 뜨면 부지런히 수선화를 보러 갔다. 산책길에 수선화 꽃밭을 지나다가 어제도 오랫동안 앉아 머물렀던 그 자리, 시적 풍경 속으로.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 침대에 누워서도 노란 꽃무늬가 어른거려서. 흰나비도 팔랑팔랑이며 노란 꽃잎에 내려앉았다. 수선화와 흰나비는 다정한 사이였다. 아직 꽃봉오리에 머물러 있거나 활짝 핀 작은 수선화 곁에 앉아 나도 다정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어울렸다. 서로에게 속삭이면서. 수선화는 나의 말에 나는 수선화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가 태어난 건 우연한 사건의 결과물에 불과한 건 아니란 걸. 지금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부지런히 해야 할 일, 살아야 할 일이 있음을. 신은 너에게 어떤 목적 있는 삶을 주었다는 걸. 가끔은 무거운 짐 같지만. 너는 이 우주에 딱 한 사람! 존재 자체가 크나 큰 의미이며 기막힌 비밀! 기적이며 뜻밖의 아름다움이란 걸. 꽃밭의 수선화들! 모두 평범하고 똑같은 수선화 같아 보이지만 닮은 노란 꽃무늬일 뿐.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을 쫓는 복사본으로 만들어져 한 철 살다 지는 꽃이 아니란 걸. 오늘 나의 작은 기쁨과 즐거움은 수선화 너였다는 걸.


내일도 해 뜨면 부지런히 또 보러 오겠다고 했다. 봄바람에 살랑이는 조용한 수선화 음률을 듣고 싶다고. 금방 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 <내 생애 아름다움을 찾아서> 연재는 22화 부지런히 행복한 사람으로 마무리 합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김민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