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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Dec 01. 2021

아이를 키운다는 기적

착하기만 하던 아들에게 찾아온 변화

엄마가 된 이후로 나는 교복 입은 아이들이 신기하다. 마치 장난감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처럼 보인다. 갓난아기가 자라서 저렇게 멀쩡해서 성장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저 아이들도 자라면서 한 번쯤은 폐렴이나 기관지염을 앓았을 것이다. 고열로 열이 40도가 넘어서 엄마는 해열제와 체온계를 들고 옆에서 보초를 섰을 것이다. 아직 야물게 달리지 못하는 나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지고 깨져서 가끔은 주저앉아 엉엉 울었을 것이다. 그랬던 아이들이 어디 하나 부러진 곳 없이 저렇게 말짱히 잘 커서, 아픈 곳 없이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다닌다는 건 사실 기적 같은 일이다. 마땅히 하늘에 감사할 일이지 암.


저만치 자란 아이들은 부모에게 그렇게 귀한 존재일 텐데.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살짝 걸친 패딩은 지퍼도 채우지 않고 활짝 열어젖히고 다니는 저 팔팔한 아이들은, 자기가 그렇게 대단하고 엄청난 존재라는 것 아는지 모르는지 즐겁기만 하다.




나에게는 둘째 특유의 예민함과 강인함을 두루 갖춘 5살 된 딸 하나가 있다. 그리고 세상의 착함을 모두 끌어다 인간으로 만든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8살 아들 우주가 있다. 교복 입은 누나 형아 들은 얼마 전에 수능장에 들어갔지만, 이 아이들은 이제 겨우 아기 티를 벗어난 꼬맹이들이다. 그리고 나는 신생아 딱지 하나 겨우 뗀 8년 차 엄마.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는, 정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나는  울음이 끊이질 않아서 놀이터에 있다 보면 '저 엄마 힘들겠다.' 혹은 '저 애는 왜 저럴까.'라는 시선을 독차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해피 바이러스라고 반기던 우주를 키우던 나로서는 도무지 하나라는 낯선 존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새로운 육아의 영역에서 둘째와 씨름을 하는 사이, 우주는 기특하게도 스스로 컸다. 밥만 잘해주면 따로 돌볼 것도 없었다. 한글도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만으로 스스로 뗐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제법 잘 따라갔고 교우 관계도 좋았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좋은 소리만 듣다 끝나는 게 우주였다. 오히려 선생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키울 수 있냐 물으셔서 내가 무척 훌륭한 엄마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하나라는 아주 고집 세고 특별한 아이를 만나 좌절하고 망가지는 사이 우주에게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제 다 컸나 싶을 때 마음 놓지 말라고 이렇게 한 번씩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를 만난다.



돌이켜보면 우주는 키우기 수월한 아이였다. 다만 잔잔한 잔병치가 많았달까. 탯줄이 짧아서 태어날 때부터 고비다. 그러고는 황달로 한동안 병원에 다녔고, 신생아 때는 겨울에도 민소매를 입힐 정도로 땀띠와의 전쟁을 치렀다. 기관지가 안 좋아서 목감기나 후두염을 자주 앓았고 두 돌 때는 폐렴으로 입원했었다. 6인실에서 단풍잎 만한 손에 링거 줄을 꽂은 채로 2박 3일을 머물렀던 그때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아픈 아이는 쉬 잠들지 않았고, 나는 아기띠를 한 채로 링거 스탠드를 병원 복도를 돌면서 내가 아는 모든 동요를 불러주며 재웠다. 이 환경에서는 아이도 나도 결코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에 병원 측에 동의 없이 퇴원한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가정용 호흡기 치료기인 네블라이져는 필수품이 되었다.


조금 더 커서는 구토를 자주 해서 가방에는 항상 여분의 옷과 비닐, 물티슈를 가지고 다녔다. 카페, 고속버스, 병원, 키즈카페, 식당 등등 아이가 토하는 장소는 다양했고 여러 번 겪어도 역시나 매번 당혹스럽고 난감한 순간들이었다. 우주가 잘 토하는 게 질병은 아니지만 구토 반사가 남들보다 심한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것을 못 참는 것이라고. 덕분에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 밥을 먹이지 않고 빈속으로 가는 등 언제 토할지 모르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어느 날은 우주의 어린이집 친구가 집에서 반에 토하는 아이 이야기를 자주 한다며, 혹시 심하게 아픈 친구가 있는 것 아니냐고 선생님께 묻기도 했단다. 우주는 새콤한 맛을 싫어해서 과일을 먹지 않는데, 그걸 알고 전혀 권하지 않 선생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집에 와서 오늘 간식으로 귤이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을 했다는 예를 들면 구토가 이 아이에게 얼마나 일상이었는지 설명이 될까. , 정말 길고 길었던 토쟁이의 역사다.


