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아무리 하찮은 나라고 하더라도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또는 반대로 나를 끌어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곳에 나의 잘못은 없다) 나를 깎아내리고, 괴롭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호의나 적대감이 가득한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살아나가는 힘'은 최종적으로는 나에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얻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란 철저하기 나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알 수 있다.
함께 있을 때 나에게 힘을 주고, 또 단지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이 나아지는 것. 이런 일들은 삶의 도처에 일어나는 흔한 일들은 아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마주 보면서 웃을 수 있고 즐거운 음식을 먹고 날씨가 좋은 날 함께 걸을 수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깊이 공감해 주는 것, 또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것.
우리는 이런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나의 세계가 좀 더 넓어지고 확장되며 상대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 깨닫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들은 분명 다른 세계를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 언니, 나는 엄마와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정말 죽고 싶어요. "
나는 종종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으로부터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괴롭다는 이야기들을 듣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단지 설정된 관계의 모습일 뿐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에 구속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천륜을 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멀어질 수는 있다. 단지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은 해소가 된다(물론 완전한 해결에 이를 수는 없겠지만).
과거의 나는 문제가 생기면 이를 뿌리 뽑으려고 애썼다. 마치 잡초를 하나 발견하면 후에 미칠 수 있는 파장을 염려하여 밭을 갈아엎는 식이었다. 나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관계의 단절을 시도한다. 무엇인가 해결하거나 수용하려는 태도를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경우에 문제가 있음에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리셋을 원하는 나로서는 처음에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ㅡ 삶이란 대부분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지점까지 조금 멀리 흘러가 현상에 대한 관조(觀照)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나는 내 내면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는 드디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라, 나의 모습과 나의 내면을.
나의 내면은 전혀 단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저런 상처로 얼룩덜룩해진 상태였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문이 닫혀 있었다.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열리지 않을 정도로 깊고 견고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성장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내가 안쓰럽지 않았다. 오히려 한심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나의 내면아이(inner child)는 내가 감싸 안아 줘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한 사람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을 무척 어려워했다. 물론 나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무척이나 단단해졌다. 회피와 방황의 공간은 불안했지만 안전했고 효과적으로 나를 숨길 수 있는 방편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자아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성장에 이르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며 내가 위로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나는 결국 내가 가장 피하려고 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치유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나와 적대지점에 있는 ㅡ 나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 ㅡ 에게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만약에 나의 부모, 가족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느끼는 그들에게 ' 자책감을 가지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멀리 떠나라. '라는 조언을 한다. 어떤 관계에서는 내가 '싫은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자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심호흡을 하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좀 더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전히 나의 내면아이는 깊고 견고한 벽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런 나라도 뭐 어떠한가. 나는 과거에서보다 좀 더 성장했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