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조금은 미련하게 버티다 가을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겨울이 오고 시간이 가는 것을 반팔로 막아내 보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노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계절이 또 지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하루는 같은데 나무의 색은 바뀌어 갑니다.
재킷에는 역시 손 넣기 좋은 주머니가 있습니다. 아침 버스를 기다리며 찔러 넣은 왼쪽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습니다. 처음엔 클립이거니 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느라 익숙한 클립으로 인식을 정리했지요. 하지만 이내 지루한 전철로 공간이 바뀌고 계속 만지작거려보니 머리가 있습니다. 옷핀이었습니다.
허리를 눌러 뾰족한 끝을 꺼내 봅니다. 주머니 속 어둠 속에서 손가락에 감각이 집중됩니다. 처음은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이것도 몇 번하니 능숙해지네요. 클립이었다면 재미없었을 텐데 옷핀은 점차 만질수록 재미가 있습니다.
머리에서 침을 빗겨내고 다시 머리에 넣는 작업에 스릴이 있습니다. 그래도 옷핀은 장난감이 아닌지라 결국 옷을 찔러 자기 기능을 찾으려 합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손가락도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옷핀이 감각을 벗어나서 어딘가를 찌르고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주머니 속 작은 공간에서 벗어나려는 옷핀은 안감까지 꿰차려고 합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손길을 멈추었습니다. 옷핀의 엉덩이 돼지 꼬리만을 잡고 차분히 당겨봅니다. 잠깐이었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입니다.
침을 다시 둥근 머리에 넣고 평온한 전철의 시간이 돌아옵니다. 동시에 불현듯 옷핀의 출처가 궁금해졌습니다. 클립이라면 들어있을 이유가 충분했지만 옷핀은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접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언제 이 옷의 왼쪽 주머니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요.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며 전철역을 하나씩 넘깁니다. 분명한 것은 이 옷을 입었을 정도로 선선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겨울은 아닙니다. 이 옷은 겨울에 입기엔 부족한 옷입니다.
언제 무슨 일로 옷핀과 인연이 있었을까? 이 생각이 머릿속을 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