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외출

100일 글쓰기 - 91

by 모사가


미뤄 둔 문제집 원고를 다시 꺼낸 지 얼마 안 됐다. 1차 마감에 넘겼던 것에 대한 피드백이 왔는데, 모두 자료를 활용한 문제로 수정해달라는 말에 빈정이 상해 한동안 작업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정해진 콘셉트도 없이 문제를 받아보고 수정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날짜에 맞춰 낸 사람만 계속 고치게 되는 불합리함도 괘씸했다. 20여 일을 모른 척하고 지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질 무렵이 되어 파일을 열었다.


어딘가에 콕 틀어박혀 뭔가를 할 수 있는 성향이 못 되어 확 트인 곳이 필요하다. 독서실에선 못하는 공부를 사람들이 드나드는 도서관 열람실에선 할 수 있고, 사람이 적은 곳보단 넓고 번잡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책 읽는 게 편하다. 그러다 보니 안방에 갇혀있는 신세가 된 요즘, 정말 죽을 맛이다. 문제를 내려고 자리에 앉아도 눈을 돌릴 곳이 없다. 이쪽도 벽, 저쪽도 벽, 괜히 애꿎은 베란다 쪽 창문만 열었다 닫는다. 마음은 급해서 저 멀리 달려가는데 진도는 제자리다. 하루 종일 뒤적거리긴 하는데 자기 전에 확인하면 간신히 두 세 문제를 내놓은 게 전부라 거기에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늘은 도저히 참다못해 스타벅스로 도망을 나왔다. 일거리를 짊어지고 나온 건 아니다. 그냥 잠시 큰 숨을 들이마시고 먼 곳 한번 바라보려고 왔다.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오가는 사람들을 살핀다.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자극을 받는다.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은 한 번쯤 끝내주게 인생을 살아낼 용기를 끌어올린다.


귀에선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다장조 1악장이 흘러나온다. 도입부 피아노의 트레몰로가 떠다니는 마음을 잡아끌어 삶 속으로 던져 넣는다. 위에 얹힌 바이올린의 서정적인 노래는 할 일을 하라며 살살 달랜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다시 끌려 온 삶에서 성실히 살아 볼 힘을 낸다. 내던져진 삶을 의미있게 살아내는 게 의무라 했다.


사람을 일으키는 데는 거창한 게 필요하지 않다. 바깥 풍경, 지나가는 사람, 몇 곡의 음악만 있으면 되어 다행이다. 부자가 별건가. 필요한 걸, 필요한 때에 가지고 있으면 된다. 오늘은 부유해진 정신을 쏟아내야겠다. 내일 또 채워 넣으면 되니.






* 누가 그러더라고요. 글은 감정을 가라앉혀주고, 음악은 감정을 증폭시켜준다고요. 저에게 음악과 글은 정말 그런 존재입니다. 아침내내 불안정했던 감정이 음악을 들으며 팡터지고 글을 쓰며 사그라들었어요. 그럼에도 글보단 음악이 더 좋은건 아직 열정이 넘치는 나이라 그런가봅니다. 모두 뜨거운 주말되세요:)

https://youtu.be/EGfhzTp3X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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