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세상은 혼자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이놈의 세상은 혼자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문영 씨, 남자 좀 없어?”
“남자요? 없는데, 왜요?”
부동산 문을 열자마자 날아와 꽂히는 사장님의 한마디. 사장님은 몸집만큼 울림통도 큰지 목소리도 늘 쩌렁쩌렁하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우리는 계약을 목전에 두고 금액 문제로 언성을 높인 적도 있어서 사이가 꽤 돈독해졌다.
“아니 혼자서 멀리까지 왔다 갔다 힘들어 보여서.”
“여기가 멀어요? 30분 걸렸는데? 강변 드라이브하고 좋은데.”
사장님 말에 악의나 얕볼 의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제 부동산에 왔는데, 다른 서류에 도장을 또 찍어야 해 다음날 다시 온 사람이 또, 나여서다. 금액과 규모가 큰 프로젝트라는 점을 떠나서, 우리 땅이 시골 땅 중에서도 소위 ‘어려운 땅’이기 때문이다.
“혼자 알아보러 댕기는겨?”
“남편은?”
“결혼은?”
“아가씨 혼자?”
“시골에 여자 혼자?”
동네 평균 연령보다 어린데, 여성이고, 몸집도 아담해선가. 작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혼자’ 또는 ‘여자 혼자’다. 사실 현장에 방문하는 것이 나일 뿐, 이 엄청난 일을 나 홀로 알아보고 결정하고 있지는 않다. 수많은 조력자가 있다. 다만 최종 결정권자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게 문제. 이제서야 그 상황에 익숙해졌다. 누군가 함께하더라도 타인에게 짊어지울 수 없는 내 책임, 내 탓, 내 삶의 무게다. 하여간 당사자는 혼자임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놈의 세상은 혼자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다행히 시골 땅이나 집을 보러 다니며 남성이나 더 큰 어른의 동행보다 효과적인 말이 있었다.
“저어기 지평에서 2년 혼자 살았어요.”
“군청에 직접 전화해서 확인했어요.”
살아본 자의 여유, 알아본 자의 확신.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허세’지만 필요할 때는 좀 부려야 한다. 지평에서 폭설에 고립된 이야기, 혼자 200m 오르막길 눈 치운 이야기, 다친 고라니 병원 데려다준 이야기, 온 집안에 물 샌 이야기, 폭우로 다리 무너져 대피한 이야기. 네이버 카페의 출처불명 카더라가 아닌 군청과 통화한 수십 개의 녹취 파일도 슬쩍 보여드린다. 그렇게 ‘진지한 손님’임을 드러낸다. 시골 살이의 어려움에 대한 겁주기와 훈수가 쏟아지다가도, 대화는 본론으로 돌입한다.
시골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잊을만하면 불편감을 주었다. 어린 여성을 앞에 두고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젠체하던 몇몇 얼굴이 스친다. 시커멓고 헐렁한 옷만 입고 다녔지만 만날 때마다 위아래를 훑는 남성들이 있었다. 면전에서 뿜어대는 매운 담배 연기는 참 여러번 견뎌야 했다. 우리의 대화는 불필요한 내용이 90% 이상이었다. 그 중 절반은 기세 눌리지 않으려는 나의 침튀기는 아무말대잔치. 하지만 목표에 집중했다. 때론 그들의 약점을 수단 삼아 정보를 취득하는 나도 치사하고 교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대체 왜 그렇게들 허세에 훈수질이지?’ 싶던 말들도 다음 땅을 보러 가면 내공이 되기도 한다. 그게 세포 분열하듯 쌓이고 쌓여 시골을 이해하는 맥락을 심어준다.
집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나도 사람이 되고 있나? 다사다난을 뚫고 지나왔더니, 프로걱정러가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이다. 피해를 1도 안 보려는 얄팍한 이기주의가 용솟음칠 때는 우주 만물의 거대함으로 식혀보기도 한다. 모든 대화는 에피소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 모두 이웃이니까. 우리 집이 생긴다는 것만큼 좋은 것이 ‘우리 동네’, ‘우리 이웃’이 생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겠지만, 내 삶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토지 계약 때문에 초본을 떼보니 살면서 이사를 9번 했다. 총 3장이다.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다. 누가 ‘네 고향이 어디니?’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태어나기는 서울. 딱히 고향이랄 곳은 없고요. 지평에서 살 때가 제일 좋았어요. 그곳이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어차피 또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한 번도 마음껏 풀어놓지 못한 살림과 마음 보따리. 이번 보금자리에선 나도, 우리 개들도 여기저기 집안 곳곳에 흔적을 남겨도 된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우리 집, 우리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