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멍난 숟가락 Jan 05. 2018

처음 맛본 냉동피자

지금까지 맛본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까지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피자라고 대답하겠다. 정확히는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엄마 친구 집에서 먹었던 냉동피자! 그 냉동피자는 꼭 왕조현처럼 내게 왔다. 천녀유혼 속 귀신이었던 왕조현이 공중을 휘 날아다니는 바로 그 장면처럼, 피자는 노란불빛이 가득한 전자레인지 속에서 돌고, 돌고, 돌다가 “땡” 하는 소리와 함께 휘 날아서 접시채 내 앞으로…… 그렇게 온 것이다.


전자레인지에서 갓 태어난 그 피자는, 새로 만난 세계였다. 쭉 늘어지는 치즈의 촉감과 질감과 맛을 그때 생전 처음 경험했는데, 그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갓 딴 코카콜라를 원샷 했을 때처럼 짜릿했다. 거기다 그 새콤달콤한 토마토소스의 맛은 어떻고. (나는 식빵을 구워서 케찹을 하트 모양으로 그려 먹을 만큼, 케찹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나는 피자를 먹으며 천국을 맛봤다.     

  

그 후, 나는 전자레인지에 꽂혔다. 80년대 후반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과점에서 빵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줬다. 크림빵, 곰보빵, 팥빵…… 종류도 가리지 않았다. 나는 빵들이 전자레인지에 입장해서 돌아가는 그 시간을, 빵을 고르는 시간 다음으로 좋아했다. 그 시간은 꼭 생일케이크의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 같았다. 30초나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전자레인지가 “땡!” 하는 소리를 내며 작동을 멈출 때 느꼈던 왠지 모를 희열! 내 어린 시절의 바람 중 하나는 우리집에 전자레인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내가 또 한 번 전자레인지에 빠지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 부모님이 여행을 가신다고 해서, 그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던 날이었다. 친구 집은 꼭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이었다. 아주 넓은 땅 위에 정말 예쁘게 지어진 집이 한 채 있었다. 방마다 침대가 놓여 있었고, 침대마다 꼭 인테리어 화보에나 나올 것 같은 예쁜 시트가 씌워져 있었다. 부엌은 또 얼마나 넓은지…… 외국 영화에서 보던 그런 부엌 같았다. 게다가 그 부엌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그날 그 부엌에서 저녁식사로 냉동스파게티를 먹었다. 그게 내 생애 첫 스파게티였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확실한 건 그 맛이 내가 기억하는 첫 스파게티라는 거다. 나와 함께 그 집에 갔던 또 다른 친구는 전자레인지에서 돌고 도는 그 스파게티를 기대에 찬 눈으로 쳐다보았고, 쭉 늘어지던 치즈까지 포크로 돌돌 말아서 한입에 넣고 나서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그저 평범한 오븐스파게티였는데, 어찌나 맛있었던지! 우릴 보며 깜찍하게 웃고 있던 집주인 친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스파게티 천사 같았다.   

  

냉동피자와 냉동스파게티의 맛을 간직한 채, 여전히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는 채로, 나는 성인이 되었다. 그제야 우리집엔 전자레인지가 생겼다. 하지만 막상 전자레인지가 생겼을 땐 냉동피자도, 냉동스파게티도 돌리지 않았다. 전자레인지 속에서 돌고 도는 동안, 음식은 수분을 뺏겼고 그런 음식이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간혹 배달 시켜 먹고 남은 피자가 생기면, 프라이팬에 올려 뚜껑을 덮고 아주 약한 불에 다시 구워 먹고는 했다.      


그 무렵, 생전 처음으로 화덕 피자를 먹게 됐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됐다. 화덕에서 갓 구워진 뜨끈뜨끈하고 말랑말랑한 피자를 한 조각 먹은 다음에는, 처음과 같은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없다는 걸. 화덕에서 갓 꺼냈을 때, 그 온도와 식감은 금방 시간에 쓸려 가버린다는 걸. 어쩌면 나를 사로잡은 건, 냉동피자와 냉동스파게티라기보다 갓 조리된 냉동피자와 냉동스파게티였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그래서 말인데…… 한 조각씩 구워주는 피자 가게가 생기면 좋겠다. 즉석에서 한 피스씩 만들어주는 초밥 가게처럼. 한 번에 한 조각의 피자밖에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식어가는 피자를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니까.        

이전 03화 러시아 양꼬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