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치 동지들 그냥 하세요, 우리는 쉽게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수업 시간
내 차례를 기다리며 마지막 줄에 서 있는데, 강사가 물었다.
"수영이 재밌어요?"
강사는 가끔 이렇게 앞뒤 없이 갑작스러운 질문을 종종 한다.
'수영이 과연 재미있는가'에 대해서는 예전에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수영은... 재미가 없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나면 왠지 재밌었던 것 같은 기억이 생겨 있다'
수영을 다니는 건 아직까지도 부담스럽다.
주말을 지낸 후 다가오는 수업 전날 밤에는 다음날 생각에 무서워하고, 아침에 모닝콜이 울리면, '나는 왜 수영을 다니고 있지?'라는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긴다. 매번 찾아오는 두려움과 후회는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다.
수업을 할 때는 너무 힘들고, 몸은 원하는 대로 안 움직이고(분명 평영 팔을 하려고 했는데, 나는 왜 접영 팔을 하고 있을까..?), 저번 수업까지 잘 지켰던 팔 각도가 또 달라져 있다. 조금 빨라져서 기뻐하다가도 잘하는 거에는 또 금세 익숙해져서, 내가 빨라진 게 아니라 수영장이 작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자세를 가르쳐 주는 시간이 적고, 수영을 계속해야 하는 수업일 때는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여러 바퀴를 한꺼번에 돌아야 할 때면, '이번 바퀴만 돌고 좀 쉴까'하는 생각을 매 순간 한다.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몰린 사람들 사이에서 비집고 샤워를 하고, 오리발, 스노클, 세정 용품, 화장품까지 짊어지고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스포츠센터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수영장에 들어갈 때보다 한층 밝아져 있는 야외의 모습을 보면 오늘도 수영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라 아직 해가 뜨지 않았더라도 괜찮다. 새카맣던 새벽하늘이 흩뿌옇게나마 밝은 기운이 더해져 있다. 가끔 공기가 무거울 때면 약하게 나는 수영장 냄새도 좋다.
운동과 샤워로 노곤 노곤해진 몸에 찬 기운이 들어오면 아침을 꽤 발전적으로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영장 다니면서 비염이 심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수영장만 다녀오면 눈과 코도 뻥 뚫린다.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실력의 계단 상승 구간에서는, 괜히 자신감도 생기고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뽐낼 정도 아님).
나는 내가 몸치라는 걸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탓에 여러 운동을 못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닌가 보다.
강사가 말하길, 처음 수영을 시작하고서 생각보다 늘지 않는 실력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했다.(후... 희망 좀 그만 주고 싶다)
내가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결석도 잘 안 하고 좌절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아서 약간 대견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냥 생각 없이 다닌 것뿐이다.
나는 수영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수영에 어떤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수영을 꾸준히 다니고 싶고, 아침에는 6시에 일어나고 싶고,
이왕이면 체력이 좋아지면 좋겠고, 허리도 좀 꼿꼿하게 펴지면 좋겠을 뿐이다.
(쓰다 보니 많네)
아무리 몸치여도 시간을 들이면 아마추어 수준에서 잘하는 정도까지는 된다.
그냥 뭐든 시작할 때, 남들보다 한참 뒤에서 시작해야 할 뿐. 그래서 그 성공이 극적으로 보일 뿐이다.
80점 받은 사람이 85점 받게 된 것보다 20점 받았던 사람이 60점이 되면 더 칭찬받는 것처럼.
사실 80점에서 85점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더 대단할 수도 있는 건데.
내가 몸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이런 걸 알려주면 될 거 같다.
몸치 동지들 그냥 하세요, 우리는 쉽게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