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소감,김혼비,안온북스,2021
안녕 하나야.
요즘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책 읽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 수업이 시작되면 다시 바빠질 예정이라 겨울이 되기 전에 잔뜩 살을 찌우는 곰처럼 책을 사들이고 읽고 있지.
올해부터는 다이어리에 읽은 책의 제목을 적어두고 있어. 엄마에게 책은 분석하고 배우기보다 오롯이 읽는 즐거움이 우선되는 취미라 그동안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그 시간에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고) 1년 동안 몇 권을 읽는지 궁금해지더라고. 지금은 3월 중순인데 23권 정도를 읽었어. 읽는 속도가 구입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자꾸 조바심이 드네.
이번 주말에도 우리 가족은 항상 그렇듯 카페를 갔는데 너는 그림을 그리고 오빠와 아빠는 핸드폰과 패드, 닌텐도를 번갈아 가며 게임 삼매경에 빠졌어. 언젠가 네가 그림을 그리다 지겨워지면 엄마와 함께 책을 읽게 될까? 엄마는 말없이 기대하고 있어. 네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되어도 어쩔 수 없겠지만. 부디 여가시간에는 책을 집어드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고 있지. 이런 엄마의 바람을 아직 너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 너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다시 구입했어. 조심히 플래그를 붙여 마음에 드는 부분을 체크하다가 내 책이 된 후에는 마음껏 밑줄 치며 신나게 읽었지. 김혼비 작가의 다른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도 무척 재미있으니 한 번 읽어보길 바라.
국어사전에서 '제사'를 찾아보면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나온다. 빨간펜을 들어 이렇게 고쳐 써놓고 싶다. "(남자네 집안)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여자들이 동원되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해봐야 전 부치는 걸 거드는 게 전부인 남자들이)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남녀차별 집약적) 의식."
p.78
한 때 엄마는 있잖아. 제사가 그리 싫지 않았어. 그 시절 엄마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고, 세상에 빌어야 할 존재가 있다면 누구의 조상이든 어느 종교의 신이든 상관없이 부탁하고 싶었거든. 실제로 결혼하고 매년 네 번의 제사와 두 번의 명절 때마다 진심을 다해 빌었지. ‘건강한 아이들 갖게 해 주세요. 아이를 갖게 해 주신다면 사랑으로 키우겠습니다.’ 그래놓고 이제와 원하는 아이가 둘이나 생겼으니 제사 같은 가부장제의 전통을 따를 수 없다 얘기하는 것이 어딘지 염치없어 보이더라고. 하지만 김혼비 작가의 글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이 모든 게 사실이기 때문이지.
나에게 건강한 아이 둘이 찾아온 것이 정말 네 아빠의 증조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 덕인지 알 수 없지만, 제사 때마다 찾아와 정말 후손들을 지켜보고 계신다면 정성 들여 차린 음식과 이미 할머니가 된 며느리의 쩔뚝이는 무릎이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 자손들을 염려한다면 그 정성(정확하게는 대대로 내려온 며느리들의 노동)을 고마워하기보다 안타까워하고 계실 거라 생각해.
작가는 다가오는 명절에 지인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나눈 의미심장한 인사말들을 책에 옮겨놓았더라. 그 비장한 마음이 꼭 나와 같아서 엄마는 무척 공감하며 봤어.
명절이 다가오면 엄마들은 정신 무장을 해.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미리 당충전을 하거나, 미리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제로 상태로 만들어 놓기도 하지. 다가올 비합리와 불평등, 누군가에게는 재앙에 가까울 상황에 가급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명절이나 제사 때 할머니가 거의 모든 요리를 다 하시고 엄마는 전 부치는 정도만 돕지만 여자들이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꼭 노동의 강도 때문 만은 아니거든. (언젠가 너도 알 거야라고 쓰다가 나중에도 너는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지웠단다.)
어떤 명절을 보내시는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아무튼 조금이라도 더 쉬실 수 있길 기원해 봅니다.
