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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1번과 어느날의 외로운 오후

교보 문구 앞의 작은 카페에서,

by 정현주 변호사


붉은 노을이 그려진 예쁜 노트를 샀다.


최근에는 피아노를 치고 바로 지하에 생긴 교보 문구에 내려가 그곳을 둘러보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아무도 없는 오후, 여유로운 낮시간이다.




내가 노트를 산 것은,, 무엇이든 적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많은 욕망들 때문에 문득 아무것도 적지 못하는 내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래서 커피를 한잔 시켜서 앉았다.

그리고 펜을 들고 새로 산 노트의 앞장을 열어 본다.


하얀 눈 같은 종이 위에

무엇이든 적어보기로 했다.

라고 적었다.


이 곳에는 읽고 싶은 책들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대화도 많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책들을 읽기에는 너무나도 여유가 부족했고(할일이 많다고 생각되었고),

나누고 싶은 대화를 나눌 만한 공감을 가진 친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ㅡ 내 안에는 그리움이 그득하다.




어쩌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생각보다 변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삶에서 필요한, 적당한 가면을 좀 더 능숙하게 쓰게 되었을 뿐이다.


문득 그것은 나 뿐만 아니라, 이 곳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었다.


외로움은 등껍질처럼 달라 붙었다.



하지만 그런 가면은 진실한 나를 적절하게 먼 곳으로 도피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곳에 불러내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ㅡ 나는 상대에게 나누고 싶은 대화를 이제는 쉽게 꺼낼수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다. 하찮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웅크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어느새 외로움은 등 껍질처럼 달라 붙어 버렸다.



외로움이 달라붙어 버리자, 어쩌면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에서, 소속감 없이 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들 이토록 외로운 것이 아닌가,

대화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모른다.


나를 꺼내지 않은채 적당하게 살아온 날들이 나를 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외롭게 만들어버렸다.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혹은 누구와 나누어야 하는 것인가,


누가 날 이해해줄 것인가,




아 ㅡ 이런 것들이, 하나둘씩 쌓여 비가 되어 내리는 오후다.



최근에는 쇼팽의 발라드 1번에 빠져있다. 호기롭게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문득 피아노를 생각하고 또 혼자서,

아무것도 기대함이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런 어느날의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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