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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드 Nov 17. 2024

Ep 35. 미리사, 스리랑카 최고의 여행자 해변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미리사

스리랑카 최고의 해변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미리사다. 두 번째로 어디를 꼽을지 모르지만, 미리사와의 격차는 상당하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도 이견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미리사는 여행자 친화적인 해안 마을이다. 미리사가 여행자의 집결지, 휴게소로 급부상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교통이 발달하며 콜롬보에서 접근성이 좋아졌고, 갈레나 히카두와 등 물가가 비싼 기존 강자에 비해 저렴하고 참신한 선택지를 제공하며 한 순간에 주목받는 중고 신인으로 급부상했다. 미리사를 포함해 다른 해변을 둘러보면 미리사가 늦게나마 인정받는 이유를 금세 수긍하게 된다. 맑은 물과 코코넛 나무가 드리운 하얀 해변, 그리고 해안가 따라 얌전하게 형성된 상권은 여행자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미리사에 총 3번 방문해 일주일 넘게 머물렀다. 매일 바다를 본 것은 아니지만, 아침, 저녁, 맑고 흐리고 비 올 때마다 해변에 들러 미리사를 편견 없이 바라보았다. 맑은 날의 미리사는 몰디브를 연상케 할 만하다. 적도의 작열하는 태양과 에메랄드빛 바다의 페어링이 심히 후.울.륭하다. 몰디브의 파아란 바다가 흐트러지지 않고 이곳까지 그대로 흘러온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스리랑카와 몰디브, 모두 '인도양의 진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미리사의 아침은 어릴 적 해운대 바닷가에서 느꼈던 낯설고 울퉁불퉁한 밀도가 맴돈다. 밤새 해변에는 화려한 조명과 상기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썰물이 이를 모두 삼킨 듯, 한가로운 휴양지처럼 납작 엎드려 있지만, 나는 여기에서 금방 태풍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열기의 잔열을 느낀다. 오래 앉아있다 일어난 의자처럼 모래사장에 난 발자국은 온돌처럼 뜨끈하다.

해가 모습을 드러낼 때쯤엔 찬바람이 몰고 온 새 아침의 공기가 다른 흔적을 말끔히 지운다. 이제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상 같은 여행을 즐긴다. 달리고, 책을 읽고, 명상하고, 요가를 배우는 사람들.

미리사에 올 때면 오아시스처럼 만난 번잡함을, 오랜 못 본 친구처럼 대했다. 그만 마시라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는 친구로만 알았던 미리사도 다른 바다처럼 하얗고 말갛게 아침 세수한다.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다. 미리사는 최고의 관광지나 휴양지라고. 미리사는 아름다운 여행지이다.


여느 해안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바다를 여행하는 여행자는 자기만의 패턴을 가진다. 뜨거운 자외선이 좋아서 일부러 한낮에 태닝과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낮에는 쥐 죽은 듯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어슬렁 거리며 한껏 치장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파티 피플'에게 스리랑카는 썩 곤욕스러운 나라다. 웬만큼 이름난 곳에 가도 일몰에 맞춰 사방이 고요해진다. 늦게까지 놀 수 있는 가게도 드물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다.

그런데 미리사는 다르다. 배낭여행자의 자유분방함이 경주마처럼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인도양이 세상을 쓰다듬은 얕은 소리가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밤 장사를 준비하는 식당 주인은 수 백 개의 의자와 테이블을 줄 세우고 조명을 은하수처럼 띄운다. 오늘 잡은 싱싱한 물고기도 비싼 가격표를 달고 누워있다. 나는 이 늠름하고 자랑스러운 준비태세를 벅찬 마음으로 사열한다.

어느 나라를 가던 대형 야시장에 가면 펼쳐지는 비슷한 광경이다. 비슷한 걸 알면서도 반드시 찾게 된다. 아무리 여행을 거듭해도 이런 짜인 각본이 좋은 건, 능숙하고 오래된 여행자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낯선 이'라는 정체성을 이렇게 확인하고 나면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이것 봐,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할 사람은 없을 거야. 가격, 문제 되지 않아. 내일의 계획이나 숙취, 아무것도 아니야. 여행 중이잖아, 여행. 그걸로 된 거야. 심각할 거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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