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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냥 읽는 거지. 무슨 방법이 있나?

by 모래 Aug 20. 2024

        

  

     여러분은 ‘책을 읽는다’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침대에 기대어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들으며 읽는 모습? 아니면 소파에 누워서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바스락바스락 꺼내 입으로 가져가며 기름 묻은 손가락으로 한 장 넘기는 모습? 그것도 아니면 책은 펴 놓고 스마트폰에 온 알림 확인하느라 한 장도 못 넘기는 모습.   

  









물론 책을 누워서 보려면 읽지 말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라고 할 때 그게 뭘 의미하는지부터 점검해 보자는 이야기다. 



먼저 책을 읽는 목적에서부터 출발하자. 책을 읽는 목적이 힐링이라면 위의 떠오르는 예시와 같은 모습도 상관없다. 이 경우는 어떻게 읽어도 좋다. 힐링이 된다면 목적 달성한 것이니. 







하지만 책을 읽는 목적이 생각하는 힘을 키워 비판적 사고력을 갖는 소위 말하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후자의 경우는 누워서 볼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잘하는 말이 있다.   

       

“책은 연필 들고 읽는 거야.”          




내가 하는 논술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다.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책 한 권을 읽고 그 책을 들고 나를 만나러 온다. 그러면 먼저 아이들의 책 상태를 쓰윽 훑는다. 대충 각이 나오니까. 책이 깔끔한 친구들은 거의 십중팔구는 힐링 독서하듯 읽고 온 경우다. 스마트폰과 번갈아 가며 대충 넘기고 오는 경우도 있고. 


   “어 00이 책 읽은 거 맞아? 책이 왜 이리 깨끗해? 접은 흔적이 전혀 없는데? 열어보긴 한 거야?”

   “ 아~ 쌤. 읽었어요! 그럼 뭐 책을 막 일부러 구길까요?”

   “그래? 알았어. 수업해 보면 알겠지.” 


해보면 안다. 책을 읽었는지 책을 보고 왔는지 ‘읽긴 읽었는데요’ 인지 감상을 하고 왔는지 말이다.   

        

  “밑줄이 하나도 없네. 인상 깊은 부분이 없었던 거야?”

  “샘. 책에 낙서하면 엄마한테 혼나는데요.” 

  “흠... 낙서? 밑줄이 왜 낙서야? 아니 그리고 낙서도 해도 돼! 막 화나는 것 있으면 화도 내고,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써놓든 표기하든 해야지. 낙서하기 싫으면 포스트잇 있잖아 그런 걸 이용해서라도

  뭘 표시를 해야지.” 


이 경우 집요하게 조사해보면 실은 엄마 핑계 대는 거였다. 그런 녀석들을 더 집요하게 파고 파는 질문으로 괴롭혀 주곤 한다. 아 안 읽고는 한마디도 할 수 가 없구나...  하도록.    

       

초등학교 6학년 수업시간이었다.

   “와, 그 00이 너무 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야. 그 아저씨 완전 빌런 아니었냐. 나 진짜 속 터져서.”

   “ 샘 이거 실화예요?”      


이런 이야기들을 쏟으며 아이들이 왁자지껄 자리에 앉았고, ‘실화라고 생각했다니 책이 재미있었다는 얘기구먼.’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개연성이 높은 작품이라 실화라고 느꼈을 거야. 실화는 아니야.”      

   “개연성이 뭐예요?”     


일부러 조금은 어려운 단어도 써준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이러한 개념도 알아둬야 하니까.

개연성(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 앞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그럴법한 이야기가 이어질 때 개연성 있다고 함)에 대한 설명까지 해 주고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한 친구 녀석이 전혀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슬쩍 거들고만 있었다. 책을 보아하니 깨끗하고. 그렇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 태석아, 아 진짜, 그 00이 죽을 때 있잖아. 너무 마음 아프더라 그치? 걔 누나한테 얼마나 미안 했을까. 

     그렇지?” 

그랬더니 태석이 끄덕이며

   “네…. 맞아요.” 

한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 막 떠들다가 

   “엥? 샘 00이 안 죽었잖아요? 누나 얘긴 또 뭐에요?”     

 

    "......"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쓰윽 집어 넣어주면 바로 걸린다. 물론 복잡하고 긴 이야기에서 간혹 순서가 헷갈리거나 이름이 헷갈리거나 장소가 헷갈릴 수 있다. 그런 걸 일일이 암기하라는 건 아니다. 나도 못 한다. 아직은 사춘기 입구에서 문을 열까 말까 하는 녀석이라 다행히도 그날 따로 나와 면담한 후 읽기에 더 열심을 내주어서 칭찬을 마구 퍼부어줬던 기억이 난다.     


책에 표시 못 하도록 하는 부모님들도 실제로 계시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 상담을 통해 수업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해 드리곤 했다. 빌려온 책이거나 읽은 후 중고서적으로 팔려는 목적이라면 포스트잇을 활용하라고 말이다.     


책을 보는 게 아니라 읽으려면 도구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읽고 난 후 반드시 독후 활동을 해야 한다. 독후 활동은 다양하다. 인상 깊은 문장 필사, 한 줄 느낌. 독후감, 독서일기, 주인공에게 편지쓰기, 서평 쓰기, 그림그리기, 시 쓰기, 비문학이라면 논술문, 설명문, 포스터 등도 있을 수 있고 주제에 따라서는 토론도 가능하다. 이 밖에도 얼마든지 원하는 방법으로 독후 활동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독후 활동을 해야 책 읽기를 마쳤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이 위에서도 말했지만 어떤 탐구를 위해서라면 읽고 ‘아 그렇구나’ 하고 덮어버리면 다음 날만 돼도 그 내용 중 30%도 기억에 안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인상 깊은 장면들을 떠올리고, ‘ 왜?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건데?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건데? ’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책에 던지며 읽고,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 의문점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답을 찾아가는 다양한 활동들 그리고 그것을 정리하는 기록까지 할 때 비로소 책 읽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책에서 이런 부분을 읽게 되었다.     


특히 생성형 AI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 ‘호모 프롬프트’에게는 차분히 사색하고 자신을 지켜볼 수 있는 ‘아날로그 역량’이 더 중요한데, 이는 멈춤과 기다림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역량이다. 지나친 속도와 전환, 강한 자극에서 벗어나 생각이 배회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여백이 필요하다.
- 트랜드 코리아 2024 중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면 생성형 AI는 뭘까? 호모 프롬프트? 호모는 들어봤는데? 프롬프트? 어디서 들어본건데. 등등 생각해 볼 어휘들이 많다. 물론 이 책에서 친절하게 다 해석을 써주고 있지만, 역량, 배회, 여백 등의 어휘도 모른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글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으며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기화해서 정리해 둘 수 있다면 이 한 권의 책은 읽은 그 힘이 그 다음 책을 읽을 때는 엄청난 속도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복리이자로 저축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연필을 들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왜? 어떻게? 질문하며 읽자. 그리고 내 생각을 적어보자. 그러면 책 읽기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도 에이~ 책은 그냥 읽으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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