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Apr 29. 2023

나는 관종

예전에 써두었던 이야기

 

 길을 가다 넘어지면 엄마를 부르면서 울어요. 어떤가요. 나 아픈 거 딱 한 명만 알아줘도 기분이 나아지곤 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얘기할 상대는 늘었는데요. 어떤가요. 그만큼 덜 외로운가요. 상처를 보여주고 싶은 건 아픈 인간의 본능이다. 어쩜 말이죠. 나의 본능을 무시한 게 혹은 누군가는 그것을 허세라 하는 게 점점 더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KBS 라디오 볼륨을 높여요 오프닝 중에서-


오래 전 모 배우의 SNS에 응급실 사진이 게재되었다. 사진 속 배우는 환자복을 입은 채 링거를 꽂고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이를 본 배우 팬들과 지인들은 무슨 일인지 우려하는 글을 남기며 응원했다. 이 게시물은 바로 기사화가 되었고 기사 밑 댓글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본 댓글들과 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응급실 들어가면서 입구 사진 찍는 사람은 처음 본다.’ ‘응급실에 가는데 사진 찍을 정신이 있나 보네.’ ‘아픈데 사진 찍을 시간이 어딨냐’ 대개 이런 반응이었다. 논란이 일자 게시물은 바로 지워졌다. 나는 그때 라디오에서 듣던 오프닝을 떠올렸다. 곰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프면 사진 찍으면 안 되나요?


 2017년 유방암 선고를 받은 나는 진단받은 그 순간부터 치료가 진행 중인 지금까지 SNS에 투병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진단받은 날 감정이 어땠는지, 수술하던 날 어떤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었는지, 내가 앞으로 받게 될 치료는 무엇인지, 항암제는 어떻게 맞고 있는지 시시콜콜 모든 과정을 셀프 카메라로 찍는 것처럼 글로 상세히 기록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암이었다. 암 선고는 병기와 상관없이 시한부 선고와 같은 심정을 겪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서른일곱이란 젊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으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당장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늘 타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겪은 암 경험은 글과 영화로만 접하던 거와는 완전히 달랐다. 고통이라는 건, 그것을 겪고 있는 타인을 바라보는 것과 내가 직접 겪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을 보고 ‘안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말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안다는 것은 그것을 겪어야만 알아지는 감정이었다. 그런 내게 SNS는 비상구로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암흑 같은 터널을 빠져나가는 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시간·낭비·서비스’라고 하는 SNS가, 퍼거슨이 말한 ‘인생의 낭비’인 SNS가 내게는 암 경험을 기록하면서부터 놀라운 선물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대개 실제 친구, 지인보다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 창구로 더 많이 열려있다. 전화번호만 저장되어 있으면 자동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요즘엔 동기화를 거부할 만큼 실제 친구가 SNS친구가 되는 것에 꺼리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결 창구가 생기면서 나를 모르는 자유로운 세상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SNS는 참 괜찮은 소통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온전히 나를 벗고 내 생각과 내 마음, 즉 나도 모르고 살던 내 진짜를 알 수 있는 나만 아는 장소처럼 느껴진 곳이 SNS였다. 물론 반대로 나를 치장하고 포장하고 과장하기도 하는 게 SNS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알고 찾아오는 사람은 친구로 거절할 순 없었지만, 다행히도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들이 날 팔로우(follow)를 했다. 그러면서 나는 더 나를 발가벗을 수 있었고, 오히려 사람들과의 소통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어쩌면 나를 알면서도 모른 척 숨어서 보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오프라인의 나와 온라인의 내 모습이 다를 수도 있다. 아니 다를 것이다. 기본 카메라 사진과 자동 뽀샵이 되는 필터 카메라가 다르듯이 내면과 외면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을 흔히 SNS의 온도차라고 한다. 그렇지만 밖에서의 모습보다 SNS의 모습이 더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두 모습을 다 지켜본 사람으로서는 온도차가 클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그것도 나고 이것도 나일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SNS라는 별에서 나는 천사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나의 투병기록을 관심 있게 읽으며 친구 신청을 한 극동방송국 아나운서 언니다. 그분은 내가 암을 진단받은 순간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다. 어떤 해시태그를 쓰느냐에 따라 관심도와 친구가 달라지는데 그분은 #극동방송 이라는 해시태그가 나와 연결해주었다. 기독교 방송의 위로를 받고 있던 나는 가끔 지역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기도 하고 치료 과정이 힘들 때면 기도 요청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때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걸 보고 찾아와준, 지역도 다른 광주 극동방송국 아나운서 언니였다. 사적으로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힘들 때 얼마든지 기대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그때만 해도 그것은 구원의 메시지와도 같았다. 그러면서 항암으로 고통받는 날 위해 자신의 프로에 치유 음악으로 한 시간을 꾸몄다면서 꼭 방송을 들어달라는 말도 했다. 투병 1년을 지켜봐 준 그분과 인스타 친구로 지내면서 실제 친구가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내 투병 기록을 보면서 많은 암 환우들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항암을 받을 때마다 기록하는 과정을 보며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내게도 들려주기 시작했고, 어떤 환우는 치료받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는데 씩씩하게 이겨내는 모습에 감동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어떤 분은 자신의 남자친구가 아픈 분인데 내 인스타그램 기록들을 보여주어 희망을 주고 싶다는 쪽지를 보내왔다. 나는 분명 외로워서, 힘들어서 SNS에 상세히 내 감정을 기록한 것뿐인데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마음들을 내보였을 뿐인데, 그들은 남들이 말하는 ‘관종’(관심 종자) 취급을 하기는커녕 진짜 내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아니! 내 글을 보고 힘을 받는다니! 나는 정말이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내 존재가 괜찮은 존재로 여겨졌다. 나도 모르는 내가 강하게 자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외에도 현직 간호사, 의사, 의료진분들이 내게 따로 쪽지를 보내왔고 좋은 구절을 들어 힘을 내라며 용기를 주었다. 부디 잘 이겨내고 견뎌달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돌아가면서 짜기라도 한듯 자주 보내주었다. 내가 나를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이런 관심과 응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투병하며 외로웠던 순간은 가족과 실제 지인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내 마음 때문이었다. 힘들어도 나 힘들다 소리를 할 수 없었고, 위로받고 싶어도 달라 소리를 하지 못했다. 내가 아프다, 힘들다고 말하면 징징대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귀찮지는 않을까를 먼저 고민했다. 그런데 SNS를 통해 나를 완전히 벗고 드러내는 순간, 내 고통이 어떤 건지 공감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위로는 말로 하는 거라는 누군가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마음으로 담고 있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해주지 않으면 상대는 영영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응급실에 실려 간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건, ‘나 지금 아파요,’라고 위로를 청하는 건데 아픈 사람이 어떻게 응급실 사진을 찍을 시간이 있느냐고 따져 묻는 건, 라디오 오프닝 멘트처럼 그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SNS를 자주 올리면 관종(관심 종자), 아픈 것을 올리면 허세, 타인의 게시글을 일일이 검열하며 잣대로 판단할 때, 누군가는 더욱 아파질 것이고 외로울 것이다. 길을 가다 넘어진 아이를 보면 손을 먼저 잡아주고 달래주는 게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설혹, 넘어진 것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 냄새나는 서비스인 이 SNS가 좋다. 누군가는 나를 관종 암환자라고 할지라도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고 그 사랑을 되돌려 주고 있다. 어쩌면 지금 누군가는 SNS를 통해 SOS를 청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전 17화 당신이 생각하는 부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