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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는 어떻게 우물에 오게 되었을까? 2.

삶이란 어쩌면,

by 정현주 변호사 Mar 02. 2025


수연은 블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는 그녀에게 단단하고 따뜻한 고향과도 같은 안식처였다. 그들은 서로에게 첫 번째로 만난 연인이었으며 완전하게 맞는 사람들이었다. 살다보면 나와 꼭 맞는 사람을 우연히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일은 삶에서 절대로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명의 인연도 만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행운을 만났을 때,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지나가거나 어이없는 실수로 자신의 완전한 인연을 놓치기도 한다.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과거에 갇혀 꽤 오랜 시간을 방황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블루는 수연을 만나면서 수연과 같은 인연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 날 오후,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때는 오후 5시가 넘어간 시간으로 해가 긴 그림자를 내빼며 산등성이로 사라지고 해의 늘어진 주황색의 불빛은 수연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 바로 옆에는 낡고 오래된 갈색 피아노가 놓여 있었는데 수연은 종종 피아노를 치곤 했다.


' 나는 종종 산다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어.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나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


수연은 블루를 보며 말했다.


' 말하자면 이런거야. 나는 너를 사랑해. 아마도 그런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이 감정을 확신할 수 없어. 어쩌면 나는 사랑을 원하지 않고 혼자로서 완전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감정을 전달하고 싶지만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정확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듯이. 그것은 어쩌면 무척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 혼자로서 완전해지고 싶어? '


블루는 수연의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조금 기다리다가 말했다. ' 너는 정말 그걸 원해? '


그 질문에 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잠시 침묵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때때로 생각에 잠긴 채로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 그 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뛰어 넘어가는 것처럼. 블루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 나는 이렇게 생각해. 사람은 누구나 혼자로서 완전해질 수 없고, 삶이란 어쩌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찾아 길게 떠나는 여행이라고. '


그녀는 그의 말에 고개를 조금 들었다. 눈빛은 생기가 돌았으며 그 곳에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블루는 천천히 이어서 말했다.


' 다만 누가 나와 제일 잘 맞는 인연인지 확신할 수 없는거야.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르니까, 또 비교를 하기 어려우니까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저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


' 그렇다면, '


블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연은 말했다. ' 확신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


' 상대가 확신을 주기를 바라니까. '

' 상대가 내 마음에 확신을 주기를 바란다고? '

' 응, 그렇지. 하지만 확신이란 상대가 주는 것이 아니야. 결핍도 상대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지. '


블루는 수연의 눈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의 확신과 불안을 타인으로부터 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상대와 함께 있으려는 마음, 나의 가장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그러려면 내면의 확신은 스스로 가져야만 하는 거야. 그래야 비로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온전히 줄 수 있어.'


수연은 조용히 블루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생각에 잠긴 듯 ' 어려운 이야기네... '라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수연은 블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했다.


' 너는 왜 항상 나보다 앞서 있는 거지? 언제나 그런 것 같아. 뭔가 불공평한 마음이 들어.'

' 아니야, 그렇지 않아. '


블루는 수연의 말에 약간 웃었다. 그는 수연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 너는 항상 앞장서서 나에게 정말로 많은 위안을 줘. '


 



' 그렇다면 우리는 왜 헤어지게 된거야? '


검은 강의 바다를 천천히 걸으며 수연은 블루에게 물었다. 바람은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불어왔다. 가을녘의 보리들처럼 키가 작은 나무의 잎새들은 온 몸을 떨면서 바람속에 나부꼈다. 그리고 멀리서 일정한 음률의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아도 이 어둠은 너무 깊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어둠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흔적을 여지없이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혼자 있을 수 있었던거지? ' 수연은 문득 생각했다.


꽤 오랫동안 혼자 있었구나. 나는 어쩌다가 이 곳에 오게 된 것일까, 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녀가 잡고 있는 따뜻한 블루의 손을 느꼈다. 그곳에는 심장이 있고 생경한 감동이 있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쩐지 익숙한 느낌에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 손을 놓으면 또 다시 우물 속으로 떨어져 완전한 혼자가 된다. 그녀는 그 곳에서 수없이 시간을 감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더 이상 완벽하고 완전한 세계가 아니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블루는 수연의 질문에 말을 멈추고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가 수연의 앞쪽에 서자,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를 조금 흐트러지게 했다. '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어. 수연아. ' 블루는 강조하듯 말했다.


'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어. '


수연은 블루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블루의 키가 컸고 어둠이 너무 깊어져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헤어진 적이 없다고? 수연은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곳에서 계속 누군가를 그리며 혼자 있었던 것일까? 나는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 너의 이야기는 나에게 낯설게 들린다. 수연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정확한 표현을 찾아 세심하게 나의 감정을 너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녀는 한 동안 그런 생각에 멈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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