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그 후로 계속 틈만 나면 수영 이야기를 했다. 어떨 때는 수영이 J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바쁘게 무언가를 하다가도 자주 넋 놓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면 어김없이 '수영'이라고 답했다. J는 수영에 관한 여러 가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수영에 관한 유튜브도 여러 개 봤다. 나는 J의 성화에 못 이겨 ‘음파하’(수영에서 숨쉬기 배울 때 쓰는 소리) 영상을 봤다. '음파하'는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아직까지 마스터하지는 못했다.
수영장에 다니려면 준비해야 할 게 꽤 많았다. 수영복, 수경 등 수영과 직접 관련된 물품뿐 아니라 수영 전후 씻을 때 사용할 샤워용품, 바로 출근할 때를 대비한 스킨, 로션, 화장용품 들도 꼼꼼이 챙겼다.
아, 물론 J가.
사실 나는 수영복을 나중에 사고 싶었다. 수영장 등록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 성공하고 나면 그때 사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준비성이 철저하고 모든 게 미리 세팅되어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J는 기다릴 수 없었다. 이번 달에 실패해도 다음 달에 등록하면 어차피 수영복이 필요한데, 왜 기다리냐는 J의 말에 더 대꾸하지 못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수영장이 마감되어 어쩔 수 없이 등록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수영모자와 수경은 이마트에서 눈에 보이는 걸로 구매했는데, 수경을 아무래도 잘못 산 것 같다. 테두리가 하얗고 알이 완전한 투명이라서 눈이 잘 들여다 보이는데, 맹꽁이 안경을 쓴 것처럼 아주 못생겨 보인다.
J의 준비성은 물품을 사두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수영장을 미리 방문까지 해 봤다. 나는 수능 시험장에도 미리 안 가 봤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군말없이 따랐다. J가 여러 모로 신경 쓰고 준비해 주는데 최소한 잘 따르기라도 해야지. 강습이 끝나면 바로 출근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출근 동선과 걸리는 시간을 미리 체크해 두기 위한 목적이 컸다.
수영장 건물은 매우 크고 눈에 띄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센이 강제로 온천에서 일하는데, 그 여관에서 내뿜던 것과 비슷한 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수영 강습을 가는 사람들의 무리와 어우러져 수영장 건물로 향했다. 건물 입구 근처에 있는 벽에서도 따뜻한 연기를 내뿜는 연통이 있었는데 그 근처를 지나자 수영장 특유의 냄새가 났다. 평소에 맡을 일 없는 그 낯선 냄새가 앞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실감시켜 줬다.
안내 데스크는 입구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새로 온 회원임을 밝히자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생겼다. 회원 등록지에 개인 정보를 조금 적고, 본인 식별용 사진을 찍었다. 추위를 피하려 롱패딩에 달린 모자를 대충 뒤집어썼다가 벗어서 머리가 헝클어진 상태였는데, 거울도 보지 않고 찍었다. 다행인 건 어떻게 찍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거. 모르는 게 약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운동부에서 주로 공동구매할 것 같은 디자인의 에나멜 가방을 하나씩 줬다. 가방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게도 꽤 됐는데, 그래서인지 그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면 사람마다 가방 모양이 조금씩 달랐는데, 옛날 스타일의 느낌이 얼마나 나는지로 이 수영장에 다닌 연수를 약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회원 등록을 마치고 수영장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 봤다. 무거운 유리문을 열자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훅 들어 왔다.
따뜻하네..?
첫 느낌이 좋았다. 2층 난간 아래로는 수영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쪽 끝에는 화려한 구조물의 유아 풀장이 있었고, 중간에는 메인 수영장이, 반대쪽 끝에는 온탕이 있었다(인터넷에서 검색해 봐서 이 수영장에 온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줄지어 수영을 해 나가는 사람들, 양팔을 벌리고 벽에 기대어 온탕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사람들. 건강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저 공간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나름.. 괜찮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