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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대생 무씨 Jul 20. 2020

젊은 꼰대

[07/19] 비판을 수용한다는 것.(上)

비판批判 [비ː판] 

명사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비난非難 [비ː난]    

    명사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듯,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역시 듣기 좋은 칭찬보다는 듣기 싫은 쓴소리이다. 나도 의대생 무씨가 되는 데에 '공부 참 잘하네'라는 칭찬보다는 '이 파트가 부족한 것 같은데?' 혹은 '공부 시간이 좀 적은 것 같은데?' 같은 쓴소리가 훨씬 더 큰 밑거름이 되었다. 쓴소리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다. 상대가 썩 달가워하지 않더라도 그의 발전을 위해 쓴소리를 해주는 것은 그만큼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기반이 되기에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을 곁에 두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쓴소리는 이를 해주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를 듣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말들을 해줘도 듣는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하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소 귀에 경 읽기 하는 꼴이다. 나는 소위 '꼰대'란 이런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생일 케이크에 꼽는 초의 개수와 무관하게,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나의 관점에만 사로잡혀 계속해서 나의 주장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그리고 대체로 우리는 어떤 분야에 대한 경험치가 누적될수록 그 경험을 일반화해서 적용하려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에 '꼰대'가 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과고를 준비하던 때, 굉장히 좁은 풀(pool)인 과고생들 사이에서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과학 학원 원장님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 원장님은 명성대로 수업을 잘하시는 데다가, 위트까지 넘쳐 물리를 몹시 싫어하는 나에게도 그 선생님과 함께한 수업 시간은 즐겁게 다가왔고, 칭찬보다는 농담 섞인 쓴소리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만, 물리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의 실수나 오류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이는 그분이 물리 수업을 진행한 경력과 과고에서 날고 긴다는 수많은 수제자들을 배출한 이력을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도 아니다. 거기다 지적을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고 물리에 입문한 지 1년도 채 안 된 학생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욱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그만큼 자신하는 분야이기에 발생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큰 치명타로 돌아온다. 실제로 그 원장님은 본인은 영문도 모른 사이 수강생이 점점 줄어 결국에는 학원이 없어지기에 이르렀다. 수강생이 빠져나간 데에는 그 외에도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자신의 분야에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한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발전은 없다는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고 했던가. 어느새 4년 차 과외 선생님이 된 나에게서 젊은 꼰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나는 물리를 싫어했기 때문에 수학에 조금 더 올인하는 일명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취했다. 다행히 나의 올인 작전이 통해서 과고 졸업까지 쭉 수학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중학교 때 수학 선행을 많이 한 것도, 특출 나게 수학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나처럼 평범한 학생들에게 동등한 눈높이로 접근하여 수학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은 가르친 학생들이 실력이 향상되고 성적이 오를수록 확신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와 비례하여 나의 풀이에 대한 고집이 늘어갔다. 


그러던 중 과고생 A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A는 과고 선배인 나의 말을 잘 따랐고 수학 수업은 원활히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집합과 자연수의 분할에 대한 개념 설명을 하고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내가 그 두 기호 P(n, k)와 S(n, k)를 완전히 거꾸로 설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기호의 정의를 묻는 기초적인 질문 외에는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도 뜻만 안다면 조합을 이용해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에 A도 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차 싶으면서도 나는 순간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개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놓고서 기초적인 기호 하나도 헷갈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니... 지금 문제 푸는 데에는 지장 없으니 어물쩡 넘기고 다음 시간에 제대로 설명해줄까..?'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하는 선생님이라는 지위에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의 부끄러움과 보잘것없는 나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학생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그토록 되지 않고자 했던 꼰대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다행히 이성이 든 나는 '엇, 내가 기호를 바꿔치기한 것 같은데, 기초 문제 한번 다시 가보자'라고 하며 시정을 했다. 내 우려와 달리 부끄러움과 신뢰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보다는 내 잘못을 고쳤다는 편안함이 나를 감쌌다. 


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의 경험담을 고해성사하듯이 적는 이유는, 내가 향후 의사 혹은 더 많은 지식이나 책임을 요구하는 지위에서 이때의 기억을 떠올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하는 바람에서이다. 지식과 경험을 축적할수록 매너리즘에 빠져들기 쉬워지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어려워진다. 하지만 의사가 되어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의 부끄러움과 보잘것없는 나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환자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나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꼰대가 된다면 그때는 수학 문제 하나를 틀리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결과를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오는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단 하나만 기억하라고 말한다면... 

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 내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다.

                                      -비판을 수용한다는 것과 비난을 감내한다는 것.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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