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걸음
폭설이 내리는 요즘 같은 날에도 어김없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서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실외에서만 배변을 보는 강아지를 키우는 반려인들이다. 보통 대형견들의 경우 실외배변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형견들 중에서도 그런 강아지들이 있다. 바로 우리 집 강아지 '포레'가 그렇다.
눈이 펄펄 내리는 중에도 어젯밤부터 배변을 참았을 포레를 생각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선다. 포레는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올 초에 잠시 임시보호를 했던 하얀 곰 같던 '흰돌이'는 눈 밭을 뒹굴 정도로 눈 오는 날을 좋아했었다. 입양을 간 곳에서 오늘도 한바탕 눈 밭을 뒹굴며 산책하고 있겠지.
눈이 펄펄 내리는데 누가 산책을 나오겠냐 싶겠지만, 이런 와중에도 산책을 나온 반려인들은 분명히 있다. 모두 나처럼 주섬주섬 꾸역꾸역 옷을 껴입고 억지로 끌려 나온 듯 흩날리는 눈에 게슴츠레 한 눈을 한 채 엉금엉금 공원을 거닐고 있다.
원래 같으면 함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사해도 돼요?]라고 물으며 반려견들끼리 인사를 시키곤 하겠지만 오늘은 어려울 것 같다. 강아지들을 배변활동이 끝나자마자 모두 몸을 부르르 떨며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강아지들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반려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인사해도 돼요?]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 포레와 산책을 하면서 이 질문을 자주 듣는다. 반려견과 산책하며 만나는 다른 반려견에게 인사해도 되는지 선질문 후 인사를 시키는 반려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바뀐 반려견 에티켓 중의 하나인데, 반려인들 사이에서 뿐 만 아니라 비 반려인과 반려인들의 사이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갑자기 다가와 인사하면 실례라는 문화에 자연스럽게 모두가 스며들고 있다.
우리는 왜 [인사해도 돼요?]라는 펫티켓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뉴욕에서는 [인사해도 돼요?]라는 말은 도통 들어보지 못했다. 길을 가다 반려견을 마주치면 그냥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대화가 익숙한 곳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곳에서는 반려견끼리의 만남도 조금 더 자유분방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험이 모두의 경험과 같진 않을 것이다.)
먼저 묻는 질문의 가장 큰 이유에는 '상대 반려견이 짖거나 싫어할 수 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상대방 보호자에게 허락 없이 반려견들을 인사시키려 했다가 사고가 났다거나 혹은 날 뻔했다거나, 혹은 상대 보호자에게 볼멘소리를 들었던 경험들이 모여 [인사해도 돼요?] 문화가 생겨났을 거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예의 바른 문화이고 또 안전을 위해서도 좋은 문화이긴 하겠지만, 상대방 개가 싫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고려해야만 하는 현실이 되어버린 데에 대해서는 어쩐지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길을 걸으며 반려견들끼리 짖는 모습을 보거나 혹은 지나가는 반려견을 보고 짖는 개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가? 조금 놀랍겠지만 (나는 많이 놀랐다.) 뉴욕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장면이다. 맨해튼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만났던 무수히 많은 개들 중 짖는 모습을 본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 같다. 만약 짖는 개를 만났더라면 '행동에 문제가 있는 강아지구나, 훈련이 필요하겠군-'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만큼 짖는 개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들과 우리의 훈련법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그곳의 반려견들이 태생적으로 얌전한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을 '뛰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에서 찾는다.
주택보다 아파트가 훨씬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한국 도심에서 반려견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 번씩 실컷 뛰어놀 수 있게 해 주려면 돈을 지불하고 대형 애견카페에 가거나 혹은 차를 타고 이동해 반려견 운동장 같은 곳을 부러 찾아다녀야 한다. (물론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다. '우린 집 앞에 무료 강아지 공원이 있는데요?'라고 한다면 아주 드문 케이스이니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 그런 지역은 아직 많지 않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안타깝게도 집 근처에 무료 반려견 운동장이 부재한 대다수의 반려인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 나의 반려견을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예전에 한 반려견 프로그램에서 좁은 집안에서 말썽꾸러기 보더콜리를 키우는 반려인이 행동교정을 요청해 훈련사가 솔루션을 제공한 일이 있었다. 원래 보더콜리는 하루 2시간 이상 빠른 걸음으로 산책해줘야 할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견종이기 때문에 좁은 아파트에서 키우기엔 적절하지 않다. 예상했겠지만, 보더콜리의 문제행동은 개에게 있지 않았다. 아이들의 문제행동 원인 대부분은 부모에 있다고 오은영 선생님도 말하셨듯, 반려동물도 마찬가지이다. 보더콜리가 문제행동을 보였던 이유는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시켜주지 못하는 환경을 가진 보호자에게 있었다.
훈련사는 1일 1 산책을 필수적으로 하되 적어도 30분씩 함께 달려주는 시간을 꼭 가지라는 솔루션을 내주었다. 매일 애견카페나 반려견 운동장에 다닐 순 없으니 그 정도라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반쪽짜리 솔루션이었지만, 현재 우리나라 반려동물 도시 인프라를 고려하자면 그것이 가장 최선의 솔루션이었을 것이다.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고 사는 보더콜리의 삶을 보며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반면 뉴욕은 도그파크가 있어 개들이 자유롭게 집 앞에서 뛰어놀고 원하는 만큼 달릴 수 있다. 애견카페나 운동장처럼 사용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집 근처에 크고 작은 도그파크가 여러 군데 있다 보니 반려인들은 산책을 하다 자연스럽게 그곳에 들어가 줄을 풀고 반려견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한다. 하루종일 집에서 받았을지도 모르는 스트레스를 개들은 뛰어놀면서 다 풀어버린다. 뉴욕 길거리에는 그렇게 많은 반려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짖는 소리를 듣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뉴욕의 반려견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스트레스가 덜 한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느껴진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나라 반려견들이 뭐 어때서!'라든가, '나도 참고 사는데 반려견들에게 뛸 권리가 왜 필요하냐'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설마 하니 브런치엔 없길 바란다. 유튜브에 종종 있더라..!)
처음 뉴욕에서 도그파크라는 개념을 보고 문화충격 아닌 문화충격을 받은 뒤 한국의 펫매거진에 이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썼던 게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새삼 긴 시간이 지났음에 놀랍고 또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도그파크문화에 대해 글을 쓰며 또 한 번 아쉬움을 느낀다.
최근 가장 심각하고 또 오래된 악습이었던 개식용에 대한 금지법이 드디어 제정이 되었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이 반대를 외쳐왔지만 이제야 법이 마련된 것이다. 도그파크 문화도 나 한 사람의 개인이 긴 시간 그 필요성을 이야기해 보았자 당장 변화를 일으킬 순 없겠지만, 글을 통해 누군가 나와 함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훗날엔 더 이상 한 개인의 주장이 아닌 모두의 소망이 될 것임을 믿기에 오늘 또 한 번 도그파크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포레가 여전히 뛰어놀 수 있을 만큼 건강할 때 집 앞에 도그파크가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반려견을 키우는 누군가의 집 앞도 그렇게 될 수 있길. 거리에서 짖는 개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평온한 반려문화 풍경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