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 없이 1,500m 돌기 도전!
아주 가끔씩 수업 중 장거리 수영을 할 때가 있다. 매번 하는 발차기 한 바퀴, 워밍업으로 천천히 자유형 한 바퀴를 돌고 난 후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도는 거다. 물론 목표는 주어졌다. 15바퀴. 우리 수영장은 길이가 50m기 때문에 15바퀴를 돌면 1,500m가 된다. 쿨다운으로 천천히 한 바퀴까지 더 돌면 총 18바퀴 1,800m의 코스가 된다.
한강에 있는 무인도인 밤섬을 다녀올 수도 있는 거리다.
오리발을 낀 상태에서 목표는 20바퀴가 된다. 2,000m. 중급반일 때 두 번 했었다. 그때는 시간 내에 다 못 돌고, 16바퀴 정도 돌았다. 그때도 쉬지 않고 돌았다면 두 바퀴 정도는 더 돌았을 거 같는데, 내 실력을 아는 강사가 나를 잡고 억지로 쉬게 만들었었다. 내가 무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다지 무리가 되지 않았고, 페이스 조절도 잘하고 있었는데, 좀 아쉬웠다.
중급반에서 오리발 20바퀴를 시키고, 상급반에서 맨발 15바퀴를 시키는 걸 보면 알듯, 맨발 15바퀴보단 오리발 20바퀴가 좀 더 수월하다. 발목이 좋지 않아 숏핀을 끼고 있긴 하지만, 크기가 작아도 오리발이 주는 추진력이 상당하다. 발끝에서 부력을 받기 때문에 몸이 조금 더 스트림 라인에 가까워진다. 저항을 없애는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 수영을 쉽게 한다. 오리발로 빨라진 속도감 자체가 주는 재미도 꽤 크다.
오리발 16바퀴 돌았을 중급반 시절보다 자유형 실력은 꽤 많이 늘었기에, 이번에는 15바퀴 목표를 달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영법은 우리반에서 하위권이지만, 자유형만큼은 잘할 자신이 있었다.
장거리 수영을 해 보기 전에는, 수영 자체가 너무 힘들거나 숨이 막혀서 지치거나 할까 봐 걱정했는데 실제로 해 보니 다른 어려움이 더 컸다.
수업 때는 길어야 한번에 4바퀴 정도 돌고, 선두를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수영 자체에만 집중해도 된다. 하지만 장거리에서는 각자 지금 돌고 있는 횟수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지금 몇 바퀴째 돌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수영을 할 때마다 유의할 자세를 하나씩은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 외의 다른 생각들이 떠오를 때가 문제다.
주식 그때 팔 걸...(2022년 최다)
브런치에 이런 멘트를 적어야겠다.
자유형 자랑하고 싶은데 봐줄 사람이 없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이빙이 너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길어지면 내가 몇 바퀴째 돌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돌 때마다 횟수를 계속 마음속으로 읊었다. 한 팔을 저을 때마다 횟수를 세는 거다.
오른쪽 팔에 '하', 왼쪽 팔에 '나', 오른쪽 팔에 '하', 왼쪽 팔에 '나'
한 바퀴를 돌고 나면, 횟수를 올렸다.
오른쪽 팔에 '두', 왼쪽 팔에 '개', 오른쪽 팔에 '두', 왼쪽 팔에 '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생각을 비우는 명상처럼, 스트로크에 집중해 잡생각을 비우는 수영이 되었다.
중급반 이상부터는 새로 오는 회원도, 그만두는 회원도 많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알고, 실력도 대충 알고 있다. (초급반은 거의 매주 없어지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도, 유대감도 적다) 그래서 줄도 서로 실력을 가늠해서 서고, 수영 중에 남을 앞지를 일이 잘 안 생긴다. 혹시 앞사람이 조금 늦으면 천천히 하면서 자세를 신경 써도 충분히 연습이 된다.
그런데 장거리 수영은 한 바퀴 따라잡은 뒷사람을 몇 번 앞질러야 한다. 특히 15바퀴 목표를 채우려면 추월은 피할 수 없다. 대부분 시간 내에 15바퀴를 못 돌기 때문이다.
추월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앞앞사람과 앞사람의 거리를 고려해서, 내가 들어갈 공간이 보이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약간의 역주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월을 하기 좋은 순간이 되었다 싶으면 있는 힘껏 수영을 해서 앞질렀다. 다들 페이스 조절을 하며 천천히 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월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추월하기에 좋은 순간이 잘 오지 않아 그걸 가늠하고 계산하는 게 머리 아팠다.
우리 수영장은 한 라인의 가로 폭이 넓은 편이라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 추월할 수도 있긴 하다. 그렇게 추월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괜히 부상을 당할까 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남자들 발차기에 내 손가락이 잘못 얽히면 당분간 수영을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나는 보도블록의 작은 단차 때문에 발목을 다치고, 후유증까지 생겨 버린 유리 몸이니까..^^;
정 각이 안 나오면 라인 끝에 도달하기 전에 유턴해 오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도는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딱 한 번 했다.
추월을 계속 고민하고 고려하다 보니 수영 자체의 지루함은 좀 덜했다. 뭔가 아케이드 게임의 캐릭터가 된 느낌이랄까...
횟수를 세고, 추월을 가늠하고, 추월을 위해 피치를 올리고, 부지런히 수영했더니 결국 시간 내에 15바퀴를 다 돌았다. 총 36분 걸렸다. 추월을 더 잘했다면 시간을 단축했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 바퀴를 돌았을 때, 우리반 일등 아저씨는 이미 워밍업 수영까지 끝내고 쉬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내가 완주했다는 사실에 놀라며 같이 기뻐하더니, (다른 영법을 잘 못해서 그런지, 내가 장거리를 잘하는 거에 많이들 놀란다)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수영장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어. 1,500m를 돌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1,500m를 도는 사람이 된 거야~!"
그 아저씨는 나보다 더 뿌듯해했다.
네, 저는 이제 1,500m를 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ye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