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선배가, 회사에는 멘토가, 하물며 알바도 인수인계가 있건만...
임산부의 필독서 이자 1가정 1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책의 제목은 사실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임신과 더불어 축하 선물로 주고 받고,
책이란 자고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존재 할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지 않던가.
그리하여 우리는 이 책을 출산 전 까지만 정독하곤 한다.
다시말해 육아 부분을 건너뛰기 쉽상 이라는 것.
변명이 길었다.
요즘의 똑똑하고 야물딱진 엄마들의 경우에 꼭 책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서핑만으로 필요한 정보를 알짜베기로 착착 찾아 내지만 나는 MZ의 끄트머리에 어거지로 탑승한, 노산이 위기인 여성이었다.
여행의 시작도 여행서적, 임신 출산의 시작도 대백과 서적이었던 나는 이 책을 몇번이고 펼쳤지만
이 책은 마치 고등학교때 내가 가졌던 수학의 정석책 처럼, 혹은 성문 종합영어 처럼..
앞부분만 새까맣게 닳을 뿐 이었다.
다시한번 변명 해 보자면 사실상 육아 챕터를 읽고 숙달 한다고 한들 소위 '애바애' '사바사'로 의해 무용지물 되기 쉽상 이었을 것이다.
임신 주차별, 개월별 주의해야 할 몸가짐, 먹어도 될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들, 하면 좋은 운동과 골반을 열어주는 동작들, 그리고 많이 앞서가서 출산이 임박하면 준비해야 할 물품 목록 까지.
앞부분을 닳고 닳도록 펼치고 읽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기 물품들은 미리 소독하고 삶고,
(지금 생각엔 조금은 과도한) 모든 섬유들을 지퍼백에 소분하여 보관 하기 까지 했다.
거즈 손수건을 다림질 한 일은 말해 무엇이랴...
그리고 기다리던 진통이 시작된다.
음 이건 가진통이다.
다시말해 아직 시간이 있다는 뜻이지.
나는 몸을 씻기 시작한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그날 마지막 만찬으로 삼겹살파티에 딸기 파티까지 열었더랬다.
예쁜 아기를 힘좋게 낳을 일만 남았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씻다가 피를 보고만 나는 새벽 2시에 신랑과 친정엄마를 대동하여 병원으로 급히 향했다.
생리통이 두배 세배 정도의 강도로 짙어지는 듯 했다.
양수가 새어나와 퇴원하지못하고 분만 대기실에서 태동검사기를 달고 25시간을 가진통과 진진통 사이를 헤메이다 첫째를 출산 했다.
모든 처음은 첫째의 특권이자 핸디캡이다.
출산이 끝났다.
아이는 꼬물거렸고, 숨을 내뱉으며 울음을 터뜨렸으며, 한시도 쉬지않고 성장할 터였다.
출산이 끝났다.
그래. 출산이 끝났고, 임신도 끝이다.
병원에선 아이를 데려가 이것 저것을 검사하고 체크하고 '알아서' 케어했다.
나또한 케어가 필요한지라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아이가 몇시간 마다 한번씩 먹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수유콜'이란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모유 수유에 욕심이 있던 나는 첫 수유 부터
"스푼으로 부탁 드려요 초유를 먹이고 싶어요."
라고 할 정도로 열성 엄마였다.
문제는 지금 부터였다.
2시간 마다 나를 찾는 수유콜에 응해 자연분만한 몸을 흐느적거리며
동그란 방석을 끼고 다니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직 차오르지 않아 빈 젖을 빠는 힘을 처음 느껴보고 감동에 젖을 겨를도 없이,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른 적당한 자극, 들려줄 소리, 느끼게 해줄 촉각 들에 대한 교구를 검색하느라
손목이 버틸 여가 없이, 눈이 쉴 새가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뿐만 아니다. 아이가 탄생한 순간. 생년월일시 를 들고 음양오행을 헤아리고 있는 나는 ...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던 것일까.
이것은 일종의 비상사태 였다.
안정을 취해야 할 상태에서 맞닥드린 여린 생명 한줄기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초 긴장 상태로 위기의 순간들만을 떠올리며 대비책을 세우느라 정신조차 피폐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모든 선배 엄마들이 존경 스러워 졌다.
나는 아이를 낳아 ,저절로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되는 법을 모르는 그저 '산모' 일 뿐이었다.
자신을 잃은날 찾아 읽기
학교엔 선생님이계시고 교과서가 있다. 부족한건 학원이며 과외를 총 동원해 왠만한 녀석이 되게 돕는다.
회사에 왔더니 생판 초짜인 나를 그럴듯 하게 써먹기 위한 시스템과 멘토가 존재 하더라.
하물며 아르바이트를 하러가도 선임자가 인수인계를 하고 사장님이 흡족할때까지 트레이닝을 시킨다.
우리는 전통사회를 부정하며 발전을 향해 달려오다 대가족문화라는 아름다운 육아 환경을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 시어머니, 이모, 고모, 하다못해 삼촌, 고모부의 손을 빌어서라도 조금은 수월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걷어 차 버리고, 위태롭고 외로운 핵가족이 되어 출산에 혼이 빠진 산모혼자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을 맞닥드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위로해본다. 당연한 일이다.
도움을 구해야 한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오늘이 처음인 엄마이니까.
한가지 꿀팁이라면 (그럴것도 없지만) 우리주변엔 우리의 도움이 반가운 많은 엄마들이 존재한다.
내 엄마 뿐만 아니더라도, 내 남편의 엄마, 옆집사는 아무 엄마라도 말이다.
남자들이 군대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면 우리는 진통과 무통 출산과 수유 이야기로 그렇지 않던가 말이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아이로 인해 힘들어 한다면 두손 걷어 부치고 도와줄 사람들이 지천에 깔렸으니
두려워 하지 말라. 부끄럽지 않냐고, 흉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괜찮다.
우리는 갓난아이와 그 엄마에겐 참 관대하기에.
경쟁을 하고 시기 질투를 하더라도 그때는 접어두게 마련이다.
오늘 갑작 스럽게 자신을 잃고 무기력한 산모님들에게,
아이를 잘만 키우고 있는것 같은 몇달,몇년 앞선 선배들이 우러러 보이는가.
그들도 그날은 똑같았다.
갈피를 못잡고 앞길이 막막하고 무섭기 까지 했었다.
갓난아이를 만난 그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