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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Jun 09. 2024

괜찮아 병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잠이 안 오던 날들이 있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반수면상태로 지속되었다.


어느 날 소주 반 병을 마셨는데

기분이 살짝 좋아지면서 잠이 잘 왔다.


그래서 한동안 매일 소주를 마셨다.

아이들에게 보이기 싫어

머그잔에 소주 반 병을 따라 조금씩 마셨다.

양도 조금씩 늘려갔다.


두 달쯤 지났을까?

술에 의존하다 결국 모든 걸로부터 도망치면 어쩌나?


어느 날 결심을 하고 단번에 끊었다.



그다음은 잠에 취했다.

틈만 나면 잠을 잤다.


잠을 자는 동안은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었다.

가끔 행복한 꿈을 꾸는 날에는

눈을 뜨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밤이 깊을수록 감정이 풍부해져서

일부러 일찍 잠을 자기 시작했다.


덕분에 새벽에 눈을 뜬다.


온 에너지가 새벽에 충만해있어

일찍부터 씩씩하고 바쁘게 움직인다.






어느 날부터 나는 괜찮아 병이 생겼다.


일이 많아도 괜찮다.


본인 힘든 것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어도

본인이 힘들면 다른 사람은 안보이겠지.

그럴 수 있지 괜찮다.


나이 들어 입사해서

불편하고 소외되는 상황을 겪을 때도

이미 각오한 일이니 괜찮다.


아들이 반항하고 못된 말을 할 때도

이러다 말겠지.. 괜찮다.


고3 딸이 공부를 안 하고 뒹굴거려도

알아서 하겠지 괜찮다.


야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했는데

집안일이 산더미로 남아있어

곱절로 피곤해져도

내일 하자.. 괜찮다.


모임에서 나를 측은하게 쳐다보는

누군가의 눈빛에..

그래.. 동정이든 연민이든

그 마음만 생각하자. 괜찮다.


다 괜찮다...

그래야 산다.



그렇게 괜찮다며

하루를 보낸 날,

자기 전에 가면을 벗는다.


휴. 오늘도 무사히 보냈구나.



가면을 벗고 나면

사실 괜찮지 않다.


나도 아프고 힘들다.

걱정되고 두렵다.

지독하게 외롭다.


누가 대신 짊어질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오로지 나 혼자 견뎌야 하는 것들이다.


괜찮아 병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다.


괜찮다 괜찮다 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괜찮아지지 않을까?



오늘 내가 성실히 보낸 하루 덕분에

짊어진 무거운 짐의 1/10000이 가벼워졌으리라

위로를 하며 또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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