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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Aug 04. 2021

[엄마의 일기] 8월은 여름방학

아이들과 시골에서 보내는 하루


[여름방학]


내가 어린 시절 가장 기다리던 날은 '여름방학'이었다.

학교를 안 가니 늦잠도 실컷 자고, 재미있는 물놀이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생인 나는 여름이 되면 신이 났다.

맑게 개인 하늘도 좋고, 짧은 반팔과 반바지도 너무 좋았다. 시원한 샌들에 거추장스러운 양말을 신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발가락이 유일하게 자연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랐지만, 예민한 촉각 때문에 시골살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냇가나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것은 좋았지만, 제대로 씻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냇가 낚시

어린 나는 딱히 챙길 것도 없었다. 산이나 들, 바다를 가든 내 짐만 챙겨가면 됐다. 엄마는 우리 대신 5인 가족의 짐과 먹거리를 모두 챙기셨다. 어릴 때는 엄마가 왜 그렇게 여행을 싫어하시나 조금 아쉬웠는데, 막상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 엄마로 살아보니 여행이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방학이면 나는 시골 할머니 댁에서 사촌동생들과 놀았다.

시골 할머니 집은 한 마을에 20가구가 안 되는 조그만 한 시골마을이었다.

 가끔 고추밭에 가시는 할머니를 따라 밭에도 가고, 과일을 따는 할아버지를 도와주고 과일을 얻어먹기도 했었다.

통발 낚시로 잡은 물고기들을 물고기 어장(?)만들어 모아두었다.

  남동생과 사촌동생들은 매미채를 들고, 혹은 가재를 잡겠다며 냇가로, 뒷산으로 뛰어다녔다.

여름방학은 평화롭고 한가했다. 파란 하늘을 보며, 옥수수를 먹고, 수박을 먹으며 즐길 수 있는 계절, 그게 바로 여름이었다.




[아이들과 시골여행]


지난달, 남편의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남편의 경우, 친가와 외가의 장남, 장녀의 첫 손자였다. 사랑을 듬뿍 받은 덕분인 지 마흔이 된 얼굴은 아직도 소년처럼 티 없이 맑다. 특히나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남편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계시는 시외할아버지를 보러 시외갓집을 방문했다.


 경북 김천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외각의 시골마을이었다.

예전에는 버스도 다니고, 사람도 많았다지만 현재는 여느 시골 마을처럼 몇몇 가구들만 거주하고 있었다.


진외증조 할아버지와 닭장 앞에서

닭장에 닭들을 보며 신기하는 아이들이었다.

닭장에는 오늘 낳은 유정란이 있었다.

아이들은 병아리가 나오는 유정란에 대해 신기해했다.

"어떻게 하면 병아리가 나와요?"

아이들은 달걀을 요리조리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베개 위에 올렸다가 윗옷 위에 올려놓고 돌돌 말아 품 안에 품기도 했다.

"얘들아, 그렇게 괴롭히면 병아리가 되기 전에 죽겠다. 가만히 두면 안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달걀을 절대 품에서 내어놓지 않았다.

나도 어릴 때 유정란을 처음 보고 그것을 품겠다며 배 속에 말아놓고 이불속에 한참 동안 앉아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아이들도 아마 그때의 나와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시어머니는 집 뒷산의 옥수수밭으로 가셨다.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있는 옥수숫대에서 옥수수를 꺾었다.

길쭉길쭉 뻗어있는 게 마치 옥수수나무 같았다.

처음 보는 옥수수 숲에서 옥수수를 따 보는 아이...


커다란 숲을 이룬 옥수수밭~
시골 농부 포스의 둘째
옥수수밭 가는 길 (고추밭)

내려오면서 고추밭에서 고추도 2개 땄다.



옥수수 껍질 벗기기 체험중


아이들은 옥수수를 다듬는 할머니 옆에서 옥수수를 다듬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까야되는 거예요? 까도 까도 계속 나와요. 이거 보세요. 배추 같아요."


옥수수 껍질을 까던 첫째는 가닥가닥 껍질이 매달린 옥수수를 들어 올렸다.

"그러게, 꽃 모양 같기도 하고.."




삶은 옥수수는 삶아서 먹고, 남은 찌꺼기는 닭에게 먹이로 주고,

큰딸은 아빠를 따라 통발 낚시를 떠났다.


통발낚시, 할어버지 드실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려보내주었다.

남편은 어릴 적 외갓집의 추억을 아이들과 다시 즐기고 싶어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의 냇가에는 물고기들의 천국이었다.


시골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여름의 전령사 매미 울음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아이들의 또 한 번의 여름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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