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걸음
고백하건대 이 책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모두 2024년인 지금으로부터 길게는 8년 전, 짧게는 4년 전에 렌즈에 담겼던 오래된 과거다.
뉴욕에서 만났던 첫 반려견을 향해 셔터를 눌렀던 최초의 순간부터 이후 한국에 돌아와 여전히 반려동물 예술가로 활동 중인 지금까지. 안타깝지만 긴 시간 대부분의 사진들은 컴퓨터 폴더 안에서 내내 잠들어있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브런치나 각종 매거진 등을 통해 많은 사진들이 이미 대중에게 소개되기도 했었지만, 나의 오랜 바람은 4년간 찍은 사진들을 온전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를 위한 노력과 시도들은 오랫동안 좀처럼 열매를 맺지 못해 왔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사진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정확히는 귀국 후 사진기 대신 붓을 들고 회화작가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하게 다른 장르로 반려동물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반려동물 웹툰에세이였다. 사진에세이를 내고 싶어 그렇게 각고의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웬걸, 갑자기 웹툰에세이집을 내게 되다니. 세상사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단 걸 나는 출판사의 출간제안 메일을 읽으며 느꼈고 이를 통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어차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걸 하며 살아야겠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보아도 어려울 것 같지만, 혹은 절대적으로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지만 꾸역꾸역 자꾸만 마음이 그 모든 것들을 뚫고 나와 내게 속삭이는 그걸 하며 살아야 한다. 어차피 흔들릴 배라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배 위에서 흔들리고 싶었다. 그럼 파도에 치이는 와중에도 조금은 덜 억울할 테니까.
그래서 다시 한번 폴더를 열어 사진을 꺼내게 되었다. 내게 있어서 나의 마음이 긴 시간 속삭인 그것은, 지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진 에세이집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렇게 이 사진들을 포기할 수 없는 걸까?’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거든.’
전하고 싶은 가치.
그건 바로 우리가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은 표면적으로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모습을 담은 ‘뉴욕 반려동물 사진’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나 사실 그 너머에는 뉴욕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오롯이 담겨있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나가 이를 담고자 했던 이유는 그들이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인류에게 있어서 나와 너, 나아가 우리 전체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험한 세상이다.
예술가로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활동목적은 인류를 한층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거창하게 들릴 줄은 알지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무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면 예술이 이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불운하게도 응당 알아야 할 것들을 제때 알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들에게, 혹은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세상을 더 따스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잘못 다뤄진 필름 위에서 점차 빛바래져 가는 사진들처럼 지금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진정한 가치들 또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그 빛을 잃어가고 있지만, 사진 속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만큼은 바래져 가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둘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 심각한 질문들이란 어린아이까지도 제기할 수 있는 것들뿐이다.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가장 유치하지만 진정 심각한 질문인 이것을 내려놓으며 책을 마치고 싶다.
뉴욕에서부터 한국까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내내 나와 함께였던 이 질문을 이제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질문이 여러분에게 닿는 동안 나는 어디론가 또 떠나 있을 테지만 내내 여러분의 대답을 궁금해할 것이다.
원하던 답이 들려오길 바라며, 돌아와서는 꿈꾸던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길 바라며.
지금, 반려동물과 산책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