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조합원인데요, 총회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10. 첫 총회 참석후기

by 이예석

Part 3. 위기의 아파트 [3~4년 차, 투자 중후반]


떨리는 마음으로 정기 총회에 참석했다. 평일 저녁,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낯선 동네에 발을 디디자 괜히 마음이 더 움츠려 들었다. 조합에서는 귀신 아파트 인근 교회 건물을 통째로 빌린 듯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교회 입구 주변에 양복 차림의 덩치 큰 사내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함과 동시에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에 마음이 더 위축되었다.


총회 장소에는 조합 명부와 신분증을 대조해 조합원임을 확인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의 충돌을 우려한 기존 조합 측에서 용역업체를 섭외해 총회 장소 주변에 경호 인력들을 배치한 것이었다. 고작 300세대도 안 되는 꼬마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서,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어쨌든 긴장된 마음으로 입장한 회의장 안에는 이미 제법 많은 조합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비대위의 출범과 갑작스러운 추가 분담금의 기습인상,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 사업 진척에 대한 답답함들 때문에 대부분 표정이 밝지 않았다.


형식적인 진행 절차들이 끝나자 마침내 조합원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빳빳하게 다린 양복과 한 눈에도 한 올 한 올 공들여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 바짝 조인 넥타이 등 외양에서부터 어떤 결의가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곱게 접어 손에 쥔 A4 용지를 펼쳐 들고, 그간의 사업 진행 속도가 더딘 것에 대한 사과 말을 먼저 전했다. 곧이어 현재 비대위에서 본인을 중상모략하고 있다며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염소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마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았다. 이후 시공사에서 새 아파트에 대한 소개, 발코니 무료 확장 같은 조합원들을 위해 준비한 혜택을 다시 한번 어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뒤이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은 없었다. 그날 총회에서 내가 확인한 것은, 생각보다 원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는 점이다. 조합원 중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사업성과 조합운영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지자 조합장 할아버지는 눈에 띄게 긴장하는 것 같았고, 답변 역시 명쾌하지 못했다. 항변인지 변명일지 모를 궁색한 대답 끝에, 결국 조합장 할아버지는 “요즘 투자목적으로 귀신아파트를 매입한 젊은 사람들 비율이 많아져서 조합원들끼리 단합하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라고 하소연했다.


그 역시 궁색한 변명처럼 느껴졌다. 내가 보기에는 ‘눈 밝고 정보에도 빠른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예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조합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대중으로 가늠해 보니, 회의에 참석한 조합원 중 약 30% 정도는 나처럼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원주민으로부터 집을 매수한 후발주자들 같았다. 연령대가 30-40대로 추정되는 젊은 층이었다. 반면 오래전부터 아파트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의 나잇대는 60-70대 이상의 고령층으로, 이들은 사업성이나 조합운영 방식보다 최근 늘어난 추가 분담감에 대한 걱정과 성토가 주된 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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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구관이 명관이라며, 그래도 기존 조합장 할아버지를 믿는다’는 덕담조의 의견들을 추가로 말씀하셨고, '하루빨리 사업을 진척시키고, 시공사와 잘 협상해서 추가 부담금을 조금이라도 줄여 달라'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당연히 조합원 할아버지는 잘 알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다짐 말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총회는 그렇게 특별한 진척사항 없이 마무리되었다. 귀가하며 서울로 진입하는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대체 진실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더 크게 피어올랐다. ‘정말 조합장 할아버지는 비리를 저질렀을까? 조합 임원들은 건설사와 한 편이 되어 조합원 전체 이익보다 개인 사익을 우선시하는 걸까? 정말 귀신 아파트 사업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기존 조합의 무능력 때문인가? 비대위의 주장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인가?’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비리여부를 떠나 기존 조합은 사업운영이 너무 느리고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조합장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임원들은 60~70대 고령이었고, 운영의 투명성뿐 만 아니라 조합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미숙했다. 전반적인 사업 진행 스킬 측면에서 한계점이 여실히 느껴졌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역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노련미가 장착된 어른들은 젊은 사람보다 뛰어난 통찰력과 수완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귀신 아파트의 기존 조합 인력들은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총회에 참석하기 전까지만 해도 귀신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대해 어느 정도 불안감이 있긴 했지만, 조합의 주요 인물들을 직접 살피니 불안함에 착잡함까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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