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소소 Sep 07. 2024

퇴사는 원하지만 명함이 없는건 싫어

명함이 곧 자신이던 시절. 명함을 없앨 생각을 하니 자신이 없어졌다.

상당히 낯설었다.


취업이란 목표를 일찍 가진 학창시절부터 미대입시, 졸업, 취업.. 에 이르는 길고 어려웠던 시간들 속에서,
아니 취업을 한 직후부터도 어쩌면 늘 바라고 기다리던 한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퇴사'였는데… 

막상 퇴사를 염두에 두고 나니 퇴사한 나의 이미지가 낯설었던 거다. 
낯설어서 조금 겁을 먹었다.

바람이 땀을 식히면 상쾌한 기분이 들던 초가을날 이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점심식사 후 정원 산책을 하고 있었다. 멋진 팀원들과 함께였다.

주변인들에 자신을 투영시키다 보면 나또한 멋진 인간이 된것 같은 좋은 회사와 동료들 이었다.
휴직계를 낼 계획이었지만 결국은 회사를 그만 둘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휴직과 복직이 자유롭고, 또 육아와 병행하여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는 여자 선배들이 많은 회사였지만, 바라고 바라던 퇴사라는 이벤트를 아이빌미로 저질러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연년생을 양가 부모님 도움 하나없이 혼자 키워야 하는 요즘은 자신이 사라진 기분 따위 느낄 겨를 없이 그저 회사와 육아를 양립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출산 직후에 비해 훨씬더 자기자신 이란것은 사라졌을지 모를 이 상황에 오히려 무념 무상의 안정감 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티비에 한 중년의 여성 배우가 나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를 키우며 배우 생활을 하는동안 아이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일하러 나가는것이 꼭 칭찬받고 인정 받는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다시 나로 돌아오자면 나는 그렇게 인정받거나 능력있는 소위 핵심 인재는 아니었겠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행위 자체만으로 내가 과거에 일궈낸 어떤 업적의 결과 아니었겠는가.

오로지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여 키워내기 위한 20여년의 교육과 취업준비시기를 거친것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소소하게 이루어낸 나의 성과들이 손바닥 보다 작은 명함에 모두 아로새겨진 비루한 인간이었다.

명함을 잃은 나는 무명의 인간 같았다.
 
나의 그간의 수고로움의 결과가, 점심시간 옥상 정원 산책과 함께 사라질 예정이었다.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는건 지금의 나와 영영 이별 해야 한다는 무게가 있었다.
양립 가능해 보이는 여자 선배들을 보면서 그들은 그런 상황을 거머쥘 만한 어떤 환경과 기회가 있었겠거니, 막연한 동경 혹은 체념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나는 불가능 할 것이었다. 먼 타지에 터를 잡고 계신 친정 엄마와 이미 시누이의 자녀를 도맡아 키우고 계시는 시어머니.. 이른바 할머니 찬스는 쓰기 어려울 것이었고 차마 남의 손에 갓난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러 다녀야 할 것인가에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많은 워킹맘 혹은 경단녀라 불리우는 이시대의 엄마들이 하는 고민일 것이다.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오롯이 책임져 내고 있는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렸던 간에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슬프도록 아깝기도 하다.

노산인 만큼 나이가 지긋할터였던 나는 아직도 철이 없는 아이처럼 두개의 사탕을 손에 꼭 쥐고 아무것도 입에넣지 못해 울고 있는 기분이었다. 회사원인 나를 놓아주려니 그토록 슬프고 겁이 났다.


운명적이게도 몇년전 팬심으로 1년이 넘게 수강한 명상 강의에서 스승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 주신것이다. 


"길을 잃었다는 기분이 드는것은 그곳에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당연한 소리겠는가. 아니, 아니다.

나는 뒷통수를 얻어맞은것 같았다. 


"삶이 무너져 내리고 망가지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위함이다." 


당연하게 느껴지는가. 막상 현실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길을 찾아 내려고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너지는 것들 중에 어떤 하나라도 재건 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자연스럽도록 내버려둬 보면 이렇다.

길이 없는곳에 들어섰다. 새로운 시작 이라는 것이다. 내가 가는발자국대로 길이 날것이고, 나는 뒤돌아 그곳에 길이있었구나 생각할 뿐이다. 길이 없는 곳에 다다랐으니 길을 잃고 헤메일 수 밖에..

잘 헤메이다가 갈 곳을 정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단단한 세상위에 새로운 세상을 지어낼수있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겠지만 3차원에 사는 우리는 동시에 여러곳에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은 물건도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가 사라져야 하나를 채울수있다. 

하나가 사라질때는 어떠한 종류로든 파괴가 일어난다. 회사원으로, 싱글의 여성으로 지내던 나의 삶은 무너져 내렸고 나는 아이를 낳는 삶의길을 선택했으며 새로운 삶은 이미 시작 되었다.


그간 지내던 방식대로 지낼수 있었던 임신한 상태로 회사다니기 가능했던 시기때문에 많은 것들을 착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삶은 이미 예정되었고 출산과 더불어 그저 시작되었다.


나는 회사원인 나를 떠나보낼필요는 없었지만, 자신만을 돌보며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회사원인 나는 떠나보내야만 했다.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가지에 집중하는 습을 지닌 나는 회사원보다는 아이엄마에 집중하고자 했을것이다. 하지만 되돌아보아 정말 그러했는가 하면, 학창시절부터 한가지에 집중하는 습이 아니라 두개이상을 해내려는 습이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아니 혹은 과거의 가난으로 돌아가기 싫은 열망이 월급이라는 안정감을 포기하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머니와의 따뜻한 유년시절을 아이에게 타인으로부터 느끼게 하기 싫은 마음이 더욱 컸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모든 것들이 나를 혼란스럽고 슬프고 힘겹게 했고,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길을 택해 걷고 있다. 남편과 어린이집과, 나라회사의 제도와, 팀원들의 배려를 받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자신을 잃은날 찾아 읽기


출산을 앞둔, 휴직계를 작성한 날의 일기 였다.

상당히 많은 회한이 깃든, 마치 정년 최직을 앞둔 사람과 같은 깊은 추억에 젖은 글 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기 선택에의한 휴직 이라는점.

퇴직도 아닌 휴직 이라는 점 이다. 

그래 누가 시킨적도 없는 휴직을 하면서 구구절절 무슨 글을 써놓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과거의 나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지금의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그냥 상당히 낯설었다고.’ 
머쓱한 지금의 나로선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는 부끄럽기도 쑥스럽기도 한 나의 일기.
 
그럼에도 한번 옮겨 써보기로 한 까닭은 어떤 이들에겐 이제 새롭게 직면한 낯설음 일수도 있을 것이기에
먼저 한참 휘적거려본 방황자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도 옳을 것이라는 위안이 될수 있을까 해서 이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그럴때가 모두에게 있었다는 사실, 이런것들이 힘들었던 순간들을 버티게 해줬기때문에 육아에 지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결정의 기로에 서있을 존재에게, 어떤 결정을 하던 그것이 옳은 결정임에 틀림 없다고.

지금 이 순간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고,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가장 옳은 선택을 한다.

각자의 순간에서 옳은 길을 택한것을 응원하고 지지할 뿐이다.

이전 02화 <임신 출산 대백과> 육아만 쏙 빼논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