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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태리 Apr 15. 2024

같이 철인 5종 하실래요?

20240415_답답한 달리기

4.03킬로미터 달리기 32분


역시 주광성이다. 춘분이 지나자 아침에 눈이 자연스레 떠진다. 아직 태양 빛이 미치지 않은 이른 새벽은 어두웠지만 중간에 눈을 뜰 때마다 그 채도가 연해지고 있었다. 마치 한글 프로그램에서 표를 작성하면서 음영을 낮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최종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을 때 주변을 구분할 수 있으리만큼 훤해져 있었다. 포비를 데리고 밖에 나갔더니 푸르른 봄날, 연한 풀잎에서 카키색까지 채도를 달리 한 나뭇잎들이 줄을 이루고, 꽃 봉오리 상태의 진한 분홍색의 철쭉이 꽃망울을 피우며 연한 분홍색으로 채도를 낮추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올수록, 꽃이 개화할수록 색의 강렬함은 바래진다.


포비는 나에게 아침을 선물로 주었다. 일어나자마자 포비를 데리고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면, 평소 내가 다니지 않는 길로 나를 인도한다. 그곳에는 이름 모를 풀꽃, 벚꽃을 대신한 철쭉이 봉오리를 터트리고 있다. 매일 벚꽃, 철쭉, 튤립 등 아파트 화단에 심어져 있는 꽃들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포비는 킁킁대면서 냄새를 찾는 모습이 진심인데,  거의 냄새를 먹는 것처럼 냄새를 훑으면서 포만감을 느끼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런 포비를 집에 데려다 놓고 호수 한 바퀴를 진심으로 천천히 돌았다.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아이는 등교할 때 버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굣길에는 데리러 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차를 집에 놔두고 가서 칼퇴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하루 종일 서둘러댔다. 집에 와서 막상 데리러 가려했더니 자동차 열쇠를 찾기 어려웠고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려야 했다. 모처럼 일찍 일어나 신경을 쓴 탓인지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속이 답답했다. 결국 버스를 타고 하교한 딸과 저녁을 먹고 뉴스를 같이 보다가 여전히 무기력에 빠져있는 내 등치보다 큰 딸을 꼭 안아주었다. 안기보다는 기대어서 답답한 내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무기력함을 보는 것조차 속이 답답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을 바다에서 잃어버린 부모마음은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10년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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