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간격으로 스리랑카를 두 번 여행했고, 56일 동안 일주했다. 가장 오래 머문 도시는 콜롬보, 네곰보 그리고 미리사다. 콜롬보와 네곰보는 스리랑카의 역사, 문화, 종교가 집약된 곳이므로 볼거리가 넘쳤다. 비행기를 타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리사는 왜 3번이나 들르게 되었을까.
내게 미리사가 참새 방앗간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작은 마을 교차로에 유일한 가맥집이 있다면 그게 미리사다. 미리사는 스리랑카 여행의 꼭짓점인 콜롬보에서 적당히 멀고, 중부 지역 대표 관광지인 캔디에서도 적당히 멀다. 교통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곳이다. 오며 가며 들르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맥주의 청량함, 블루큐라소로 바다를 연출한 칵테일을 연상케 한다.
미리사는 활기찬 에너지와 젊음이 넘치는 매력적인 해안 마을이다. 코코넛 나무가 드리운 하얀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긴장을 탁 풀리게 한다. 또 서핑, 스토클링, 고래 탐험 등의 해양 프로그램은 모험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나 같은 아웃사이더 여행자에게도 꼭 필요한 여행자의 패기를 이곳에서 얻을 수 있다. 중학교 점심시간처럼 재잘거리고 한껏 들뜬 여행자들이 미리사에서 서로의 충전기가 된다.
코코넛 나무 언덕(Coconut Tree Hill)은 인스타그램 프로필로 쓸만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무슨 배짱인지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여행 때 가보게 되었다. 멀리서 본 언덕은 탈모가 한창 진행 중인 것처럼 초라했다. 코코넛 나무 사이로 사진 찍는 사람이 새로 난 머리카락처럼 듬성듬성 보였다.
언덕에 올라서자 적당한 거리를 둔 코코넛 나무 사이로 인도양이 훤히 보였다. 코코넛 잎은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푸른 바다 위에서 불꽃놀이처럼 솟아올랐다. 바람이 파도를 쓸어 담는 소리가 폭죽처럼 들렸다. 여행자들은 나무 사이에 자리 잡고 이 순간을 만끽했다. 참, 좋다. 좋은 것을 보면 좋아지는 마음, 이 작은 메커니즘이 얼마나 소중한지. 늦지 않게 휴게소 같은 미리사에 다다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소년이 코코넛 나무 언덕과 그 위에 있는 수많은 관광객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넓은 바다를 놀이터로 쓰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서핑을 지켜보는 관중이 되었다. 그는 여러 번 균형을 놓쳤지만 파도는 끊임없이 기회를 주었다. 마침내 그가 보드 위에 올라섰을 때, 이 아찔한 광경은 그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파도의 속도와 바다의 질감이 더해지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입체적일 것이다.
코코넛 언덕은 분주했지만 산만하지 않았다. 셔터를 누르기 바쁜 중에도 저마다 잠깐씩 망중한을 즐겼으리라. 인생샷을 건진 사람들은 언덕 아래 코코넛 스윙에서 두 번째 인증샷을 찍었다.
남 사진은 잘 찍어도 내 사진은 찍기 싫은데, 그래도 그네 뒤에 줄을 섰다. 실제로 줄을 선 건 아니고, 눈치껏 '다음에는 내가 그네를 탈게요'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그네에 앉아 발끝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뒤로 밀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반동을 주며 인도양을 향해 몸을 날렸다.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팔을 가린 팔토시와 크록스가 어색했지만, 사롱만큼은 펄럭이며 인도양의 바람으로 크게 하품했다. 그 모습이 퍽 남사스러워서 인스타 프로필을 바꾸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