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돼지, 분홍빛 벚꽃
도시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던 그들을 다시 마주치니, 내가 사는 곳이 어딘지 실감 났다. 돼지를 실은 차는 절대 도심 한복판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 별채 옥상에 빗물이 찬 것을 발견했다. 쓰레기가 가득 차 빗물이 내려가지 못한 것이다. 목장갑, 담배꽁초, 육중하게 굳거나 진흙처럼 꾸덕해진 자재 찌꺼기. 나를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얼굴들이 떠올라 분이 터졌다. 그렇게 분통이 터진 채로 우박과 돌풍을 맞으며 삼십 분 동안 옥상을 청소했다.
20kg쯤 되는 젖은 쓰레기 포대를 바닥에 철퍼덕 떨구고, 덜덜 떨리는 다리로 덜컹대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춥고 배고파 손이 덜덜 떨려 밥을 먹었다. 어깨가 조금 뻐근했다. 저녁이 되자 목이 딱딱해졌다. 밤이 되자 목이 돌아가지 않고 등허리마저 꼼짝을 안 했다. 전기장판에 좀 지지면 낫겠지 싶었다. 그러나 새벽엔 119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낯선 통증을 호흡으로 겨우 달래면서 ‘할 일을 못해서 어쩌지?’ 걱정만 머리에 꾹꾹 눌러 담다 잠이 들었다. 월요일이 되어도 나아진 게 없어 으악으악 비명을 지르다 구르다시피 해 병원에 갔다. 쌓인 피로가 추워진 날씨에 터진 거라고 했다. 이제부터 밤에는 일 안 할 거라 다짐했다. 그런데도 말은 “제가 오늘 할 일이 많아서 주사든 뭐든 다 해주세요” 했다. 목덜미에 주사 여섯 대를 맞았다.
그렇게 서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축차를 본 것이다. 야속하게도 바로 내 차 앞에 보란 듯이. 돼지들은 몸집도, 피부색도 각기 달랐다. 어떤 아이는 흰 분홍, 어떤 아이는 꽃분홍, 어떤 아이는 유난히 진한 분홍색 피부를 가졌다.
곧 죽을 돼지를 보니 고작 주사 바늘 따끔한 게 아프다고 찔끔한 내가 너무 한심 해서였나. 돼지를 실은 차가 달리는 국도변이 온통 돼지 불백, 곰탕, 숯불구이집이라 돼지한테 미안해서였나. 꿍하고 뭔가 심장을 때리더니, 내리는 비처럼 추적추적 눈물이 났다. 내 몸이 아파서 서럽기도, 짤막한 일생이 온통 아픔뿐인 저들의 삶이 서럽기도. 돼지들은 내 쪽을 바라보지 않고 서 있어, 엉덩이만 기운 없이 흔들거렸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 줘서 고마울 지경이었다.
분홍빛 엉덩이들을 눈에 담고 마을에 도착하니, 길가엔 아직도 분홍빛 벚꽃이 끈질기게 매달려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