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사파시장, 사파 호수, 사파성당
아, 계속 비가 내린다는 날씨예보를 보고도
사파에 온 이유는 우리 베트남 여행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습도가 높을 줄은 몰랐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사파로 간다. 이번 버스는 그동안 탔던 버스와는 좀 다르다. 2명이 누워서 탄다. 1,2층으로 되어 있고 2 열이다. 통로가 얼마나 좁을지는 상상이 될 것이다. 거의 모든 칸이 커플들로 채워져 있다. 좀 좁기도 하다. 앉아가는 버스가 좀 편한 것 같다. 천장이 낮고 등받이가 없어 많이 불편했다. 눕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뭐 괜찮겠지만.
버스에 화장실이 없어서 사파로 가는 동안 두 번 휴게소에 들렀다. 이건 좋았다. 대한민국에서도 고속도로를 탈 때 휴게소는 휴식의 장소이자 좁은 차에서 나올 수 있는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더구나 딱 두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을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모든 시외버스는 신발을 벗고 비닐 속에 든 본인 신발을 들고 타는 버스인데, 휴게소에 내릴 때는 본인 신발을 갖고 내릴 필요가 없다. 별도로 휴게소용 슬리퍼를 제공해 준다. 이 점은 정말 신기하고 재밌다.
아침도 못 먹어서 샌드위치와 찐계란, 떡, 옥수수, 카스텔라 등을 사 먹었다. 거의 100,000동 정도나 들었다. 사실은 베트남의 샌드위치 맛은 어떤지, 베트남의 떡은 우리나라 떡과 무엇이 다른지, 카스텔라는 얼마나 보드라운지 뭐든 궁금해서 이것저것 골라봤다. 샌드위치는 반미를 납작하게 눌러서 팔았다. 기름에 달달 구운 떡은 달콤하고 안에 팥 같은 소가 들어있다. 군 옥수수는 우리나라 옥수수와 똑같고, 카스텔라는 어렸을 적 먹던 그 옛날 카스텔라 맛이었다. 호기심은 만족시켰으니, 다음부터는 그냥 쌀국수나 사 먹을까 싶다. 화장실은 유료로 3,000동이다. 즉석음식도 팔고, 식당도 있고, 스낵이나 음료수도 팔고, 아이스크림도 팔고.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라오까이를 지나서부터는 산으로 계속 올라간다. 꼬불거리는 산길을 얼마나 오르는지 약간 몸이 힘들 무렵 드디어 사파에 도착했다.
사파의 넓은 운동장 같은 곳에 멈추니 호객하려는 현지분들이 다가온다. 오토바이 타겠냐고, 택시 타겠냐고, 소수민족 분들 다가와 트래킹 하겠냐고. 너무 많이 다가오니 대응을 하기가 힘들었고, 날이 덥지 않아 숙소까지 걷기로 했다.
사파는 생각보다 작지 않았고, 생각보다 전원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대로 서늘했다. 사진에서 보던 그 산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어디일지 궁금했다. 조금 전 막 비가 지나갔는지 길에 물기가 가득했다. 버스정류장부터 약 30-40분간을 걸었지만 전혀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선선한 날씨다. 숙소까지 걸어가며 사파 호수를 구경하고 이어 상점과 식당 건물과 사람들로 벅적이는 대로를 지나면 선플라자 건물과 광장과 사파성당이 나온다. 여기까지 웬만한 소도시 같았다. 사파 안내표지판을 읽어보면 사파는 하루에 사계절의 날씨가 다 들어있다고 한다. 아마도 비가 그친 그때는 가을인 것 같았다.
사파는 조용하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식당에서는 호객행위가 유쾌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이곳 원주민들, 소수민족들의 호객행위겠다.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과 전통복장을 한 여자들과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작은 공예품을 들고 하나 사달라고 하는 모습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유치원생 정도 아니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는 여자아이가 갓난아기를 업고 팔기도 했다.
