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한 직장에서 10년을 넘게 일해 오면서 언니 동생으로 격이 없이 지냈고,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 인지 다 알 정도로 흉허물 없이 지내왔다. 우리는 본사 직할의 관리팀장으로 일했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각자에게 배당되는 외형을 나는 특별히 욕심 내지 않았다. 그저 회사에서 주는 대로 아무 군소리 없이 받았다. 그녀는 형편이 어렵다고 했다. 남편이 직장은 위태로웠고 생활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녔다. 우리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닌 그녀는 관리자들과의 술자리도 적잖이 가지며 그 상황을 꽤 어필했다. 그런 그녀는 업무적으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외형 배당을 많이 받아가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무엇보다 그녀는 노력했다.
다른 사람보다 30분 일찍 나와서 관리자들 책상까지 닦고, 탕비실의 냉장고 청소며 정수기 주변의 위생상태까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런 부지런함이 일에서도 빛을 발해 업무능력이 뛰어나 성과급은 나의 3배를 가져갔다. 부장은 항상 술자리에 그녀를 불렀고 주(신)님을 믿는 나는, 주(술)를 좋아하는 그녀와는 하늘과 땅 차이로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났다. 그때부터 그녀는 주위에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고 나와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걸 윗선에서 해결했고, 어떠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고 은근하게 왕따가 되어갔다. 외로웠고 그녀와 멀어지는 게 두려웠던 나는 퇴근 후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녀가 그동안 차갑게 대한 걸 미안해하며 '언니 우리 잘 지내자'라고 말할 줄 알았던 나는 혼자서 장밋빛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잘 지내자고 했지만, 그녀는 나와 친하게 지내야 할 이득이 없었던 건지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의 관계는 더 어색해지고 그녀가 나날이 달라지는 만큼 우리 관계 또한 태평양만큼 멀어지고 남북관계만큼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때 당시 관리팀장을 맡고 있던 10명 중 나를 포함해서 3명이 같은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나와 그녀 그리고 k팀장. 나와 k팀장은 남편을 등에 업고 잘 사는 년들이었고 그녀는 자기가 벌어 친정부모님까지 책임지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아버지가 낙상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날 아침 k팀장은 뇌종양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참으로 희한한 건 이 두 가지 사고는 같은 날 벌어지고 말았다.
본사의 상무님은 그녀에게 전화를 했고 그녀의 아버지의 안부도 물었지만 사무실에서 혼자 남아 세명의 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나를 걱정하며 말했다는 것이다. 상무의 걱정도 전혀 일리가 없지 않을 것이나 그냥 그녀를 위로만 해줬으면 될 일을 오히려 나와 그녀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화근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무와 내 남편이 잘 아는 사이라서 그녀는 오해를 했을 것이나 사실 그 상무와 남편과의 관계는 칼만 차지 않은 적과의 관계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깊은 사정을 그녀는 알 수 없었으니 자신의 아버지의 사고보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도맡게 된 나만 안쓰러운 존재로 생각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가장 힘들 때 위로받지 못한 그녀는, 평온하고 가만있어도 인정해주는 남편 잘 만난 년들을 더 미워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고로 가장이 아닌 가장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어쩌면 더 악바리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나는 20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남편 등에 업고 잘 사는 년들을 가장 혐오한다던 그녀에게 지고 말았다. 퇴사한 직후 세상 가장 비련 한 여인이 되어 위로와 공감을 바랐던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그런 것들 하나 휘어잡지 못하냐고 위로는 커녕 타박만 받았다.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따갑고 아팠다. 남편도 속상한 마음에 그렇게 말했겠지만그 이후로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고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냥 덮어두는 게 덜 아팠다.
퇴사 직후 동종업계에 새로 취업을 했고 그 시절만큼의 연봉은 아니지만 대신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졌다.
나는 그때의 일을 겪은 후 글쓰기와 책 읽기로 나름의 상처를 회복해 가기 시작했다. 위로라는 말을 되새겨보니 놀랍게도 그녀가 그렇게 독하게 변한 건 그녀가 아플 때 위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만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과거. 그녀의 시기와 질투로 나를 아프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글쓰기 모임에서 '위로'라는 키워드로 쓰고 보니 그때 그녀의 마음을 조금 살펴보게 되었다.
글쓰기란 참으로 묘하다.
일기장처럼 내 생각만 주절거릴 땐 세상 모든 아픔과 고통이 나에게만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때의 상대방 마음도 생각해보게 된다.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녀의 욕심도 있었겠지만 가장 힘들 때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돈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위로가 없어서 변했 건 그렇지 않았 건 그 싯점에서 우리의 관계는 어쩌면 끝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위로를 찾아갔고 나는 글쓰기를 통해 위로를 찾아 떠난 것이다. 각자의 방법으로 위로를 만들어가는 우리는 또다시 어느 접점에서 만나게 되면 조금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앞날에 편안함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