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기초반 이야기, 첫 달 수업
발차기
수업은 발차기를 한 바퀴 도는 걸로 시작한다. 중급반 진급을 앞둔 사람들까지 모두가 킥판을 잡고 발차기만 하면서 한 바퀴 돈다. 그런데 나는 발차기만 할 때 유독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속도가 느렸다. 평소 속도가 느려서 안심하고 앞이나 뒤에 줄 설 수 있게 되는 할머니보다도 느렸다. 누구든 내 뒤에서 수영하면 중간에 한참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초보자들에게는 발차기를 할 때 무릎을 굽히지 말라고 한다. 다리가 굽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엉덩이와 허벅지가 연결되는 그 부분만 왔다 갔다 움직인다. 무릎, 발목 관절이 없는 레고가 발 전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습하지 않으면 초보자들이 너무 많이 무릎을 굽히기 때문이라는데, 아무리 그래도 레고 발로 발차기하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배에서 노를 저을 때 노가 흐물거리면 속도가 안 난다. 노가 굽혀지지 않고 단단해야 물살을 눌러 추진력을 받는다. 무릎을 굽히지 않는 다리도 노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양쪽 다리가 단단한 두 개의 노가 되어서 갈지자로 물길을 팍팍 저어야 하는구나!
나는 레고에 빙의하여 무릎과 발목이 굳어 있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발을 통째로 움직이려고 애썼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느리고, 이상했다. 하지만 몸치로 살면서 어떤 동작이든 새로 배우면 이런 이상함을 느꼈기에, 이 이상함도 내가 못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걸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J가 나에게 말했다.
"무릎을 너무 안 굽히는 거 같아."
"강사님이 무릎 굽히지 말라던데?"
"아... 그렇긴 한데.... 음...."
J는 이미 자연스러운 자유형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J는 잘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뛰어난 몸의 감각으로 배우는지라 이론을 빠삭하게 알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J는 나에게 어느 정도로 왜 무릎을 굽히지 않아야 할지는 명확히 말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튜브에서 자유형 영상을 검색해 봤다.
J는 이미 여러 수영 유튜버를 알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예슬 님의 유튜브를 추천해 주었다. 자유형에 관한 영상을 하나씩 보다 보니, 나와 같은 영법이 'bad case'로 소개되었다.
그 이름은 자그마치 '룰루랄라 영법'.
무릎을 너무 안 굽히면 엉덩이가 좌우로 같이 움직인다. 그래서 한껏 신나 발랄하게 어딘가를 향해 걷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이름이 붙어졌겠지.
그 영상을 보면서 내 다리가 잘못되었고, 내 수영이 '룰루랄라 영법'이라는 건 인정했지만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영법 이름.
얼마나 치열하게 그 다리를 유지했는데, 이름이 너무 태평스럽지 않은가.
나는 이 영법을 레고 영법으로 부르기로 했다. 관절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운동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열심히 하려다가 잘못되는 영법.
다리는 노가 아니라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되어야 한다. 허벅지 힘으로 미는 감각을 느껴야 한다고.
왼쪽 고개를 돌리기
왼팔을 돌릴 때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자 팔이 좀 더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좀 돌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강사가 킥판을 빼라고 해서 왠지 검증도 받은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는 문제가 없겠지. 자신감 있게 나아가는데, 또 J의 태클이 들어왔다.
"고개를 왜 그렇게 왔다 갔다 해?"
훗, 내가 가르침을 전수할 때가 온 건가..?
나는 "왼팔을 돌리는 게 잘 안 되었는데, 몸통의 방향을 왼쪽으로 돌리니까 좀 잘 되었고, 그렇게 바꾸자마자 강사가 킥판을 빼고 하라고 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그 전보다 속도는 오히려 안 났고,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하느라 살짝 정신 없어지긴 했었다. 고개가 좌우로 격하게 돌아다니다 보니 상체도 좌우로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가르침의 방향은 어김없이 J에게서 내게로 향했다. 왼쪽 팔을 돌릴 때 상체를 약간 돌리는 건 좋지만, 고개까지 돌리면 안 된다고 했다. 듣고 보니 자유형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회원들도 고개까지 돌리는 경우는 없다는 게 눈에 보였다.
발을 너무 꼿꼿하게 지탱해 발차기할 때마다 하체가 좌우로 흔들리고, 고개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해 숨 쉴 때마다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니... 물 안에서 수영하는 거라기보단,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와 몸부림치는 것에 가까웠을 것 같다.
그냥 물고기도 아니고 로봇 물고기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