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뜨지 말아라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by 정현주 변호사


지금의 내가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무척 뜬금없고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 아침은 해가 들지 않는 눅눅한 어둠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마치 낮도 밤과 같았다.


어두운 하늘은 주위를 분간하지 못하도록 낮게 드리워져 어느 순간 어두운 나의 마음 한편에도 함께 머물렀다.


해야, 뜨지 말아라.


마음은 충분히 갈무리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찌 되었든 길을 나서야 했다. 산책을 나설 때는 늘 그렇듯이 비슷한 음악들을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는다. 최근에는 radiohead의 오래된 곡들을 늘 듣고 있다. 밖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쌀쌀한 느낌이 감돌았다. 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코트를 입고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섰다. 마침 'the tourist'가 흘러나왔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떠나간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한 상처들을 남기고, 또 타인의 마음을 괴롭혔던 것일까? 내가 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를 떠나갔던 많은 것들 ㅡ에 대해서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들은 정확하게 분간할 수 없는 안개와 같은 느낌으로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몹시 하찮은 -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분명히 내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것들이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제 그만,이라고 멈추려는 시도를 해도 마음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이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생각의 정돈을 위해 빗길을 좀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빗속에서 나는 과거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해 지금까지 단단한 무엇인가에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 든다. 무엇이든 좋으니 지금의 나는 현재와 단절(斷絕) 되고 싶다. 결국 나는 문득 달달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지나가다가 보았던 먹음직스러운 타르트가 생각난다. 나는 의식의 흐름대로 현대프리미엄아울렛몰에 들어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 타르트 가게의 진열된 타르트들을 열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나는 'best 1.'라고 적힌 펌킨 타르트와 진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사실 굳이 'best'라는 문구가 없이도 나는 호박 타르트를 제일 좋아하는 편이다.


20230429_114530.jpg


나는 심호흡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생각에 빠져든다. 나의 사고는 바로 어제, 처음으로 갔던 남양주의 작은 카페의 어느 장소로 돌아간다. 그곳은 사무실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지만 풀숲이 가득한 교외에 위치한 곳이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베란다에 놓인 낡은 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들이 가끔 들리는 멋진 장소였다. 나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에 앉아 약속된 시간에 쫓기며 나누었던 즐거웠던 대화를 기억했다.


나는 최근에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로 마음먹고 놀랍게도 이를 천천히 실행하고 있다. 모임이나 거리에서 인사만 나누었던 분들께 먼저 연락을 하여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실 약속을 잡는다. 나는 분명 최근에는 과거에서보다 더 활달하게 움직이고 있고, 또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색깔들을 더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 무엇이 되었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여기에 속해있고, 또 연결되어 있어. '


하지만 나는 내가 정확하게 어디에 속해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나는 반쯤은 절망하는 마음으로 삶의 대부분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 나는 많은 것을 잃어왔지. 정말로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을 잃어왔어. 그것은 내가 지난 것들을 추억하거나 뒤돌아 보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오로지 그 당시에 원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만 눈길을 주었어. 열정을 다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따로 간직해뒀어야 했어.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말이야. '


분명 마음의 소리는 그렇게 말한다. 나는 떠난 것들을 추억하며(또는 그리워하며), 내가 한 움큼 나이를 먹었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나는 어제까지 분명 달리기만 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지나 온 발자취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걸음 속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내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이 감각은, 해가 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mm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 어떻게 하면 좋을까 - ?'


사무실에 도착하여 이런저런 일들을 정리하니 어느새 비가 모두 그쳤다. 어둠은 사라졌고 해는 완전히 떠올랐다. 나는 시간을 멈추고 일렁이는 것들을 모아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 속해있는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을 좀 더 끌어모으기로 다짐했다.


' 이상한 일이야. 나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단 한 사람을 찾아 헤맨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하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이미 나를 떠났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떠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우리는 같은 삶의 방향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단 한 번 추운 곳에서 잠시 만났었을지도. 아니야. 나는 지금 오로지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많은 삶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않으면 안 돼. 물론 나는 여전히 해가 뜨지 않기를 바라지. 춥고 어두운 곳에 있으면서 그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리지. 살아있음으로 인해 해방되는 자유는 모두 남김없이 빼앗겨버렸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역시 나는 감당하기 어려워.


미안하지만 나는 좀 더 이곳에 있을 생각이야.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