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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Feb 01. 2018

불안하지만 불행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의심되기 시작하고 미래는 보이지 않으니 현재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다리를 달달 떤다. 나는 자주 불안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 년이었다. 최종 면접에서 연이어 떨어졌고 오래 만난 애인에게 차였다. 마음이 상해서 맛있는 걸 먹고 싶었던 날, 캔맥주를 마셨다. 좋은 곳을 가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건 블로그를 들여다보는 것뿐이었다. 외로웠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던 날에는 앞으로도 이런 날이 반복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그때는 ‘취준생’이라는 딱지를 떼면 불안감도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자 ‘취직하면 다 괜찮을 거야!’라는 식의 해결책도 없고, 딱히 이유도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내가 누구지?’를 고민하는 사춘기가 끝나자마자 ‘나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대학에 가면 없어질 줄 알았고, 취직하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나 어떡하지’하며 산다.  


세상사 시간이 약이라 했으니 나이가 들면 괜찮겠지 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은 삼십 대가 되니 하루하루를 사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이십 대 초반에는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인간관계에 몰두하기도 했다. 애인에게 필터링 없는 하소연을 늘어놓고 무한정의 응원을 받으며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미래는 불안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불확실한 미래를 같이 그리기보다는 확실한 무언가를 얻고 싶었다. 


게다가 또래인 상대방도 불안했다. 타인에게 얻는 안정감이란 상황이 더 나은 사람 혹은 조금이나마 무던한 사람이 상대를 다독여 주는 게 가능할 때만 일시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휴학을 하고, 내가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걸 반복했다. 때로는 긴 연애가 무참히 끝나고 새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다. 타인에게 기대어 안정감을 얻으면 그 사람을 잃었을 때 더 큰 불안감과 허탈함을 느껴야 했다. 




차라리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려면 어때’라는 식으로 살아보려고 제법 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하루를 사는 건 불확실함에 대한 설렘을 알려줬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설렘은 보란 듯이 사라지고 불확실함만 남았다.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들을 충실히 따라서 공부를 하고 대학에 왔는데 미래는 불확실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한덕에 지금 잘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미래는 올 것 같지 않다. 과거는 의심되기 시작하고 미래는 보이지 않으니 현재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맞아, 맞아 나도 그래.’라고 했다. 일찌감치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와 휴학을 거듭하며 취미에 몰두해온 또 다른 친구, 그리고 애매하고 평범한 내가 둘러앉았을 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였다.


이 흔하디 흔한 불안감은 크게 두 가지 원인을 가진다. 


첫 번째, 이전에 내가 살아온 시간이 무가치한 것이었을까 봐 무서워서.
두 번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대체 알 수 없어서. 


올해의 나는 불안감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찾는 걸 포기했다. 불안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현재를 후회와 걱정으로 채우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심하게 걱정하지 않고 현재를 조금 더 매끈하게 살아내려 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정의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이전의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과 아직 이루지 못한 무언가로 나 자신을 설명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어요. 무슨 과를 전공했고, 이런저런 활동도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무언가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라고 하며 끝나지 않을 시간의 탑 쌓기를 했다. 


이제는 내가 현재에 하고 있는 작은 것들로 나를 설명하려 한다. 



이대 맛집 탐방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국 막걸리를 다 먹어보려고 매주 막걸리를 마시고요, 이번 여름에 망사스타킹을 신어보고 싶어서 망사 스타킹을 찾고 있습니다. 무서워서 아직 못하고 있지만 작은 타투를 하나쯤 할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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