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아줌마의 스노 보드 체험기
천왕봉 정상에 올라갔다 온 느낌이다. 안 쓰던 근육을 이틀 동안 사용한 지라 일어나고 앉을 때마다 어이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설날 연휴, 제사대신 리조트를 선택한 시댁 가족들과 스키장을 찾았다. 오래간만에 찾은 스키장. 이번에는 막내가 체험해보고 싶다는 보드를 타기로 했다. 스키를 중급 코스에서 탄 경험은 있지만 보드는 처음이라 선뜻 내키지 않았다. 보드를 타다가 다친 사람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은 터라 겁이 났다. 나만 빼고 식구들은 보드를 탄다고 하기에 그동안 보드를 대여해 주는 사장님한테 갱년기 아줌마가 보드를 타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더니 대개 별다방 커피숍에 앉아 있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쉬움이 남아서 계속 물어보았더니 나보고 선택하라고 한다. 고민 끝에 나도 보드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번에 배우지 않으면 내 생에 보드 경험은 없으리라 확신하면서 말이다.
보드 강사는 20대 초반 청년이었다. 아이 둘과 나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일단 멈추는 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보드를 신고 일어나서 서 있기 조차 어려웠다. 왼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했다. 속도가 붙으면 잽싸게 보드를 평행하게 만들면서 속도를 줄였다. 보드를 타면서 내가 경험한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멈추는 법을 알아야 한다. 보드는 눈 위를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멈추는 법을 제대로 알면 위험을 모면할 수 있다. 인생에서 내 속도보다 빨리 나아갈 경우 제어할 줄만 알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속도보다는 나아가는 방향이 중요하고 몸의 무게중심을 잡듯, 삶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보드는 미세한 각도 차이라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에 따라 다른 목적지에 와 있다. 살면서 작은 차이가 나중에 다른 결과를 만든다. 셋째, 뒤를 바라보고 끝에 도달했을 때까지 전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보드를 탈 때 s자로 돌기 위해서 뒤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뒤에 있는 사람과 충돌하지 않도록 자주 나아가는 방향이지만 뒤돌아봐야 하고, 거의 내려왔을 때 방심해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종착 지점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넘어질 때는 온몸에 충격이 전해져 와서 정신이 멍했다. 뼈가 붙지 않을 나이에는 보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밤 자고 나니 근육이 더 뻐근했다. 이틀째 친정 집에 빨리 가고 싶었지만 보드를 더 연습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 때문에 나도 하루를 더 연습했다. 별다방 카페와 보드 타기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매봉산 정상에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는데 테라로사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었다. 이곳은 최정상급 스키어들의 긴 루트가 시작되는 곳이다. 90도 각의 산비탈을 스키나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그들이 부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스키는 타기까지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번잡한 운동이지만 스키나 보드를 타고 산비탈을 내려가는 기분은 어디에 비할 바 없다. 그래도 나는 수영과 테니스가 더 재미있는 것 같다. 호랑이 아줌마가 큰 맘먹고 보드를 탔는데 근육통 외에는 아픈 데 없이 즐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요즘에는 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