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의미가 없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오늘도 하루 종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유튜브에 쇼츠를 올렸는데요. 이제 하루가 지나버렸기 때문에, 휴식의 차원에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586세대와는 다른 저의 삶의 궤적에 대해서 얘기하는 아주 길고, 두서없는 글입이다.
중학교 1학년때 읽은 니체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네.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인 국민학교입니다. 그러나 존재했던 역사이니 그 단어를 쓰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열심히 다녔고, 지적인 호기심이 강한 아이라서 기독교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독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삶과 인간의 욕망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사춘기가 와서 2차성징이 발현되면서, 그런 생각이 더 심해졌습니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성에 대해서 적의를 가진 종교이니까요.
그리고 여름성경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복음성가와. 구약성서의 이방인을 아이까지 다 죽이라고 명령하는 난폭한 야훼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조화가 안되어서, 기독교를 계속 믿어야 하는지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때 니체의 안티크리스트를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라고 생각되는데 동네 뒷산에서 그 책을 다 읽고 새로운 세상을 처음으로 본 흥분을 느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번째 직장을 다닐 때까지는 니체의 책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심각한 오역이 많은 한국어 번역이 아니고 영어 번역본으로 주로 읽었는데, 물론 이제는 게을러져서 그저 가끔 “이 사람을 보라” (Ecco Homo)를 술을 많이 먹었을 때 읽는 정도입니다.
일을 하다가 니체에 대한 글을 하나 브런치에 썼는 데 그 글이 해당 키워드의 구글 검색 1위를 항상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니체는 현대에 태어나서 카피라이터를 했으면 아마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것입니다. 그는 말년의 대표작인 “우상의 황혼”에서 다른 작가들이 10권의 책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열 개의 문장으로 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거야 말로 카피라이터가 할 만한 말이지요.
파우스트를 읽는 불문학과 학생
니체를 읽기 시작하면서, 독일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였습니다. 더군다나 니체가 존경한 인물 중에 괴테가 들어가 있던 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점심시간 마다, 새로운 강당을 짓는 공사터에, 점심을 10분만에 먹고 달려가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괴테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파우스트”를 주로 읽었는데요. 당연히 거지같은 한국어 번역본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들었습니다.
불문과에 들어가서, 플로베르 (Flaubert)나 다른 프랑스 고전을 읽어야 하는데, 여전히 파우스트를 제대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발견한 책이 저명한 니체 학자이면서, 독문학 번역가인 월터 카우프만이 영어로 번역한 파우스트입니다. 1962년에 출판된 책이니까, 이제 거의 60년전의 책이지만, 저는 이 책보다 더 훌륭한 파우스트 번역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족: 수 십년전에 어떤 라디오 방송에 작가가 나와서, 파우스트를 언급한 것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파우스트, 그런 어려운 책 안 읽어도 된다. 문학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 명작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빌려서 말한다면, 그 작가가 한 말은 이것과 비슷합니다. “롤스로이스, 부가티? 그딴 차 안타도 된다. 현대면 충분해.”
괴테의 파우스트가 대단한 점은 인간사의 가장 저열한 부분에서부터, 가장 고양된 수준의 모든 측면이 한 권의 책에 다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저명한 대학교수가 18세의 처녀를 꼬셔서 임신을 시키고, 그 처녀가 아이를 죽이고, 사형에 처해진다? 21세기의 기준으로 보면, 가십기사에 어울리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원초적인 스토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유럽 문학사의 거의 모든 내용을 빨아들인 풍부한 테마와 상상력입니다.
어쨌든, 제가 불문과 학생으로서 대학교 4년 동안에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불어책이 아니라 영어로 번역된 독일 작가 괴테의 파우스트 였습니다.
그리고 파우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겁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Man errs as long as he will strive.
사족: 노년에 접어든 괴테가 유일하게 좋은 평을 준 파우스트의 번역본은 프랑스의 작가 “제라르 네르발”이 번역한 불어판 파우스트입니다. 괴테는 자기가 쓴 파우스트는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지만 네르발이 번역한 파우스트는 즐겨 읽는다고 할 정도로 이 번역을 격찬했습니다. 저도 이 번역본을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