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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드 Dec 04. 2024

Ep 37. 우나와투나, 스리랑카 커리 요리 교실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우나와투나


"쿠킹클래스 해보지 않을래요?"


서점에 가면 그 나라의 요리책을 열심히 사 모으던 R이 중대한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지난 미리사 여행 때도 쿠킹클래스를 못내 아쉬워한 R은 꽤 비장했다. 그리곤 잘 가르치는 요리 교실을 찾기 시작했다. R은 미리사에서 한 시간 거리, 30km 떨어진 우나와투나(Unawatuna)에 있는 요리 교실의 평점과 후기가 좋다며 치켜세웠다.


나도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요리에 문외한은 아니었다. 맛집도 잘 찾았다. 웬만한 건 다 잘 먹었다. 작년 인도 여행 때는 두 달 동안 매일 다른 음식을 먹었다고 할 정도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런데 스리랑카 음식은 그야말로 먹는 재미와 거리가 멀었다. 수제비처럼 자른 로티를 볶아 먹는 꼬뚜, 매운맛을 강조한 데빌 그리고 볶음밥, 이 세 가지 요리 중 적어도 하나는 매일 먹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메뉴는 획일적이었다. 어느 식당을 가던 저 세 가지 메뉴가 메인이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식당에서 메인 메뉴로 갖추고 있는 3대 음식은 스리랑카 전통 요리는 아니다. 쿠킹클래스를 예약하며 알게 된 노틸러스 식당(Nautilus Restaurant)의 선생님도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먹은 것, 네가 알고 싶어 하는 요리는 사실 스리랑카 전통 요리는 아니에요. 흔히 스리랑카 커리로 불리는 음식이 진짜 스리랑카 요리라고 할 수 있어요."


오호라, 그러니까 내가 한 달 동안 질리게 먹은 꼬뚜나 데빌은 대중 음식이긴 하지만 전통 음식은 아니란 말이잖아. 억울하면서도 호기심에 피어올랐다. 다음날 뚝뚝을 몰고 노틸러스 식당 앞에 도착했다. 스리랑카 커리를 가르쳐 줄 선생님을 보자마자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종갓집 맏며느리의 강단이 엿보이는 온화한 인상으로 우리를 반겼다. 영어가 달라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도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먼저 시장에 갈 거예요. 마트가 아니라 길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이에요. 그곳에서 재료 3가지를 골라요.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대신 딱 3개만 사는 거예요."


곧 우리를 시장에 데리고 갈 뚝뚝이 도착했다. 오랜만에 남이 운전하는 뚝뚝을 타고 갈레(Galle)에 시장에 갔다. 그곳은 마치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 있는 야채파는 노천의 축소판 같았다. R은 신중하지만 빠르게 3가지 야채를 골랐다. 고구마, 가지, 그리고 단호박. 언젠가 맛본 단호박 커리에 매료된 R의 기대는 점점 커졌다.


재료를 고르고 나니 제법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주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선생님의 실력과 경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벽이 없는 열린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호텔 주방처럼 깔끔했다. 라벨이 붙은 양념병은 가지런히 서 있었고, 화구와 냄비는 찌든 때 없이 깨끗했다.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과 선생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손을 박박 씻었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재료 손질법과 쌀 씻는 법을 설명했다. 부드럽지만 명확한 어투로 전달된 임무 분담에 맞춰 빠르게 움직였다. 단호박과 가지와 고구마는 옷을 벗고 얌전히 커리가 될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뿐만 아니라 달 커리에 쓸 콩, 치킨 커리에 들어가는 닭고기, 각종 야채도 등장했다.


선생님의 시범과 설명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넣고 냄비를 불 위에 올리면서 주변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게 숙련된 요리사의 세계구나. 여러 요리를 하나의 요리처럼, 요리 흔적을 지우면서 하는 요리. 선생님은 자신의 박자와 리듬까지 어느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새 다섯 가지 커리가 모양을 갖추었다. 기본양념에 재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념을 추가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기대감을 키웠다. 화구는 2개뿐이었지만, 선생님은 재료에 따른 조리 시간을 계산해 차례대로 냄비를 올렸다.


한소끔 끓은 뒤에 모습을 드러낸 스리랑카 커리는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아니, 사랑스러웠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맛본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눈은 과식했다. 뜨거운 김이 코끝을 매만졌다. 따뜻한 음식 냄새는 침샘 수도꼭지를 틀었다.


"자, 이렇게 8가지 요리가 완성됐어요. 재미있었죠? 다들 잘하던데요. 이게 스리랑카 전통 커리에요. 수업은 끝났어요. 여러분이 만든 음식 실컷 먹고 가세요."



넓은 접시에 내가 만든 커리를 종류별로 담았다. 맛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맛이었느냐는 좋은 질문이 아닌 것 같다. 다만 R과 내가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건 이런 것이다. 그동안 먹은 스리랑카 커리보다 백 배, 천 배 살아있다는 것. 우리는 그 이유를 음식의 온도에서 찾았다. 한식 뷔페 같은 커리집에는 늘 만든 지 한참 지난 커리가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음식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음식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람을 살리는 맛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날 음식은 아직도 나를 팔딱이게 한다. 고구마, 가지, 단호박이 품고 산 땅의 기운이 음식에 스며들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스리랑카 음식과 요리법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음식 이야기를 하자면 그건 여행 속의 또 다른 긴 여정이 될 터. 아무튼 쿠킹클래스는 코끼리 사파리처럼, 대왕고래 탐험처럼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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