즐거운 추석이 되셔야 할 텐데 혹시 그러시지 못할까 봐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짬짬이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어떤 명절을 보내실지 가늠이 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부디 가부장제의 자장이 최대한 덜 미치는 곳에서 즐겁게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p.77
엄마는 전을 다 부치고 이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고 주로 혼자 카페에 갔어. 피신에 가까웠지. 출퇴근이 따로 없는 사람이라 일을 해야 한다는 좋은 핑계 덕분에 다행이었지.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들때는 혼자 나와 맥주를 마시기도 했어. 도망치는 게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서 엄마는 때때로 시가의 주방을 탈출해야 했단다.
일이 고되든 수월하든, 잠깐이든 오래든 상관없다. 남자네 집안 행사에 불려 가 그 집안 조상을 모시고 그 집안 친척들끼리 모여 친목과 우애를 다지는 현장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앞 세대 동 세대 여성들이 수발 상궁처럼 노동하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부장제 안에서 '남자보다 낮은 지위에 놓인 여자'를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초현실적으로 피곤하고 모멸적으로 괴롭다.
가부장제가 흩뿌리는 유해한 메시지들은 이렇게 명절을 통해 강화된다. 교육의 장으로서도 최악이다.
p.82
엄마는 너를 낳고 딸이 생겼다는 기쁨과 동시에 딸이라서 차별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널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어.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아니라 긴장을 놓칠 수 없는 불안감이었지.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일이지만,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모든 상황들을 자주 상상했어. 네가 오빠와 신나서 춤을 추거나 방방 뛰어다닐 때 누군가 유독 너에게만 얌전히 앉아서 놀라고 한다거나 여자답게 굴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하고 말이야.
엄마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여자애가 어디 밖에서 발라당 누워있냐고 꾸중하던 선생님이 있었거든. 왜 같이 뛰고 눕고 굴러다니던 다른 남자애들은 혼내지 않고 나에게만 저런 말을 할까, 엄마는 그 억울하고 불쾌한 감정이 차별 당했기 때문이란 걸 조금 더 커서 알았어. 그러고 보니 하나가 지난여름학교 운동장에 누워서 '여기는 바다예요.' 라며 놀던 게 생각나네. 진짜 바닷가에 온 것처럼 즐겁게 놀았거든. 너를 따라 다른 친구들도 함께 누워버렸지. 엄마는 네가 옷이 더러워질까 봐 걱정하지 않고, 얌전해야 한다는 염려 없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뒹구는 딸이라 좋았어. 그 누구도 너에게 여자애가 뭐 하는 짓이냐고 당장 일어나라고 혼낼 수 없었지.
할머니댁에서 엄마가 제사 준비를 하고 있으면 네가 가끔 엄마를 도와줄 때가 있어. 자발적으로 도울 때는 딱히 막지 않지만 만약 네 할머니가 세 살 많은 네 오빠가 아니라 굳이 너를 불러 엄마를 도우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엄마는 그런 순간에도 조금 긴장하고 있단다.
상상 속에서 엄마는 너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해. 수저를 내려놓게 하고 네 손을 잡은 뒤에 차분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거야.
“하나야 넌 어리니까 아직 엄마를 돕지 않아도 돼. 제사는 원래 다 같이 해야 하는 거지만 어른들도 많으니까 너까지 돕지 않아도 괜찮아. 하나가 하면 나이가 더 많은 오빠도 당연히 같이 해야지, 하나 혼자 할 필요 없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엄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정말 고마워. 우리 딸.”
내가 웃으며 말하지 않으면 너는 잘못한 게 아닐까 커다란 눈이 더 동그랗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야기하고 나서 오해하지 않게 꼭 안아주고 뽀뽀해 줘야지.
사실, 네가 보고 자란 것이 이미 너에게 흡수되어 있을 거야. 내가 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너에게 가르치는 것들을 이미 내가 행동으로 하고 있겠지. 미안하게도 엄마는 그러지 못했단다. 여전히 머리와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엄마는 시가에 가면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하고 설거지를 하고 상을 차리지. 엄연히 말하면 그 주방의 주인은 할머니 할아버지인데 말이야. 게다가 그 집이 더 익숙한 아빠는 주로 거실에 있고 주방에는 들어가지 않아. 엄마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너에게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현실을 바꾸지 못했어. 그 못난 점도 부끄럽지만 함께 고백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