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기듯 사는 탓에 진득하니 앉아있을 새가 잘 없다. 컴퓨터를 켜는 찰나 아이가 간식을 달라하고, 앉아서 한글파일을 실행시키려 하면 학원 보낼 시간이 된다. 그러다 보니 틈틈이 휴대폰 메모장을 켜 조각 글들을 적고 조금씩 다듬어 매일 글쓰기에 동참한다. 휴대폰 작은 화면으로는 길고 두터운 문장들이 컴퓨터의 모니터에선 작고 빈약한 것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길게 쓰는 게 어렵다. 문과생이었던 터라 대학 시절 모든 시험은 B4 크기의 큰 시험지에 답안을 작성했다. 사각사각 끝도 없이 써 내려가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문제 하나당 반쪽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보통 문제가 3개니 한쪽 반을 쓰면 끝이었다. 당연히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아 늘 시험지 제출 순서로 1, 2등을 다퉜다. 그것도 다 쓰고 난 후 몇 번을 다시 보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내기를 기다린 후였다.
대학원 입학을 위해 학업계획서를 써냈다. 학부 졸업 후 진학이라 웬만하면 붙여준다는 말만 듣고 평소 시험 치르듯 쓴 게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입학 영어 점수가 낮아져 현직에 계신 분들이 많이 지원해 경쟁률이 높아진 게 이유였을까, 그 해 후기 입학에서 떨어졌다. 다음 해 전기 모집에 다시 지원했고, 결과적으론 붙었다. 신입생 인사 자리에 참석해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옆자리에 계셨던 교수님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모사가야, 자기 포장도 능력인 것 아니? 가진 것에 비해 너무 과하게 포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안 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니야.”
취업을 준비할 때였다. 좁은 바닥이라 동기와 선후배가 한데 엉켜 서류, 면접에서 모두 만난다. 처음에야 껄끄럽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저런 넋두리도 하고 작지만 정보도 서로 공유한다. 서류도 떨어진 곳이 있어 왜 그럴까 고민하던 차에 붙었다는 선배에게 물었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더니 선배는 한숨을 쉬었다. 성적 장학금 받은 것과, A+받은 과목이 있으면 뭘 잘했는지, 학교 다니면서 봉사활동·농활·캠프 등등 참여한 건 다 적어라 조언해주는 선배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오빠, 그거 어디다 써요? 쓰라는 데가 없잖아요.”
직장에선 1년에 한 번씩 평가를 받는다. 크게 세 그룹에게 받게 되는데, 그중 한 그룹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탓에 내가 한 일과 성과에 대해 간단히 소개글을 적어야 한다. 평가에 연연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응당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에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간단하게 썼다. 덕분에 일부 내 업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대상자가 많아서 좋은 사업이 아닌데 자꾸 왜 인원이 이것밖에 없냐고 물어 한동안 곤란했다.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깨닫는다. 나를 나답게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편으론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그 자기 포장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사유하고 타인을 고찰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남의 티보단 내 눈의 대들보를 먼저 알아보고, 내 손의 보석을 남의 떡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의 뛰어남에 진심으로 박수치고 더 나아가 배울 점을 찾는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나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간결하고 깔끔한 솜씨로 복잡하지 않게 전해야 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다.
과하지 않은 진솔한 자기 포장은 그 자체로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