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걸음
한국으로 돌아온 후 예상치도 못하게 잠깐동안의 공황장애라는 괴물을 만나고 나서 이후 나의 삶에는 변화가 많았다.
첫째, 운영하던 카페를 접었고
둘째, 유기견을 입양했으며
셋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넷째, 더 이상 식당이나 카페를 다니지 못했다.
모든 것은 순차적으로 차례차례 일어나지 않고 뒤죽박죽 뒤엉켜 한꺼번에 물밀듯이 밀려왔다. 공황장애란건 그런 거였다. 일단 겪기 시작하면 이전의 삶으로는 도통 돌아갈 수 없는, 새하얀 도화지 위에 떨어진 검은 먹물 같은 거였다. 어떤 방법을 써도 먹물을 지워낼 방법은 없었다. 나의 삶은 이대로 잠식하는가.
때마침 터진 코로나로 카페 문을 닫고 나니 그나마 매일 시달리던 일들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 -예를 들면 직원분들의 퇴직금 문제라던가 각종 세금들- 은 여전히 나를 옥죄여왔지만 그래도 매일 카페를 운영하면서 마주쳤던 사건사고들의 고리는 끊어졌기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내내 숨참고 다이브 중이었던 날들의 연속이었기에 오전 9시에 켜지지 않은 카페의 천장 등을 보며 처음으로 잔잔한 오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치 귀신인 것 마냥 허공에 붕 뜬 채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며 살던 두 발이 마침내 땅 위에 착 하니 내려앉아 어느 때보다 안정된 기분이었다. 다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랄까.
그리고 마침내 안착한 땅 위의 두 발 옆에는 작은 갈색 강아지가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얼마 전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해 온 갈색 푸들, 나의 강아지, 내 두 발을 땅 위에 유지시켜 주는 존재.
"포레야, 빵 구워 먹을까?"
장사를 하다 갑자기 접은 탓에 냉장고와 냉동고에 제빵 재료들이 여전히 넘쳐나고 있었다. 며칠간은 이것들로만 끼니를 해결해도 될 것 같았다. 오븐에 빵을 잔뜩 꾸워내 들고는 카페테라스로 가 앉았다. 햇빛이 다소 강하게 내리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시간에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괜찮았다. 아마 햇빛이 아니라 폭우가 쏟아졌다고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입에 구멍이 뻥 난 강아지가 나를 올려다본다.
입이 철사에 꽁꽁 묶인 채 버려져 시장바닥을 떠돌다 구조된 포레.
치료는 받았지만 괴사 된 살을 잘라내고 나니 입에는 휑한 구멍이 남게 되었다. 수의사는 포레의 입이 보기 흉하면 엉덩이 살을 조금 잘라내어 입에 이식할 수 있다고도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겨울에 이빨이 다소 시릴 수 있기야 하겠지만, 미용목적으로 수술하는 게 포레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기에 흉하단 이유로 해야 하는 수술이라면 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물을 마실 때 양 옆으로 물이 좀 새어 나오는 것 말고는 그다지 불편할 건 없었다. 수술을 해야 한다면 포레가 아니라 포레를 이렇게 만든 '그놈'의 뇌를 수술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바닥이었는지, 엉덩이를 만지거나 하면 사람을 물기까지 하며 예민하게 구는 탓에 유기견 센터에서도 혼자 격리되어 있던 이 작은 푸들은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랑둥이가 되었다. 나도 더 이상 공황증세를 겪지 않았고 이젠 카페나 식당도 잘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포레와 나의 관계는 단순히 반려견과 보호자를 넘어서 돈독한 신뢰로 만들어진 단단한 다이아몬드와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와 포레 같은 관계를 조금 전문적인 용어로는 'Emotional support pets' 즉, '심리 지원 반려동물' 혹은 '정서 지원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학대당한 반려동물보다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반려동물을 지원동물로 발탁하긴 하지만, 내게는 포레도 정서 지원 반려동물이나 다름없다. (다만 포레는 자격증이 없을 뿐...)
정서 지원 반려동물은 미국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있어온 개념으로, 이들은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재난이 발생한 현장에서 피해난민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활동하며, 병실에서 입원생활을 하는 환자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심리적으로 지원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수감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감옥에 방문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수감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줄여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듣기만 하면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범죄자들이 귀여운 강아지를 괴롭히면 어쩌지..?) 정서 지원 반려동물들은 항시 핸들러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거라곤 사실 사람들에게 쓰다듬을 당한? 다거나 안김을 당하? 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만 하는 것뿐,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게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다니, 반려동물들의 능력은 정말 놀랍다.
내가 살던 미국 학교의 기숙사에도 심리 지원 목적으로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었다. 원래 반려동물은 출입 금지인 기숙사에서 갑자기 방에서 튀어나온 고양이를 보고 놀라고 또 정서 지원묘라는 이름에 두 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심리 지원 반려동물이란 개념도 국내에서는 생소했을 때인데 이제는 나도 도움을 받는 이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포레는 정서 지원 반려동물에 지원해 본 적도, 자격증도 없다! 다만 나만의 충실한 정서 지원견임은 분명하다. :)
포레가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그저 내 옆에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고단한 삶에 희미한 애착을 느낀다. 그러나 모두에게 삶이란 게 으레 그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왜 살아야 하나 싶은 때가 오지 않나.
그러면 그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포레를 떠올린다.
'내가 없으면 포레는 어떻게 해?'
그러면 금세 나는 곧 툴툴 털어버리고 다시 으이쌰- 하며 일어나게 된다. 밤새 울어 퉁퉁 부운 눈을 하고서라도 다시 일어나 포레의 밥을 챙겨주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고, 또 다른 밤을 맞이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온다.
여전히 쉽지 않은, 고난한 삶이지만 다이아몬드만큼 단단하고 빛나는 관계가 내 삶을 지독하게 지탱해 준다.
참 값진 인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