사실, 이곳 사파에는 이들이 먼저 살았다. 이어 이 마을이 좋아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지금과 같은 큰 건물과 쇼핑센터와 식당들이 들어섰는데, 이들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어 한창 재밌게 뛰어놀거나 학교에 다녀야 할 아이들에게 물건 파는 일을 시키는 이곳 소수민족들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사파 중심가로 다시 나왔다. 선플라자와 사파성당이 가장 눈에 띄었다. 선플라자는 쇼핑센터 겸 판시판이라는 가장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출발하는 곳이다. 교회건물로 가보기로 했다.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건물의 정면은 아담하고, 내부도 작았지만 사파에선 제법 중심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후면으로는 넓은 교회 광장이 있고 부속건물들도 많았다.
사파시장은 꽤 컸다. 큰 건물 안에는 옷이나 말린 재료들을 주로 팔고 한쪽 구역에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야채나 과일 생선과 고기 등은 시장 밖에서 판매했다. 시장 건물 내부는 오히려 한산한 듯해서 우리가 걸을 때마다 상인들이 다 우리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나오는 것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저녁은 유명하다는 꼬치구이다. 돼지고기류와 대나무 덮밥, 버섯구이 그리고 야채말이 고기구이와 맥주를 먹어 보았다. 190,000동. 대나무밥이 의외로 맛있다. 속은 찰기가 있고 겉은 바삭하게 구워졌다. 소스와 야채, 땅콩가루를 곁들여 먹는다. 야채말이 고기구이도 괜찮았다. 다른 꼬치들은 그냥 숯불구이 맛이다.
후식으로 밤을 넣어 만든 쌀 만쥬 비슷한 것도 사 먹어 보았다. 든든하고 맛있다. 개당 10,000동.
그렇게 중심가를 돌아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귀엽고 유쾌하고 영어 잘하는 TU가 우리에게 사파 여행을 안내해 주겠단다. 사파에서 구경할 거리, 좋은 식당, 박하 가는 방법 등에 대해 물어보다가 결국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 하노이대학 다니는 학생이라는 것까지 알아버렸다. 이제까지 베트남 사람들 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로 학교를 못 가게 되면서 사파에 머무르며 부모님 일을 돕고 여행객들에게 안내하는 일이 즐겁단다. 이제 곧 학교에 갈 거라고. 친절하고 열정적인 예쁜 젊은이였다. 사파는 현재 우기 중이며 판시판은 우기 중에 올라가 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돈 낭비라는 것을 알려주고 소수민족들에게는 동정으로 돈을 주지 말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으며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단다. 그래서 그렇게 작은 아이들이 공예품을 팔고 있었나 싶다.
오늘 숙소는 중심가와 아주 약간 떨어져 있어서 전망이 좋은 편이지만 계단이 너무 많아 오랜만에 다리 근육운동을 하게 되었다. 숙소 환경은 깔끔한 편이나 다소 좁다. TU의 상냥한 안내 덕분에 구글맵의 점수는 높지만 우리 같은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약간 낮은 곳에 숙소를 잡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아가씨의 크고 동그란 진심이 담긴 눈을 마주하면 다시 이 숙소에 머물게 될 것 같다.
사파는 덥기는커녕 저녁 무렵에는 쌀쌀해서 배낭 깊숙이 넣어 두었던 점퍼를 꺼내 입었다. 당연히 에어컨도 없다. 아, 계속 비가 내린다는 날씨예보를 확인하고도 사파에 온 이유는 우리 베트남 여행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번 여행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지역이 사파였고, 사파에서 적어도 일주일은 있고 싶었다.
하. 지. 만.
이 정도로 습도가 높을 줄은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눅눅해서, 춥더라도 에어컨이 있으면 좋을 정도였다. 숙소는 열악해서 바깥의 습기를 다 몰고 들어와 모든 옷들이 눅눅해져 갔다. 사파는 지독한 우기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일단 내일의 목적지는 깟깟 마을이다.
2022년 6월 9일, 싸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