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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Dec 13. 2021

어머니는 스웨터가 싫다고 하셨어~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일까 받는 사람 마음일까?)

모름지기 선물이란 큰 의미를 가지고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선물일지라도 뭔가 그 기념일에 맞는 연관성을 부여해서 오랜 기간 고민하곤 했다. 큰돈을 들이지 않아야 하고 받는 사람이 무척 기뻐야 하지만 부담은 없어야 한다는 이상한 원칙 같은 것을 고수했다. 그래서 기념일이 다가오면 고민을 오래 하는 부작용이 있긴 하다.


아이를 낳고 잠시 휴직을 하는 동안 평소 관심이 있던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앉아서 뭔가 꼼지락 거리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과 뜨개질이 잘 맞았는지 나는 밤을 새워 옷을 만들었다. 아이들 조끼를 시작으로 조금씩 욕심을 내서 원피스까지 도전했고 급기야 바느질 이음새가 엉망이긴 했지만 카디건까지 도전하게 됐다. 완성된 허접한 작품을 볼 때마다 성취감도 꽤나 좋았다. 그즈음 시부모님 생신이  겨울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도톰한 쉐타를 짜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갓난아이는 순하디 순해서 잠도 잘 잤다. 잠자는 시간에 짬짬이 하다 보니 더뎠지만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는 옷을 보면서 쉴 새 없이 바느질을 놀려댔다. 어쩌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면 난 바느질을 더 못해서 아쉬워할 정도였다. 그렇게 두 분의 쉐타을 완성했다.


아버님은 평소 외출이 잦으시니 셔츠 위에 받혀 입기 좋으라고 아이보리색으로 만들었고, 어머니 껀 부끄럼 많은 새색시의 볼처럼 빨간 꽃분홍으로 짜서 완성했다. 힘들게 사시는 어머니가, 이제 갓 시집온 며느리가 

짜준 쉐타를 입고 동네방네 자랑할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뿌듯해졌다.


'자고로 선물을 하려면 이 정도 정성은 들여서 해야지' 라며 나는 둘째 형님이 사 온 유명한 니트 한벌보다 손으로 직접 정성 들여 짠 쉐타가 훨씬 의미 있지라며 혼자서 어깨뽕을 세웠다.  어머니는 나와 형님의 선물을 다 고맙다고 하셨지만 나는 은근히 내 정성에 더 감복했을 거라며 그동안 밤새 잠 못 자고 만든 보람이 있다며 스스로 감동했다.

내가 직접 짠 스웨터랑 비슷한 유형과 칼라 (사진출처:네이버쇼핑)



그리고 몇 해 후, 막내 시동생이 장가를 가고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 시댁에 온 가족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미처 입을 옷을 가지고 오지 못한 나는 어머니께 입을 만한 옷을 주십사 부탁을 하고 옷장을 연 순간 그 옛날 내가 밤새 짠 분홍색 쉐타가 옷장 저 밑바닥에 구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미처 그 옷을 감출 사이도 없이 나는 그 옷을 꺼내서 이거 안 입으시냐고 했더니 어머니는 입는데 아끼는 거라며 얼버무리셨다. 그러고 보니 겨울에 잠시 다니러 갈 때도 두 분이 쉐타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뒤에서 옷을 기다리던 다른 형님들이 쉐타를 보더니 왜 안 입으시냐고 한두 마디 보태자 그제야 어머니는 옷이 너무 까칠해서 못 입겠다는 둥 색깔이 너무 촌스러워서 교회 갈 때도 못 입겠다고 하시면서 급기야 가져가서 나더러 입으라고 하신다. 어머니는 순간 아차 싶었는지 맨날 밭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 이런 옷을 입을 일이 어딨냐고 하시면서 안사돈은 집에 있으니 입으면 좋겠다고 친정엄마에게 넘기려고 하셨다. 

화가 난 나는 아버님 꺼까지 다 달라고 해서 보따리에 싸들고 집으로 가져와서 밤새도록  고생하며 짠 스웨터를 다 풀어버렸다. '다시는 어머니께 이런 내 정성을 바치지 않으리라'라는 다소 독한 각오까지 하면서.


그때 상처가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고 어머니의 생신선물을 현금으로 대체해버리게 됐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유용하게 쓴다면 정말 좋은 물건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쌓아두고 유물이 되는 것도 많다. 주일학교 교사를 할 적에 스승의 날이 되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이들이 선물을 만들어서 삐뚤빼뚤 글씨로 손편지까지 써서 주곤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선물곽에 보관하는 것 중에 하나는 실로 만든 반지라든가 팔찌 같은 것이다. 액세서리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들이 만든 것이다 보니 옷에 맞춰 입을 만한 디자인도 아니었다. 따로 보관하고 편지들도 모아두는 성격이라 가끔 꺼내서 보면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올라 기분이 새롭기도 하다.


서로에게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이나 정을 나누는 것을 선물이라고 한다. 요즘은 정성을 들여 만든 선물이 아니라 '너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사라'며 생일이나 기념일에 현금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어디까지 정성을 들여야 상대가 감복하고 좋아할지 알 수 없다. 현금도 점점 액수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예전의 나처럼 요즘 세상에 뜨개질을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젠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어졌다.

sns에 '생일'이라는 친구의 프로필이 뜨면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케이크를 전달하고 치킨을 쏘면 그만이다.

그리고 감동의 메시지를 몇 자 끄적이면 끝이다. 우리네 삶이 이렇듯 간단해지고 있는 것이  편리한 반면 인간관계의 정이 간단해지는 느낌이다. 못나고 울퉁불퉁한 모양이라도 준비하고 만드는 시간 동안 상대를 생각하고 그 사람이 이 선물을 받고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두고두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도록은 아니더라도 서로를 추억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길 바라는 건 나만의 욕심일까. 


천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그때 그 시절을 아시는지.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때 누군가를 위해 하얀 유리병에 종이학을 접으며 가슴속에 품은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순수함. 어쩌면 그런 순수함이 오래도록 사람을 이어주는 정이 아닐까 싶다. 선물에 대한 내 원칙이 사라지는 건 꼭 세상의 흐름 때문은 아니라 내가 변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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