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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Feb 10. 2022

한 번만이 한 달 동안 쌓이면

내 물건을 나눠 쓰는 건 최소한 내 마음이 불편하거나 또 내가 손해 본다거나 하는 불편을 끼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빌려주거나 빌렸을 때 어떤 손해나 불편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아야 서로가 좋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겠지만, 자신의 물건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나눠서 쓰거나 내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있을 땐 당황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도 틀어질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옆집 살던 혜진이 엄마는 우리 집으로 물건을 자주 빌리러 왔었다.

혜진이 아빠가 오랜 지병으로 가장 역할을 못했기 때문인지 식구가 많은 그 집은 늘 가난에 허덕였다.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혜진이 엄마는 바로 옆집인 우리 집에서 간혹 도움을 받곤 했다.

있다고 잘난 척하는 법이 없던 엄마는 갖다 쓰라고 편하게 말 했지만  빌려가는 혜진 엄마는 늘 미안해하며 고마워했다. 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빌려 쓰는 혜진 엄마의 마음도, 무뚝뚝하지만 군소리 없이 빌려주는 엄마의 마음도 가난한 시절 서로를 배려하는 소박한 마음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보험 설계사들이 근무를 한다. 나는 내근 업무 직원이라 늘 출근을 하지만 한 달이면 20일 정도 출근하는 분이 있다. 자영업자라고 해야 하나? 파워 영업 우먼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한 번씩 나오면 오후쯤 출근해서 내가 퇴근할 때까지도 열심히 일한다. 주로 보험 설계를 하거나 가입한 고객들에게 물품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게 비품을 빌린다.  

스테이플러 심지까지는 이해했는데, 오늘은 커피 믹스가 떨어졌다며 혹시 남은 거 있냐고 까지 했다.

얼마 전 설날 선물 받은 믹스커피가 여러 통 있어서 아예 한통을 건넸다.

내가 너무 잘 빌려줘서 편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하기에는 횟수가 잦고 빌려달라고 할 때도 당당하다.


이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러 군데를 다니며 보험 영업을 하시는데 꽤 많은 수익을 내는 영업 우먼이다. 

내 월급의 3배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 거로 알고 있다. 물론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소득이기에 축하받아 마땅하지만 그 고소득자의 평소 행동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쫌생이가 되는 건 기분 탓일까.


커피 물이 흘렀다며 '티슈' 한 장만 쓴다고 톡 뽑아간다.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오자마자 빌려달라고 하는 건 칼이다. 

두리번거리며 "가위가 어딨나?" 라며 내 책상을 기웃거린다.

박스테이프는 늘 쓰면서 왜 사다 놓고 사용할 생각은 안 하는지 의문이다.

"스카치테이프 한 번만 빌려줘요."

뭐가 틀렸는지 모르지만 급하게 말한다, "혹시 글씨 지우는 화이트 있어요?"

퇴근하려고 막 책상 정리를 하는데, "잠시만~ 컴퓨터 끄지 말아요 나 스캔해서 메일로 좀 보내야 해서 그거(스캔) 한 번 쓸게요."

아예 내 자리에서 일을 하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비품을 빌리는 일이 많아지더니 결국 내 컴퓨터까지 쓰겠단다. 이러다 보니 내가 가끔 업무차 메신저를 주고받을 때 옆에 몰래 와서 불쑥 말을 걸면 잘못한 것도 없는 나는 움찔 놀란다. 



'그까짓 사무용품이 얼마나 한다고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핀잔 할 수도 있는데, 그 깟 게 얼마나 한다고 구매하지 않고 남의 것을 수시로 쓰는 건 어떤 심리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 물건을 누군가 함부로 쓰는 것도 싫고 남의 물건을 빌리는 것도 무척 어려워한다. 

금전적인 문제까지 꺼내고 싶지 않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거래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회사에서의 비품은 사업비로 구매를 하지만 그것 조차 갖다 쓰는 일이 없이 자비로 구매해서 사용하는 편이다. 관리부 직원한테 물품을 달라는 말하는 것조차 구걸하는 것 같고 비품을 그리 많이 쓰는 것도 아니기도 해서다.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도 싫고 빌려 쓰는 것도 싫다는 건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쫌생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분은 매번 출근할 때마다 내 자리에 기웃거리며 빌릴 것을 요구하다 보니 꽤나 거슬린다.

내가 한창 업무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혹시 풀 있냐며 두꺼비 같은 큰 눈을 두리번거릴 때마다 또 시작이군 하며 건넨다. 



내 책상에서 둘이 일하는 셈인데 머지않아 퇴사할 때는 모든 비품을 그분께 넘기고 떠나야겠다.

고맙다는 말은 받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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