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남미 탐험 — 페루, 리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카나 쿠스코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 들르는 도시 정도에 불과한 리마에 어쩌다 푹 빠져버렸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단연코 내가 사랑한 숙소. 주황빛 벽과 backyard의 테이블의 조합이 감각적이었고 중간중간 심어져 있는 나무에 핀 꽃이 벤치로 떨어지는 게 영화 같았다. 조식으로 나눠주는 생소한 빵과 무엇보다 숙소 스태프들이 직접 만드는 땅콩잼이 맛있었고, 숙소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좋았다. 리마라는 도시 자체가 마음에 드는데 숙소까지 좋으니 이곳에 더 머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 2박을 예약했다가 늘리고 또 늘려 결국 일주일이나 머물게 된 곳. 그곳의 조식을 통해 땅콩잼이라는 내 새로운 취향을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어떤 시판 땅콩잼을 사 먹어도 그만한 맛을 찾을 수가 없다.
리마의 해변은 거의 매일 해무가 껴있고 물 색도 그다지 예쁘진 않지만 파도가 잔잔해서 서핑하기엔 좋은 곳이다. 해변가에 즐비한 서핑샵의 호객을 뚫고 숙소에서 만난 S가 매일 출석했다던 곳으로 갔다. Jhonny라는 서퍼가 운영하는 곳. 내 옆에 붙어 서핑을 도와주던 그는, 내가 몇 번을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you can do it!"을 외치며 도와주었다. 약 2초간 선 뒤 장렬히 전사한 내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와서 "너 일어났지! 성공했어!!"하고 칭찬했다. 지금은 파도가 너무 세져서 네가 하기엔 무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는 말에 죠니랑 함께 서핑샵 부스로 돌아갔다. 또 다른 서퍼 딕손이 성공했냐고 묻기에 "딱 2초 일어났어 2초!" 하면서 머쓱해했더니 "It's okay! Are you happy?"라는 말이 돌아왔다. 행복하다고 답하자 그럼 된 거라고 했다. 몇 초를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온몸은 쫄딱 젖었는데 갈아 신을 신발이 없어 고민하다가 그냥 맨 발로 숙소까지 걸었다. 갈라파고스에서부터 맨발로 걷는 여행자들을 참 많이 봤는데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게 퍽 웃겼다. 샤워를 하려고 했더니 하필이면 숙소 단수인 날이라 당장 샤워가 불가능했다. 날을 잡아도 꼭 이런 날 잡냐고 황당해하면서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짭조름한 몸 위에 새 옷을 입고 싶진 않아서 젖은 몸에 숙소 스탭 산티아고가 준 수건을 덮고 샤워가 가능해질 때까지 버텼다. 언니들이나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영상통화를 걸면서.
운명처럼 만난 그 숙소는 한국인들보다도 서양인들에게 더 인기가 좋은 숙소였다. 덕분에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여러 명과 대화하면서 깨달은 것들 중 하나는 서로의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친구가 되는 데에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통성명 후엔 나이를 묻고 반말과 존댓말이 정해지는 한국과 달리, 이름만 알려주면 그 길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또 하나는 나이와 직업군이 정말 다양했다는 것이었다. 이때의 첫 여행을 시작으로 지금껏 했던 총 네 번의 배낭여행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대부분 방학 중에 나온 대학생이거나 퇴사하고 떠나온 직장인인 경우가 많았다. 나잇대별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이 있다 보니 길게 시간을 내서 남미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게 쉽지 않으니까. 비교적 그런 정상성에서 자유로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일과 휴식 두 가지를 모두 적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대학에 꼭 가야 될 것 같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국사람이라고 꼭 정상성만 따르진 않을 것이고, 서양인이라고 꼭 자유롭게 살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모습의 기준을 "사회"에 맞추는지 "나"에 맞추는지는 그들과 우리의 큰 차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여행하며 얻은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영향이다.
여행 중 만난 몇몇 사람들의 영향으로 투어에 조급해져 있었다. 남들도 하는 걸 나만 안 하고 귀국해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조급함이었다. 이카 들러서 버기카 타고 사막 구경도 해야 하고, 나스카에서 나스카라인 투어도 하고, 볼리비아 넘어가서 우유니 사막도 가야 하는데 귀국 날이 다가오니 초조해했다가 리마에 도착해서야 그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리마의 작은 것들을 사랑했다. 숙소에서 아침마다 주는 빵과 땅콩잼을, 미라플로레스 이름처럼 곳곳에 가득한 꽃들을, 케네디 공원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나무 그늘 아래 기대어 쉬고 있는 커다란 개와 주인의 휴식을, 저녁마다 공원 가운데에서 작게 열리는 마켓을, 마켓 옆에서 팔고 있는 츄러스와 팝콘을, 공원과 길거리 곳곳에 있는 체스판 테이블에 모여 체스 두는 사람들을, 공원 잔디에 누워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아침 먹고 게으름 피우다 어기적 일어나 케네디 공원이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일기를 썼고 저녁엔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 공원을 구성하는 것들을 바라보곤 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가로등과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산책하는 강아지와 잔디에서 잠자는 고양이들을. 내가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햄버거집에서 친구와 떠들고 있는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소프트콘을 할짝이기도 했다. 나는 이 작지만 커다란 행복을 사랑해서 리마에 머물 날을 자꾸만 늘렸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일상이, 내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살아보는 날들이 내가 원한 여행이었다는 출국 당시의 다짐을 잊고 있었다. 고작 일주일은 살아봤다 말하기엔 아주 짧지만 적어도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여기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또 다른 미래를 꿈꾸기엔 충분히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