고열로 한 번 응급실에 갔고, 자가다 귀다 아프다고 울길래 응급실에 갔더니 급성중이염이라고 했다. 5살 여름에는 킥보드를 타 넘어진 무릎 염증이 심해져서 매일 드레싱을 하러 병원에 갔고, 그 해 여름 물놀이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물려받은 비염이 있어서 아침에는 콧물과 재채기로 고생을 하고, 조금 더 커서는 배가 자주 아프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도 응급실에 여러 번 갔었다. 대부분 링거를 맞거나 약을 먹으면 나아졌지만 병원에서도 혹시 다른 원이 있을지 모르니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한 2년 동안 응급실과 병원 오픈 대기조 생활을 지겨울 정도로 자주 했다. 바닷가에 갔다가 벌에 쏘여서 수영복을 입은 채로 병원에 간 적도 있고, 나무로 된 평상에서 방방 뛰다가 발바닥에 작은 가시들이 박혀서 응급실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살을 고 뺀 적도 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주 넘어지길래 이것 역시 내가 물려준 안짱다리 때문일까 걱정되어 유명하다는 정형외과에 갔었다. 안짱다리인 것은 맞지만 교정기를 찰 정도는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넘어지지 않게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요즘같은 가을 겨울에는 겨드랑이 뒤 쪽과 손가락 끝이 건조해져서 피부가 잘 상하기 때문에 심해지지 않게 보습을 신경 써줘야 한다.


여기까지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8년을 자란 우주가 겪은 소소한 질병 기록이랄까. 그 사이 독감이나 당시 유행하는 감기 바이러스 같은 것들은 셀 수 없이 자주 있을 것이다.




매 순간 엄마인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고민되고, 일상이 멈추는 사건들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이 정도면 큰 사고 없이 잘 자란 것이다.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들은 없을 테니까. 8년 동안 한 아이를 키우며 대충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이 정도인데 수능장에 들어가는 19살까지는 키우려면 어떤 애타는 시간들이 남아있는 걸까. 그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 졸이는 낮과 밤을 보냈을까 감히 상상이 안 된다.


한 인간을 성인이 될 때까지 무사히 키워내는 미션 자체가 대체 가능하긴 한 걸까? 게다가 나는 한 명도 아닌 둘이고 셋넷을 동시에 키우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거의 혼자 알아서 큰다고 느꼈던 기특한 우주에게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생겼다. 내가 하나를 안아주고 달래주는 사이 우주에게 스며든 변화는 바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고 눈이나 볼, 목 등 아무 곳이나 침을 찍어 바르는데 의외로 실제로는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틱을 의심하고 있다. 혹시 진료를 받아야 할지 모르니 동영상으로 찍어 두었는데 아직은 제지하지 않고 이대로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지만 틱의 원인 대부분이 심리적인 것이라고 해서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 다행히 밖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기 때문에 그 행동은 나오지 않을 테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심지어 매일 보는 남편도 내가 얘기하기 전에는 못 느꼈다고 하니 아직은 이 정도가 최선인 것 같다.




화낼 줄 모르는 마음 여린 아이를 키우면 다 좋을 줄만 알았지, 그 스트레스를 어디 풀지도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행동으로 반복하고 있는지 몰랐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니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하루에도 여러 번 시간을 되돌린다.


하나가 태어나고 한동안 우주가 화장실에 자주 가는 일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위 질병 기록에서 빠졌네) 방금 전에도 소변을 봤는데 계속 화장실을 찾았다. 소변에 염증이 있는 경우에 그럴 수 있다고 해서 병원에 가봤는데 아니었다. 스트레스라고 한다. 주변에 물으니 둘째가 태어난 후 첫째들이 그런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그럴 리가! 둘째가 울면 엄마 빨리 아기한테 가보라며 오히려 나를 다그쳤던 우주였다. 안아주고 우유병을 잡아주고 책을 읽어준다며 함께 누워 책장을 넘겨주던 세상 어디에도 없던 오빠였다. 더 커서도 하나가 장난감을 빼앗으면 때리거나 밀친 적 한 번 없이 양보했고, 엄마가 필요해도 기다려줬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을까. 너는 다 괜찮다고 했는데 네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까.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모두 잘못이고 실수 같았다.


아마도 이 일이 무사히 지나가도 훗날 또 다른 산이 나타날 것이다. 공부나 교우관계, 금전적인 것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산들이 지금 넘어가는 산 보다 결코 수월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을 채워주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아주고. 아이가 배우고자 하는 것을 부족함 없게 뒷받침해 주는 일이 나는 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을까. 이런 나의 걱정과 고민은 곧 성인이 될 아이들을 키운 저 부럽고 대단한 부모들도 했으려나. 잘 키우려고 종종거리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 얼마 전 수험장으로 들여보낸 부모님들이 새삼 무척이나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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